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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봄이 더디 왔고 제가 사는 충북 음성은 해발이 높아 이제사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사과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 비해 보름 이상 늦었습니다. 귀농하면서 밭에 심은 매화꽃도 만 3년만에 며칠 전 하얗게 활짝 피었습니다.
세상에 처음 나온 꽃, 아기가 태어난 것처럼 그윽한 눈길로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서로 보이지 않는 따뜻한 교감을 정말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물에도 사생활이 있다고 하거나, 식물과 대화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http://image.ohmynews.com/img2005/article/00.gif) | ![](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namu1022_222783_1[304966].jpg) | | ▲ 아내도 귀농 3년만에 처음으로 자신 이름의 책을 냈습니다. 세상에 처음으로. | | ⓒ 도솔 | 귀농 3년만에 아내도 책을 세상에 처음 냈습니다. 그동안의 우여곡절이 다 담겨 있습니다. 제가 부채질 좀 했습니다. 사실 3년 동안 제 아내는 시골 생활 싫다고 보따리 싸서 집 나가길 두어 차례. 봄, 여름, 가을 동안은 농사일에 바빠 정신없이 일하고 곯아떨어지지만 겨울에 좀 한가하다 싶으면 농사일, 특히 손이 많이 가고 정신없이 더울 때 일을 많이 하는 고추 농사일은 죽어도 싫다고 아내와 신경전을 많이도 벌였습니다.
죽어도 고추농사 안 짓겠다고 항상 다투었습니다. 고추 농사 지어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여자 손이 제일 필요한 것이 고추농사입니다. 밭 갈고 거름 넣고 지주대 세우고 끈 매고 영양제 뿌리는 일이야 남자들이 할 수 있지만 그 나머지 고추를 심고 따고 말리고 손질하고 가루를 내는 일은 여자들 섬세한 손길이 남자들보다 두 배 이상 일을 수월하게 합니다.
아내는 한없이 찾아오는 손님 치다꺼리 안 하겠다고, 못하겠다고 막차 타고 서울로 달아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땐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해 밭에 앉아 철철 울고 있습니다. 철없는 아내, 일이 너무 힘이 들어 땀 흘리다 흘리다 눈물과 함께 소리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제 가슴도 하얗게 무너져 내리기도 했습니다.
자립하는 삶, 건강한 밥상을 내 손으로 차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시골로 내려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농사일은 사소한 무엇 하나라도 배워야 할 것 천지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자연을 알아가는 재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2002년 4월 제가 먼저 귀농 바람이 불어 잘 나가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먼저 시골로 내려왔지만 3개월 후 아내와 아이들도 모두 “아버지 없이 도회지에 살기는 싫다”고 모두 내려와 군 소재지 소읍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무엇하나 강요하거나 억지를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이들 스스로 자연에 대해, 시골 정서에 대해 아이들 그릇 크기만큼 잘도 알아갔습니다. 스스로 알아가겠거니, 따뜻한 눈길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매년 내 손으로 키우는 작물을 바라보면서 배우는 감동이 제일이었습니다. 손님이 오면 내 손으로 키워 반찬으로 한 것을 나열하면서 뿌듯해하는 것을 제일 큰 보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내도 처음엔 힘들어하더니 곧 나름대로 작은 것에 행복해 하는 법을 익혀 나갔습니다. 그러나 겨울만 오면 힘들었던 봄, 여름, 가을이 생각나는지 투정에, 짐을 싸기를 수차례. 매년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namu1022_222783_1[304965].jpg) | | ▲ 귀농하면서 심은 매실나무가 세상에 처음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하얗게. | | ⓒ 이우성 | | 그러던 차에 출판사에 있는 아는 편집장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내는 일간신문에 시골에서 있었던 일들을 3주에 한 번꼴로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그 편집장이 그 기사를 본 모양입니다. 제 아내 이름을 대면서 혹 제가 살던 부근에 혹시 이런 사람이 살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내 이불동지라고 했더니 그 다음날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잘 꼬드겨 책을 내자고 해서 바로 이 책 <시골에 사는 즐거움>(도솔 펴냄)이 나왔습니다. 자신은 글도 잘 못 쓰고 아직도 전쟁 중인데, 뭔 책이냐고 싫다는 아내를 더 적극적으로 꼬드긴 사람은 바로 접니다. 매년 전쟁이었던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서였지요.
아내는 시골살이 하면서 오일장 보는 일을 제일 즐거워 했습니다. 두루마기 입고 씨앗을 파는 할아버지 보는 재미도 있고 장 한복판에서 함께 국밥 한그릇에 막걸리 마시는 재미도 좋지요.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하는 것을 즐기던 아내는 그런 여러 시골살이 경험을 옛날 자신이 어릴 때 살던 시골 추억과 함께 잘 머무려 책 한 권에 담았습니다.
<시골에 사는 즐거움>은 그렇게 나온 책입니다. 3년 동안 우리집 야단법석이 다 담겨있습니다. 이 책을 내고 제일 즐기는 사람은 바로 접니다. 이제 아내는 시골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동네방네 소문내고 시골살이 즐겁다고 떠들어댔으니 올해 겨울부터는 안심하고 두 다리 뻗고 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달 30일에는 사과밭 옆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어줄 생각입니다. 시골 내려와 보니 보고 싶은 사람들 보지 못하는 외로움이 제일 컸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 생각날 때 바로 보지 않으면 앞으로 몇 십년이 또 흘러도 못보겠더라구요. 그래서 지금 알고 있는 사람들을 보지 않으면 다시는 못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기회에 아는 분들에게 전부 연락하고 무리해서라도 사과꽃 구경하러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근처에 귀농한 사람들과 음성에서 친환경농사를 짓고 계신 어르신들이 함께 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풍물 칠 때 북을, 저는 장구를 잡기로 하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며 큰아들은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기타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처음 나온 매화나무 꽃처럼 아내도 세상에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놓고 매일 즐겁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골 사는 즐거움을 매일매일 만끽하면서 샘나는 도회지 사람들 많이 만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시끌벅적한 우리 가족이 초대하는 사과꽃 구경과 철없는 제 아내 출판기념회 오실 분들은 대환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아내가 처음으로 책을 냈습니다. 책소개가 될까 두렵기도 합니다만 철없는 아내와 책을 보고 시골로, 자립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앞섰습니다. 시골 오시면 삶이 다르게 보입니다. 삶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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