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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는 당시 불치병으로 불리던 신장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찾는 팬들을 위해 무대에 나가 노래했다
배호는 당시 불치병으로 불리던 신장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찾는 팬들을 위해 무대에 나가 노래했다 ⓒ 배호 유족
배호 노래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배호 홍보대사 가수'가 그들이다. 자기 스스로 붙인 명예가 아니다. 배호에게 "머리가 밤송이 되도록(김광빈옹의 표현)" 군밤을 주며 드럼을 가르치고 <두메산골>을 취입시켜 가요계에 데뷔시킨 스승이며 외삼촌인 김광빈옹(MBC 초대악단장)이 인정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돈을 벌려고 배호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노래를 하여 어려운 이웃을 섬기려고 한다.

배호 노래로 어려운 사람 돕는 사람들

지난해 12월 5일, 이미 한 차례 그 일을 실천했다. 종묘공원에서 초코파이 두 개와 우유를 나눠주며 배호 노래를 들려주는 경로위안잔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겨우 그걸 주면서 뭘 도와준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비록 작은 정성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초코파이 두 개와 우유가 얼마나 맛있는 줄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날 공연에서는 가수 유비(본명:김광석), 배오(본명:윤동식)씨의 그럴 듯한 배호 모창, 음치교정강사 이선원씨의 율동을 곁들인 노래와 미림비씨의 '배호 아리랑 시리즈'(미림비 남편 숲이어도 작곡)가 눈길을 끌었다. 아리랑 시리즈 작곡으로 어느덧 일가를 이룬 숲이어도씨는 <불세출 배호 아리랑> <배호 기념 아리랑> <나는 배호님이 좋아요> <그 이름 배호> 등을 작곡했을 만큼 배호 예찬에 열성이다.

노래와 함께 울고 웃으며 불꽃처럼 살았던 일생/서민들 삶에 희망을 주고 꿈을 줬던 배호의 노래 인생/사무치는 그 목소리 내 가슴을 울려주고/열창하던 멋진 모습 눈앞에 선한데/아리랑 쓰리랑 배호 기념 아리랑/내 인생에 멋을 주는 노래 사랑 아리랑 (1절)

합기도 관장 가수 유비씨(붉은 머플러)와 태권도 고수인 이헌씨가 함께 배호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합기도 관장 가수 유비씨(붉은 머플러)와 태권도 고수인 이헌씨가 함께 배호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정법현

할머니 가수 국숙자씨와 다른 할머니 두 분도 경로위안공연에 빠지지 않았다
할머니 가수 국숙자씨와 다른 할머니 두 분도 경로위안공연에 빠지지 않았다 ⓒ 정법현
그날 종묘공원 위안공연 현장을 지켜보고, 인천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배호 관련행사를 생각한 배기모(배호를기념하는전국모임) 인천지부장 김종구씨는 이렇게 말했다.

"종묘에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배호 홍보대사 가수들의 행사를 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매달 모여서 배호 노래 부르며 배호의 예술혼을 회상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또한 어려운 이웃들에게 한끼 도시락이라도 나눠드릴 수 있는 배호 콘서트 행사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을 말이죠. 아마 배호님도 좋아하실 겁니다."

작은 나눔의 정성, 올봄엔 부평역 라이브 무대로

부평역 옆에 콘서트 무대가 있다. 그 콘서트장에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정오가 가까워 가는 시각, 무대 옆에서 호랑이해에 호랑이 그림으로 유명했던 한국화가 이종철씨, 가수 청운아씨, 여가수 이연자씨 등 몇몇 사람이 김밥 네 줄이 들어간 도시락과 생선묵·무가 푸짐하게 들어가 있는 국을 나눠주고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것을 받아 객석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마침 나들이 나온 어린이들도 무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김밥을 먹는다.

배기모 부평지회(인천지부장 김종구/지회장 배상열)에서 꽃 피는 봄날인 3월 26일(토) 오후 1~3시에 부평역 광장 라이브무대에서 배호 홍보대사 가수 청운아 신곡 발표 및 노숙자와 불우노인 1000명에게 도시락과 음료를 무료급식하는 '작은 나눔의 자리'가 곧 시작되는 것이다.

뺑소니 교통사고로 왼쪽 무릎 슬개골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있는 나는 병원에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할 몸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움직여야 마음이 편할 때가 있는 법. 이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스트레스가 쌓여 속도 불편하고 외상이 더 오래 갈지 모른다. 마침 배호 모창가수 배오씨가 9인승 밴을 몰고 양평에서 출발하여 의원에 도착, 필자를 태우고 왔던 것이다.

멀리 대전에서 12인승 밴을 이용하여 많은 분들이 올라와 있다. 색소폰을 잘 부는 소방공무원 김정기씨(예명:목척교)가 반가워하며 건강을 염려해 준다. 중학생 때 자전거 뒤에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평생 불구가 된 장애인 가수 박철씨(현재 시계점 경영)도 목발을 짚고 함께 와 있다. 주문진 행사에서 만난 적이 있는 <춤추는 가위손>의 여가수 권혁순 씨(KBS 전국노래자랑 대상 수상)가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한다.

배호 모창가수 배호진(본명:이봉주)씨는 우유대리점 동업자(?)인 아내 장영애씨(김용임씨 노래를 잘 불러 교통방송 노래자랑에서 인기상을 받았다)와 형 이봉렬씨와 함께 올라와 있다. 아주 반가운 얼굴들. 배호진씨가 처음 배호 노래를 시작한 건 '저음이 기가 막힌' 형을 통해서였는데, 정작 가수가 된 건 목소리가 굵지 않은 배호진씨다. 한때 택시 운전을 할 때 자신이 부른 배호 노래 테이프를 틀고 다녔는데, "그거 배호 노래 아니요?" 하고 묻는 승객들이 많았다. 그래서 자기가 부른 거라고 하자 "하나 팔라"며 많은 승객들이 돈을 내밀더라는 것.

역대 대통령들을 풍자한 노래 <역사 속으로>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세무공무원 가수 정중(본명:김정중)씨가 훤칠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멀리 전라북도 전주에서 올라온 것이다. 멀리 경상도에도 위안공연을 많이 하는 정법현, 서진숙씨 등 배호 홍보대사 가수가 있는데 다른 지역 위안공연 일정이 겹쳐 올라오지 못했다.

문득, 지난 연말에 전남 순천에서 있었던 배기모 영호남 연합송년회에 취재를 갔던 일이 생각났다. 대구에서, 부산에서, 경북에서, 울산에서 전남 순천까지 먼 길을 여행하여 모두들 하나가 된 것이다.

정중씨가 역대 대통령을 풍자한 노래 <역사 속으로>를 열창하고 있다
정중씨가 역대 대통령을 풍자한 노래 <역사 속으로>를 열창하고 있다 ⓒ 김선영

배호진씨는 저음가수는 아니지만 <안개 낀 장충단공원>을 멋드러지게 불렀다
배호진씨는 저음가수는 아니지만 <안개 낀 장충단공원>을 멋드러지게 불렀다 ⓒ 김선영

<두메산골>을 잘 부르는 배오씨는 동양화가 이종철씨에게 양보하고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을 배호 창법으로 불렀다
<두메산골>을 잘 부르는 배오씨는 동양화가 이종철씨에게 양보하고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을 배호 창법으로 불렀다 ⓒ 김선영

<춤추는 가위손>의 권혁순씨는 신세대 댄서들과 함께 조화를 이뤄 '세대 차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춤추는 가위손>의 권혁순씨는 신세대 댄서들과 함께 조화를 이뤄 '세대 차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 김선영
배호의 노래는 이렇다. 대한민국 사람을 하나로 만든다. 구수하고 잔잔하면서도 때로는 한(恨)의 씻김굿 같은 배호의 노래는 우리의 동질성을 회복하게 만든다. 경상도, 전라도가 따로 없다.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도 모두 하나다. 배호의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두메산골>을 부르려고 했던 배오씨는, 이종철 화백이 <두메산골>을 부르기로 되어 있어 급히 곡목을 바꾸었다.

"어르신들이 많으니까 남인수 선생님의 <애수의 소야곡>을 불러야겠습니다. 배호 창법으로 말입니다."

'메인이벤트는 무엇일까?' 궁금해질 만큼 공연의 색깔이 다채로웠다. 권혁순씨가 10대 댄서들과 함께 하는 <춤추는 가위손> 공연, 배호 모창가수 배호진씨와 배오씨의 배호 모창, 정중씨의 <그 이름> 배호 모창과 자신의 <역사 속으로> 열창, 부평의 신인가수 청운아씨의 <배호 회상곡>(신창화 작사·작곡, 차화석 편곡) 발표, 서광일 단장과 그 일행의 퓨전난타 공연, 원로가수 금사향 선생의 특별공연 등. 슬로댄스곡인 <배호 회상곡>의 노랫말은 이렇다.

비바람이 몰아치듯 썰물처럼 님은 잠시/머물다간 그리운 님아 님의 그 하얀 얼굴/뿔테안경 검은 모자 소리 내는 그대 모습/세월 가도 카페에서 당신 노래 부릅니다/님의 그 숨소리도 영원토록 기억해요

<배호의 회상>(신창화 작사 작곡/차화석 편곡)을 발표하는 청운아씨
<배호의 회상>(신창화 작사 작곡/차화석 편곡)을 발표하는 청운아씨 ⓒ 김선영
팔순 넘은 나이에도 목소리는 꾀꼬리

가장 많은 인기를 끈 것은 금사향 선생. 금사향 선생이 <홍콩 아가씨>를 부르자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어서 태극기를 들고 <임 계신 전선>을 부르자 박수갈채가 더 많아졌다. 그러자 "한 곡 더 부른다고 노동법에 저촉을 받습니까?"라고 하면서 <아리랑 낭낭>으로 화답을 하여 중장년 관객을 향수에 젖게 했다.

여전한 꾀꼬리 목소리로 <임 계신 전선>을 열창하는 원로가수 금사향씨. 색소폰 반주하는 연주가는 소방공무원 김정기씨
여전한 꾀꼬리 목소리로 <임 계신 전선>을 열창하는 원로가수 금사향씨. 색소폰 반주하는 연주가는 소방공무원 김정기씨 ⓒ 김선영

점심시간이 지나서 찾은 두 노인이 김밥과 국을 받아가고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찾은 두 노인이 김밥과 국을 받아가고 있다 ⓒ 김선영
불우노인들에게 도시락이라도 나누어 드리는 작은 섬김의 정성은 2005년 5월 21일(토) 인천 월미도 야외무대에서 첫 풍악을 울리는 제1회 인천 배호가요제에서도 이어진다고 한다. 작지만 따뜻한 섬김의 정성, 아마도 이것은 김종구(61)씨 생각일 뿐만 아니라, 배호의 예술혼과 민족의 한의 정서가 애절하게 담긴 배호 노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배호 마니아들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생명 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주로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신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하반기 완간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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