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YMCA는 1903년 창립됐다. 당시에도 그랬고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성은 서울YMCA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이다. 실례로 회비를 내는 회원의 약 60%, 자원 활동가의 약 90%가 여성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여성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서울YMCA 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서울YMCA측이 헌장의 총회 구성 조항을 매우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서울YMCA 헌장에 명시돼 있는 총회 참가자격은 ‘만 20세 이상의 기독교회 정회원 입교인 으로, 2년 이상 계속 회원인 사람으로 본회 활동에 참여한 사람’이다. 문구로 보면 여성이 포함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서울YMCA측은 “100여 년 이어온 조직의 정체성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즉, 서울YMCA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에서 ‘Men’은 사람이 아닌 남성만을 의미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서울YMCA의 주장은 여러 면으로 모순이 있다. 우선 서울YMCA는 여성 회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1967년, 헌장의 총회 구성 자격을 ‘남성’에서 ‘사람’으로 고친 바 있다. 이는 서울YMCA측이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따른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늘어나는 여성회원을 고려한 조치였다. 당시 이사회와 총회 의결을 거쳐 헌장이 개정되었지만, 아직까지 여성에게는 총회 구성 자격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 한국YMCA 전국연맹의 60여 지회 YMCA 중 서울YMCA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YMCA는 이미 여성회원에게 총회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천YMCA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이 이사 및 이사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세계YMCA 강령인 ‘도전21 1998년 제14차 세계YMCA대회에서 채택 ’ 2항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 특별히 청년과 여성이 더 큰 책임을 맡고 모든 영역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들의 역량을 키우고 형평성 있는 사회를 위해 일한다”고 나와 있다. 이를 종합하면 서울YMCA의 ‘아주 특별한’ 관습이 국내외에서 보편성과 명분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25년 동안 서울YMCA에서 활동해 온 김성희 서울YMCA 성차별철폐연대회의 공동위원장은 3년 전부터 헌법과 서울YMCA 헌장에 보장된 기본권 쟁취를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암울하던 군사정권 시절, 김씨는 서울YMCA 대학기독청년회에 가입해 기독교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시절 서울YMCA는 기독교인의 청년정신으로 마음가짐을 곧추 세우게 하는 교회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일러 주는 학교였다.
김씨가 정신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서울YMCA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가을이다. 서울YMCA가 이사장의 비리 문제로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자 뜻있는 회원들이 ‘서울YMCA 개혁과 재건을 위한 회원비상회의’이하 비상회의 를 결성했는데, 바로 여기에서 여성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서울YMCA의 성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저도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우리 모두 그때까지 총회 여성참정권은 당연히 있는 것으로 알았고, 다만 관심이 없어 참석하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헌장에 총회 구성 자격이 사람으로 명시되어 있는데도 배제한다는 것은, 결국 여성은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잖아요. 처음부터 그런 황당한 내용을 알았다면 탈퇴하거나 활동을 일찌감치 그만두었을 거예요.”
김성희씨의 싸움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시민단체와 다른 지역 YMCA의 비판과 권고에도 서울YMCA는 꿈쩍도 안했다. 오히려 서울YMCA 이사회는 2003년 11월 공식기구인 여성특별위원회를 일방적으로 해체했다.
또한 이 문제와 관련해 김씨가 2004년 1월 국가인권위에 진정한 사건에 대해, 국가인권위가 2004년 5월 서울YMCA 이사장에게 여성회원의 총회 의결권을 허용하라고 권고하고, 한국YMCA 전국대회 참가자와 전국연맹 이사회가 잇따라 권고문을 발표했지만 서울YMCA는 2005년 2월 또다시 남성만의 총회를 강행했다.
김씨는 서울YMCA가 기독시민운동체로서 이념과 정체성의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한 예로 서울YMCA는 2005년 총회에서 개정된 헌장에 ‘인권’과 ‘환경’을 새로운 사업으로 설정했는데, 이에 대해 김씨는 “밖에서는 인권을 말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여성회원을 차별하는 이중성에 분노를 느낀다. 서울YMCA의 가증스런 여성 차별은 조만간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2002년 가을 개봉된 영화 'YMCA야구단'은 우리나라에서 YMCA 운동이 시작된 이래 가장 큰 관심을 불러모은 히트상품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신여성 민정림(김혜수 분)과 일본 유학생 오대현(김주혁 분)은 나라 잃은 조선 백성의 울분을 달래 주는 든든한 친구였다. 영화상에서 서울YMCA의 초창기 멤버로 보이는 그들 사이엔 어떤 차별도 없었다. 당당한 인격체로서 서로 힘을 보태는 동지요 연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4월호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