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등장으로 폭발한 '구전효과'
네티즌 사이에 큰 화제가 된 '떨녀' 동영상이 바이러스 마케팅 대행사의 치밀한 기획으로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바이러스 마케팅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언급된 두 개의 에피소드는 모두 구전 마케팅, 게릴라 마케팅 혹은 네트워크 마케팅으로도 불리는 '바이러스 마케팅'의 사례들이다.
구전과 소문에 의지하는 판촉 행위는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 바이러스 마케팅이 특히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이라 이번 사건이 특별히 더 관심을 끈다.
사실 바이러스 마케팅의 가장 성공적인 선례 역시 바로 인터넷 상에서 만들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핫메일이 바로 그것.
지금은 익숙해진 기법이지만 핫메일에 먼저 가입한 사용자가 보낸 이메일에 가입을 권유하는 링크를 노출시키는 단순한 기법으로 대규모의 값비싼 마케팅 없이도 단번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이메일 서비스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경우 핫메일 가입자들은 메일을 보낼 때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동으로 핫메일의 홍보요원으로 일을 하게되는 셈. 전형적인 바이러스 마케팅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고 있다.
| | | '바이러스 마케팅'이란? | | | | 대중매체광고처럼 마케팅 주체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대량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신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에게 직접 홍보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마케팅 행위 일체를 일컫는다.
이론적으로 바이러스 마케팅은 메시지가 한 단계 전달될 때마다 "1, 2, 4, 8, 16, 32..." 의 수열과 같이 접하는 수용자의 수자가 제곱으로 늘게 된다.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 랄프 윌슨은 <바이러스 마케팅의 6원칙>에서 다음과 같이 6가지 원칙을 정리하고 있다.
1. 먼저 가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2. 제품이나 서비스를 타인에게 손 쉽게 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
3. 메시지의 대규모 확산이 일어나도록 만든다.
4. 사람들의 공통의 관심사나 행동양식에 주목한다.
5. 이미 존재하는 의사소통 네트워크에 편승한다.
6. 다른 사람의 자원이나 노력을 이용한다. | | | | |
핫메일의 바이러스 마케팅 기법은 최근 구글의 이메일 서비스인 '지메일(Gmail)'을 통해 한 단계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글은 일부 초기 사용자를 선정해 이메일 계정을 무료로 제공한 뒤 이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들을 초청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다. 구글이 2기가 바이트가 넘는 막대한 이메일 용량을 제공하고 있어 지메일 서비스에 초청 받으려는 사람들은 이미 넘쳐나고 있었다.
초기 가입자는 지메일 초청장을 주위 사람들에게 선심 쓰듯 나누어주면서 으쓱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지메일 서비스는 말 그대로 초강력 바이러스처럼 확산일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자 역시 50여개의 지메일 초청장을 보유하고 있다.
왜 바이러스 마케팅이 화두가 되는 것일까? 구전의 효과는 예전부터 인정을 받았지만 이것이 인류 역사 상 유례가 없는 막강한 전파도구인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대중매체와 맞먹거나 이를 능가하는 파급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대중매체의 무차별적 메시지보다 신뢰할 수 있는 지인의 권유나 귀띔이 더 설득력을 발휘한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실제로 젊은 층을 겨냥한 WRX라는 신차를 출시한 일본의 자동차업체 스바루는 인기 자동차 경주 콘솔 게임에 차를 출연시키거나 온라인 아케이드 게임에 버츄얼 옥외광고판을 세우는 방식으로 젊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구전 효과를 유발시켜 톡톡한 판매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애드 에이지>는 보도하고 있다.
'엽기 김대중' 수백명이 수백만명으로..
구전효과가 네트워크와 결합할 때 얼마나 폭발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는 순전히 인터넷만을 통해 순식간에 전국민에 확산된 '엽기 김대중' 음성 파일이 생생하게 보여 준 바 있다.
간단한 계산으로 구전 효과의 위력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엽기 김대중'을 최초로 접한 사람의 수가 100명이라고 가정하고 이 100명이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각자 자기가 아는 또 다른 100명에게 이 사실을 전한다면 1만 명이 파일을 접하게 된다.
이 1만 명이 각자 또 100명에게 소식을 전하면 100만 명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이런 과정이 수 차례 반복되면 이론 상 단 며칠 만에 수 백만 명의 사람에게 메시지가 전파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엽기 김대중'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인터넷 상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바이러스 마케팅의 6가지 원칙>의 저자 랄프 윌슨은 상업적 목적을 지닌 주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유포한 인터넷 상의 메시지 혹은 의미소(meme)들은 후일 그 배후가 밝혀질 경우 오히려 역효과만 유발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눈썰미 있는 바이러스 마케팅 기획자라면 따라서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메시지보다는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의미소를 발굴하거나 이에 편승하는 방법으로 확산 효과를 노리게 마련이다.
SF작가 윌리엄 깁슨의 최신 소설 <패턴 인식>은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 인터넷 마케팅을 펼치려는 한 다국적 광고대행사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런던의 다국적 광고대행사 '블루앤트'는 누군가 만들어 유포해 네티즌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동영상의 제작자와 출처를 파악해 이를 바이러스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블루앤트'는 미국의 비범한 브랜드 전문가 케이시 폴라드를 고용해 인터넷 상에서 동영상을 추적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구전 메커니즘의 내막이 상세하게 드러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떨녀' 동영상 역시 <패턴 인식>에서 묘사된 것처럼 "네티즌 사이에서 이미 인기를 끌고 있는 의미소"와 "이에 편승하려는 마케팅 기획자"라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떨녀' 이전에 '딸녀'라는 비슷한 현상의 인기 의미소가 이미 존재했고, 여기에 휴대전화의 진동이라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현상이, 길거리에서 격렬하게 쉬미댄스를 추는 묘령의 젊은 여자라는 이질적 요소와 겹치면서, 매우 기이하면서도 폭발적인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의미소로 재탄생 한 것이다.
포화상태에 이른 상업적 메시지로 인해 대중의 감각이 무뎌지고 대중매체의 권위 또한 무너지고 있어 바이러스 마케팅 같은 변종 마케팅은 끊임 없이 새로운 얼굴을 하고 우리 주변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오도된 구전마케팅 사회적 신뢰 파괴
마케팅 컨설팅 사이트 <클릭 Z 네트워크>의 데이비드 코헨은 바이러스 마케팅이 남용되기 시작하면서 벌써부터 효과가 급락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의 인기 리얼리티 쇼 "견습사원-Apprentice"의 시청률이 최근 떨어지는 것은 우연을 가장한 후원사의 제품 노출이 도를 지나치면서 시청자에게 더 이상 신선함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
매체의 권위 대신 아는 사람 사이의 신뢰에 의지하는 바이러스 마케팅의 속성 상 남용될 경우 사회적 신뢰의 파괴라는 매우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미 많은 게시판이나 카페에서 "당신 혹시 고용된 '알바' 아니냐"는 의혹 섞인 질문을 하는 네티즌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오도되거나 지나치게 남용된 바이러스 마케팅은 네트워크상의 신뢰라는 사회적 자산(social capital)에까지 심각한 균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