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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장은 어깨에 메고 있던 배낭을 채유정의 어깨에 메어주었다. 순간 그녀가 움찔하며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왜 그래요?"
"배낭이 무거워요."

김 경장이 걱정스런 어투로 물었다.
"이걸 메고 뛸 수 있겠어요?"

채유정이 입술을 앙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겨우 몸을 일으키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순간 얼굴이 붉게 변했다. 힘든 것을 겨우 참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몸을 바짝 숙여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김 경장이 얼른 달려갔다.

"왜 그래요?"
"배낭이……."

김 경장이 그 배낭을 자신의 어깨에 둘러맸다.

"안 되겠어요. 이건 제가 가져가야 할 것 같네요."
"하지만……."

채유정이 망설이는 듯 하자 김 경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그 말을 잘랐다.

"이러다간 둘 다 잡히게 됩니다. 그럼 이 유물도 저들 손에 넘어가고 말아요."
"그럼 절 더러 잡혀가란 말인가요?"
"반드시 잡힌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운에 맡길 따름이죠."

김 경장도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공안에게 체포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여기 유물을 무사히 빼내어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김 경장은 어금니를 세게 깨물고는 산자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주춤거리던 채유정도 그 반대쪽으로 뛰어가는 게 보였다.

배낭이 무거운데다 곳곳에 공안이 지키고 서 있어 빠져나오긴 쉽지 않았다. 그는 몸을 바짝 낮추어 무릎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곳곳의 바위에 몸을 숨겼다가 공안이 지나간 틈을 타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몇 개의 피라미드를 지나갈 때였다. 공안이 없는 틈을 타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문득 뒤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공안이 랜턴을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몸을 피하려고 주위를 살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앞에는 또 다른 공안이 지키고 서 있고, 양옆은 모두 피라미드에 막혀 있었다. 그 피라미드에 올랐다가는 오히려 들키기가 더 쉬웠다. 그는 꼼짝없이 바위 뒤에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에서 보면 온전히 들키고 말 것이 분명했다. 어디에도 몸을 돌릴 방향이 없었다.

뒤쪽의 공안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몸을 비스듬히 돌렸지만 몸을 온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더구나 그들은 랜턴을 비추며 주위를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그들이 비추는 랜턴 빛이 김 경장 쪽을 향할 찰나였다. 그때 반대쪽에서 호각을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공안 한 명이 큰 소리를 외치는 것이다.

"저 쪽에 누군가 있다."

그러면서 반대쪽으로 급히 뛰어갔다. 김 경장은 몸을 일으켜 그들이 뛰어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발자국 소리가 우르르 들리고 불을 밝힌 사람들이 한쪽으로 뛰어가는 게 보였다. 채유정이 그들에게 발각된 듯 싶었다. 김 경장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녀를 구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발각된 덕분에 이곳을 지키는 공안은 아무도 없었다.

김 경장은 몸을 바짝 숙인 채 들판을 가로질러 갔다. 군데군데 피라미드에 몸을 숨기며 산자락 쪽으로 부지런히 향했다. 이윽고 들판을 벗어난 그는 경사진 산자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높자란 풀들이 뒤엉키면서 정강이를 잡아챘다. 나동그라졌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풀잎에 벤 손바닥을 가로지르며 피가 내비쳤다.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좁은 산길을 버리고 숲을 향해 뛰어갔다. 나무 뿌리와 칡넝쿨을 헤쳐 나가자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곳이 나왔다. 그는 잠시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거친 숨을 잠시 돌렸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땀이 온몸을 흠뻑 적셨다. 배낭에 든 돌덩이의 무게로 어깨가 찢어질 만큼 아팠다.

달리기도 지쳐 속도를 늦추고 있는데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썩은 관목 낙엽을 밟는 소리였다.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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