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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대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가 있다.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천근처럼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아침밥을 먹다가 문득, 만원버스 안에서 제 몸뚱이 하나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 문득, 잠자리에서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기도 전에 의식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질 때 문득, 그렇게 문득문득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류진운 소설 <닭털같은 나날>의 ‘임’도 그러했을 것이다. 체면이고 뭐고 돈 몇 푼에 헤헤거리는 임도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을 테다. 김유정 소설 <땡볕>의 ‘덕순’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내가 몹쓸 병 걸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특이한 병일수록 병원에서 돈 줄지도 모른다는 말에 헤헤거리는 그도 문득문득 그러했을 것이다. 덕순의 아내도 그러했을 테다. 고작 죽어가면서도 유언이라고 남기는 것이 사촌에게 쌀 빌린 거 갚으라고 하는 제 처지를 생각하며 불현듯 그런 생각을 했을 테다.

소설 속 그들만 그러할까. 아니다. 차라리 소설 속 그들만 그러했으면 이 세상은 참으로 좋은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을 터인데 소설은 깨끗한 거울처럼 티 한점 없이 현실을 비춰주는 것이다. 몇몇이 류진운과 김유정의 소설을 보면서 대단한 문학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 많은 이들은 그 작품들을 보며 남모를 서글픔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곧 자신들의 모습임을 알기 때문일 테다.

생각해보면 그런 이들은 책을 읽을 여유조차 없다. 책 안 읽는다고 거품 물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일 양식거리 할 돈을 버느라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야 하는 이들이 있다. 잠 잘 시간 줄여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이들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테다. 처지를 비관해 고운 목숨 스스로 버리는 이들이 수두룩한데 책 타령은 웬 말인가.

그럼에도 그런 이들에게 책 타령을 하고 싶다. 공선옥 산문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는 그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책 타령을 하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주옥같은 글이라서 타령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위해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에, 그들에게 꿈은 아니더라도 내일의 희망을 심어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에 책 타령을 하고자 한다.

문학하면 잘난 사람들,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한다고 여겨지는 이 때에 공선옥의 이름은 특별하다. 공장 일을 했던 그녀, 이른바 공순이라는 직업군으로 살아가던 그녀는 소설가가 되어 오늘을 살고 있다. 마루야마 겐지가 소설가들은 뻔한 생각만 하고 뻔한 곳을 다니고 뻔한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비판했지만 이 비판은 최소한 공선옥에게 만큼은 예외다.

<사는 게 거짓말 같은 때>는 날개가 잘려나가 날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저자의 위로 글이다. 날지 못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절름발이가 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들이다. 제대로 걷고, 제대로 날아다니는 이들은 ‘이 세상이 살기 어렵네’, ‘전쟁 날까 무서워 좋은 나라 찾아 떠나야겠네’ 하며 행복한 비명을 지를 때 절대다수의 절름발이들은 비명 한번 지를 새 없이 제대로 한번 걸어보는 시늉이라도 내보려고 끙끙거리고 있다.

안쓰러웠던 걸까? 아니면 스스로 경험해봤기에, 펜을 들 수 있는 경험자이기에 펜으로 꾸짖어주고 싶었던 걸까? 누군가에게는 위로 글인 <사는 게 거짓말 같은 때>는 또한 누군가에게는 꾸짖음이다. 그것은 사는 게 거짓말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대신해 저자가 외치는 꾸짖음이다. 백죄 그러면 쓰간디요! 백죄 그러면 쓰간디요! 입 좀 닥쳐라…!

노동자가 권리 좀 찾아보겠다고 파업이라도 하면 노동자의 입장을 헤아려줘야 할 노동부가 오히려 해코지를 하는 세상, 부잣집 아들은 부잣집 아들이라고 잘 살며 쉽게 명문 대학 들어가는데 가난한 아들은 가난한 집 아들이라고 남루한 삶을 준비해야 하는 세상, 농촌 죽이는 당사자들이 농촌 살리자며 선글라스 끼고 모내기봉사 쇼를 하는 세상,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는 세상,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저자는 ‘그 세상’과 ‘그 세상의 잘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있다. 백죄 그러면 쓰간디요! 백죄 그러면 쓰간디요! 입 좀 닥쳐라…!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없겠느냐고. 훈훈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사연을 모으고 모아 매달 발행되는 그런 책자들의 글들처럼 ‘이 세상 참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글, 그런 아름다운 글들을 쓸 수 없겠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왜 불편하게 만드는 글을 쓰냐고 묻는 것일 테다.

저자의 글 한 글자 한 글자는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버려지는 노동자, 버려지는 농민, 버려지는 다수의 가난한 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저자는 그런 글보다 독한 글을 쓰는 것일지 모른다. 저자가 “이런 세상에다 대고 아름다운 노래 따위 나는 부를 수가 없다”고 하는 것도 그 탓일 게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아름다운 글보다 저자의 독한 글이 더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책장 사이사이에서 무수한 그림들이 스쳐지나간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인생들’의 얼굴들이 가득하다. 그 얼굴들을 위해, 그 얼굴들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가 그들의 처지를 뒤바꿔 줄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의 깊은 속내에 애잔한 마음을 심어줄 수는 있을 테다. 그것이라도 기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것이라도 된다면 그것보다 아름다운 글이 어디 있을까. 잠시라도 속을 풀어줄 수 있다면, 또한 이렇게 바라보고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아주 잠시라도 하늘을 바라보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된다면 그것은 어떤 문학상 부럽지 않은 영광을 얻은 것이리라.

책 타령을 하고 싶다. 사는 게 거짓말 같은 사람들에게 책 타령을 하고 싶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책 타령을 하고 싶다. 피곤하고 여유가 없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고 책 타령을 하고 싶다.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곳이나 펼쳐보라고 책 타령을 하고 싶다.

혹여 이 세상에 공선옥이라는 작가가 있다는 것, 이렇게 마음을 풀어주는 글들이 있다는 걸 그들이 모르고 지나칠 것이 두려워 책 타령을 하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뻔뻔하게 책 타령을 하고 있다.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당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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