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본다. 새벽 5시다. 나는 살짝 안방을 빠져나온다. 아내는 지금 곤한 잠에 빠져있을 것이다. 나는 주방으로 간다. 가스레인지가 보이고 그 위에 찜통이 놓여있다. 나는 찜통뚜껑을 연다. 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난다. 장어국이다.

나는 저녁잠이 많다. 저녁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든다. 내 생각은 그렇다. 잠만은 충분히 자자. 속된 말로 자는 게 남는 것이다. 나는 8시간 수면을 원칙으로 한다. 그렇게 자고 나면 무엇보다도 머리가 맑다. 어디 머리뿐인가. 몸도 날아갈 듯이 가뿐하다.

▲ 장어국밥입니다
ⓒ 박희우
그런데 어제는 좀 심했던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나자마자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았지만 도무지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비스듬히 방바닥에 누웠다. 막 잠이 들려고 할 때였다. 누가 내 어깨를 막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여보, 지금 몇신 줄 아세요. 여덟 시예요. 저녁 먹고 금방 자면 살도 찌고 건강에도 좋지 않대요. 일어나세요. 우리 시장에나 가요.”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밥 먹고 금방 자면 분명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내를 따라나섰다. 어, 그런데 오늘은 아내가 할인점으로 가지 않는다. 재래시장 쪽으로 간다. 아, 그렇지. 나는 그제야 아내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아내는 지금 바다장어를 사러간다. 건강식으로는 바다장어가 제일이다. 아내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내는 배추 두 단을 1000원에 샀다. 비닐봉지에 들어있었는데 ‘단배추’라고 씌어있었다. 아내가 귓속말로 큰길 채소가게에서는 한 단에 1000원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큰길 채소가게하고는 좀 떨어졌다. 장소도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이다.

“어때요, 싸지요. 찾아보면 이런 곳이 많아요.”

나는 아내의 알뜰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어물전으로 갔다. 작은 쟁반에 바다장어가 놓여있다. 아내가 주인에게 얼마냐고 물었다. 주인이 1만원 한다고 했다. 아내는 5천 원어치만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식구가 적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주인이 5천 원어치도 많이 사간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다장어를 끓이기 시작했다. 솥에서 김이 푹푹 새어나왔다. 아내는 찬장에서 체를 꺼냈다. 그 밑에 그릇을 받쳤다. 아내가 잘 삶아진 장어를 체 위에 부었다. 아내는 수저로 장어를 으깨기 시작했다. 뼈만 남고 살은 밑으로 흘러내렸다. 아내는 ‘단배추’ 한 단을 삶았다. 솥에서 ‘단배추’를 꺼내더니 찬물에 헹구었다. 아내는 그것으로 우거지를 만들 것이다. 장어국 끓이는데는 무엇보다도 우거지가 최고다.

나는 거기까지만 보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다. 나는 더 이상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내를 뒤로하고 방바닥에 누웠다. 딸그락, 딸그락.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마치 자장가 소리 같다. 나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나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얼마 안가 장어국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냈다. 나는 국자로 장어국을 퍼서 그릇에 담았다. 밥 한 덩이를 국그릇에 부었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고맙게도 아내는 ‘단배추’ 겉절이까지 만들어놓았다. 빨간 양념이 군데군데 배추 잎사귀에 배어있는 게, 무척 먹음직스러웠다.

이른 아침인데도 밥맛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장어 국물이 가득 밴 배추 이파리가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나는 국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웠다.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내친김에 설거지까지 해버려. 그러나 그것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언제 일어났는지 아내가 내 뒤에 서 있다. 아내가 내 등을 떼밀며 말한다.

“빨리 출근이나 하세요. 6시 5분이에요. 김 계장님이 기다리겠어요.”

아내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양복저고리를 손에 든 채 뛰기 시작했다. 함께 ‘카풀’ 하는 김 계장이 차 옆에 서 있다. 나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김 계장이 내 뒤를 가리켰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내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생각에 나는 빙긋 웃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