봄의 기운이 잔뜩 배인 늦은 사월 토요일 오후, 맑고 청명한 하늘은 졸음을 부추기고 있었다. 제비꽃, 큰개불알, 애기똥풀, 민들fp가 옹기종기 모여 꽃은 피우고 있는 작은 야산의 양지 바른 언덕배기에 올라 보았다.
들꽃은 대부분 작고 소담스럽다. 눈에 잘 띄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저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삶 같기도 하여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난다.
어느 죽은 이가 누워있는 무덤가에는 푸릇푸릇하니 올라오는 잔디풀이 주변에 핀 꽃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내가 다가서자 일제히 침묵한다. 낯선 들꽃의 곁에 다가가 시선을 가까이 하고 말을 걸려니 아무 일 없다는 듯 딴청을 부리며 살랑살랑거리고 있다.
무덤가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두 귀에 콩닥거리며 숨을 쉬는 땅의 호흡이 옅게 들려왔다. 어린 시절, 녹음이 짙어가는 5월의 아카시아 향과 지천에 흐트러져 날리던 들꽃의 향이 마치 코끝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입가에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리고 잃어버리고 사는 것일까? 세상 가득한 풍요마저도 저버리고 마는 똑똑한 무지? 속에서 하루쯤 벗어날 수는 있지는 않은가? 이렇게 따뜻한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여기 무덤 속에 누워있는 이와 나란히 옆에 누워 있으니 회상은 소용돌이처럼 머리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