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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병력으로는 적이 길을 나누어 들어올 때 막아낼 방도가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감사께서는 이토록 움직임이 더딘 것인가?"

김준룡은 전라감사 이시방의 전갈을 가져온 군관에게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마구 소리쳤다. 군관은 감히 노한 김준룡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전령을 전해 주었다. 전령을 펼쳐 보던 김준룡은 이를 집어 던지고서는 군관에게 소리쳤다.

"가서 전하라! 여기서 물러 설 수 없으며 남은 병력을 이끌고 광교산으로 오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말이다! 공은 감사께 모두 돌릴 터이니 병력을 이리로 끌고 오랑캐들의 뒤를 치라고 전하라!"

군관이 나간 후 김준룡은 침통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옆에 있는 장판수도 욕을 해 대었다.

"감사라는 자가 어찌 저리 몸을 사린단 말입네까!"

"다 짐작 가는 이유가 있소이다."

김준룡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성안에서 몰래 전갈이 온 후 저러니 어찌하겠소. 누군가 다른 소리를 한 것이 아니라면 저럴 리 없소이다."

"성안에서 몰래 전갈이 오다니 무슨 소리입네까?"

김준룡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김준룡은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순간의 화로 인해 경솔히 발설했다는 후회가 들었고 장판수는 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는 한 성안에서 모집을 통해 밖으로 나간 이들은...... 그 중놈과 포수다. 그 놈들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다음날, 장판수는 말에 올라타고선 미친 듯이 진지를 오가며 병사들의 진열을 정돈했다. 오후 무렵에 청의 군대가 전날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듯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도 전라감사 이시방의 원군은 끝내 도착하지 않은 터였다.

"모두 침착하게 적을 맞아 싸워라! 어제와 같이 싸우면 어찌 오랑캐들이 우리를 범접할 소냐!"

청의 병력은 기병 없이 목 방패를 든 보병들을 앞세워 진군해 왔다. 포수들은 지휘관의 신호를 기다리며 총구를 겨누었다.

"쏴라!"

마치 한 사람이 쏘는 듯이 총소리가 울려 퍼졌고 청의 병사들은 그대로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

백양굴리는 말에 오른 채 병사들을 독려했다. 서 너 열의 병사들이 괴멸당한 후에야 청군은 조선군의 선두 열 포수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포수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기세를 탄 청군은 괴성을 지르며 돌격해 들어갔다.

"창검수는 돌진하라!"

김준룡의 고함소리와 함께 후퇴하는 포수들을 뒤로 숨기며 조선의 창검수들이 함성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돌진해 들어간 청의 병사들은 돌격해 들어간 자신의 힘에 밀려 조선군의 창에 꿰여 죽어갔고, 그 뒤를 이어 들어선 병사들은 칼에 맞아 죽어갔다.

"이래서는 병사들의 희생이 큽니다! 어서 병사들을 물려야 합니다!"

큰 피해에 당황한 부장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백양굴리는 크게 화를 내었다.

"난 투루아얼을 믿는다! 곧 뒤에서 신호를 보내올 것인즉 공격을 늦춰서는 아니 된다!"

제 1진이 궤멸당한 청군은 곧 2진을 투입했으나 그들의 운명도 1진과 다르지 않았다. 기병이 빠진 채로 공격하는 청의 보병은 견고하게 사각형 대열을 유지하며 저항하는 조선군을 무너트릴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교산 계곡은 청의 병사들이 흘린 피로 젖어들었고 그에 맞추기라도 하는 듯 산자락에 걸린 해가 붉은 노을을 지우고 있었다.

'투루아얼!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이냐!'

백양굴리는 속이 바짝 탄 채 이제는 자신이 직접 지휘해서 호랑이 아가리 같은 조선군의 진영으로 들어서야 할 3진을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 멀리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화살하나가 높은 궤적을 그리며 치솟아 올랐다. 드디어 투루아얼이 기병을 이끌고 조선군의 뒤로 돌아갔다는 신호를 보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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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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