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는 몸은 힘들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선배에게 살 만하냐고 물어보니, 이제 시작이란다.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이야기한다. 욕심을 내지 않고 무른 땅을 다지며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겠다는 선배의 모습이 든든해 보였다.
식사를 하면서 현장에서 경험했던 갖가지 일화를 들려줄 때는 다시 현업에 복귀한 선배 기자 같았다. 아 영원한 기자정신이여!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서 그런지, 잡았던 손에 힘이 꾹 들어간다. '선배, 잘 사세요….'
한국 사람들이 해외로 이민가는 것에는 여러 사연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육문제 때문이다. 부모들은 과열된 입시경쟁을 거치며 황폐해지는 자녀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과감히 한국을 떠난다.
낯선 타국 땅에서 어떠한 난관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을 자식에 대한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에피소드 #29 (2005. 4. 21)
텍사스의 달라스포트워스(DFW)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콜로라도 산맥이 만들어내는 난기류에 춤을 추듯 흔들리더니 이어 추락하듯이 빠른 속도로 지면으로 하강한다. 잠시 후 비행기 몸통이 활주로에 직접 닿는 것처럼 강한 충격이 가해지며 콜로라도 덴버 공항에 도착했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기내에 감도는 순간, 갑자기 팝콘 튀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물이 심하게 끓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기내를 가득 채운다.
창문을 내다보니 엄지손톱만한 우박이 각치듯이 쏟아지고 있다. 채 1분이 지나지 않아 거뭇한 활주로가 하얗게 덮였다. 마치 초대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경고처럼 우박은 호되게 쏟아졌다.
20세기 초중반까지 여성과 흑인에게는 참정권이 없던 나라, 할리우드 영화가 짧은 역사의 문화적 전통이 된 나라, 그리고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빈곤으로 수천 명의 어린이가 굶어죽는 데 반해 100명 중에 30명이 드럼통 같은 몸매를 자랑하며 OECD국가 중 비만율 최고를 자랑하는 나라.
또한 그 드럼통에 기름을 채워 넣기 위해 부자(父子)가 나란히 중동에서 전쟁을 일으킨 나라,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지만 오만과 독선으로 거들먹거리는 나라. 바로 미국이다.
미국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하는 질문 중 대표적인 것.
"미국 어때요, 좋아요?"
그럼 항상 하는 대답.
"그냥 그래요."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나의 대답은, 세계최강대국이라는 그들의 자만심이 배어나오는 예상된 질문지에 대한 최소한의 모범답안이다. 좋다고 얘기 하기에는 가진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미국이 얄밉고, 나쁘다고 단정 짓기에는 객관적 판단의 미비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이 싫어질수록 한국이 그리워졌다. 길을 떠나면 집이 그리운 법이다.
에피소드 #30 (2005. 4.23)
한국을 떠나면서 손톱을 바싹 자르고 왔는데 어느새 새순처럼 쑤욱 자랐다. 궂은 날씨가 화창해져 숙소 밖으로 나와 굵은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에 앉아 손톱을 잘랐다. 웃자란 가지를 치듯 거침없이 손톱을 잘라나갔다. 그런데 왼손 약지의 손톱이 깊숙히 잘려나가며 악!하고 외마디 신음이 새어나왔다.
잘려진 손톱 밑으로 붉은 살이 보인다. 99센트 가게에서 구입한 한국산(Made in Korea) 손톱깍기는 날이 퍼렇게 살아 있었다. 피가 새어나오며 드러난 살 부위가 쓰렸다. 몸의 가장 작은 부분의 하나인 손가락 끝이 조금 상했지만 통증은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흔적을 찾을 수없을 정도로 치유가 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몸 속 깊숙히 파고들어간 암세포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 잊었다고 생각하더라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상처가 되어 남아 있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손톱 깍듯이 재단하지는 말아야겠다. 마음은 상처를 입으면 붉은 피보다 아픈 눈물을 흘린다.
덧붙이는 글 | 홈페이지 www.seventh-haven.com (일곱번째 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