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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으로 일컬어진다.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한 반면에, 다른 회원국들의 핵무기 개발은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NPT 6조에서는 전면적인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상 및 조약 체결을 명시하고 있고, 1995년에 NPT의 무기한 연장을 합의할 때도 핵보유국의 핵 폐기는 의무 사항으로 명시되었다. 또한 2000년 회의에서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13개의 핵 폐기 실행 조치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NPT의 불평등성은 내용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미국 등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의 의무 사항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비핵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데 NPT를 활용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비핵국가들과 NGO들은 이번 NPT 검토회의에서도 미국 등 핵보유국의 핵 군축 및 폐기 약속의 불이행을 비판하면서 약속 이행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NPT의 근간은 비핵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한다는 '비확산'(non-proliferation)과 함께 핵보유국의 '핵무기 폐기'(disarmament)를 두 축으로 삼고 있다는 논리이다.

특히 반미성향의 국가들과 보편성에 입각해 핵문제를 다뤄온 '새로운 의제 연합'(New Agenda Coalition) 회원국들, 그리고 전세계의 반핵평화 NGO들은 NPT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최대 주범은 미국이라며 '미핵(美核) 문제'를 강력히 제기할 방침이다.

이들이 미국 핵문제를 비판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이 핵 군축 및 폐기 약속을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안보 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2000년 검토회의에서 합의된 13개항의 실행 조치 이행 수준을 확인해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NPT 무력화시키는 미국

핵무기 폐기를 위한 13개의 합의 사항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로는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서명, 핵실험 중단, 핵 폐기 절차 및 기구 구성을 위한 협상 개시,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 보존 등이 있다.

그러나 1999년 공화당은 클린턴 행정부가 서명한 CTBT를 부결시킨 바 있고, 부시 행정부는 이 조약을 의회에 상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면서 필요하다면 핵실험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위해 2002년 12월 ABM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더구나 미국은 1995년 NPT의 무기한 연장의 토대를 제공했던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NSA)을 사실상 철회한 상황이고, 북한 등 적대 국가의 지하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새로운 핵무기 개발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소극적 안전보장이란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상당수 비핵국가들과 NGO들은 이번 NPT 검토회의에서 이러한 약속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 형태로 체결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1995년 NPT 검토회의를 앞두고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한 소극적 안전보장은 NPT의 무기한 연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며, 이번 회의에서는 반드시 법제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핵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추구해 온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카터 행정부는 1978년 소극적 안전보장을 천명한 바 있고, 유엔 안보리는 1995년 소극적 안전보장에 대한 결의안(985)을 채택한 바 있다. 클린턴 행정부 역시 이러한 약속이 유효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2001년 12월에 작성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북한,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 비핵국가에 대해서도 선제핵공격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소극적 안전보장을 사실상 철회한 상황이다.

미국, 새로운 핵무기 개발도

미국의 '벙커 버스터'용 핵무기 개발 문제도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적대 국가의 지하시설 공격과 관련해 재래식 무기로는 파괴하기 힘들고 기존의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지표 관통형 핵무기 개발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이는 NPT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을 뒷받침하듯 미국은 지난 2003년 11월 소형핵무기의 연구개발을 금지해 온 '스프랫 페이스 조항'을 폐지했다. 그리고 2006년부터 본격 개발한다는 목표 하에 '강력한 지표 관통형 핵무기'(Robust Nuclear Earth Penetrator)의 연구비로 4백만 달러를 책정해 놓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NPT가 규정한 핵 군축 및 폐기 의무에 성실히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핵 선제공격 전략을 명시화하고 북한 등 적대국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새로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밝힘에 따라 국제 사회는 북한, 이란과 함께 미국을 NPT 파괴의 주범으로 비난하고 있다.

가속화되는 핵군비경쟁, NPT의 미래는?

미국 이외의 핵보유국의 핵전력 증강 및 핵정책 변화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러시아는 미국의 MD 및 핵 선제공격 전략에 대응해 기존의 핵무기를 개량하는 한편, 핵 선제공격 전략 채택의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비핵무기 경쟁에서 미국에게 크게 밀리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군사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소 핵억제이론'을 견지했던 중국의 움직임 역시 심상치 않다.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MD 등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하자, 중국 역시 핵미사일의 수를 늘리는 한편, 이동식 미사일과 다탄두 미사일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NPT가 '수평적 확산'(horizontal proliferation) 및 '수직적 확산'(vertical proliferation)에 동시에 직면하면서 근본적인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평적 확산이란, 비핵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섬에 따라 핵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수직적 확산은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의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면서 핵전력의 질적·양적 증강을 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핵보유국과 비핵국가의 입장 차이가 커지면서 이번 NPT 회의는 건설적인 합의에 도달하기는커녕, 서로를 맹비난하면서 각자의 길을 걷는 구실을 찾는 회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NPT에서 자신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일방주의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서방국가들 중심으로 구성된 핵공급그룹(NSG)을 통해 모든 핵기술의 수출을 중단을 추진하는 한편,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맞서 이란은 미국의 방해로 유럽연합과의 핵 협상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보고, 작년 말에 중단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미 NPT에서 탈퇴한 북한 역시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미국와의 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핵 억제력 강화를 공언하고 있다.

NPT체제가 출범한 지 35년 만에 중대한 기로에 서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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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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