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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입니다.
겉그림입니다. ⓒ 리브로
사는 게 편해졌는데도 왜 이렇게 사람 인심이 삭막해졌는가. 이는 돈이 사람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 서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발아래에 돈을 두고 살았던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돈이 사람 머리 꼭대기에 서 있다. 사람은 뒷전이고 돈이 훨씬 값어치 하는 세상이다. 돈은 당연히 사람들 양심을 홀리고 있다. 떳떳하게 일하려는 우리네 부모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또 때 묻지 않아야 될 자녀들까지도 온통 부정을 물림 받는다.

세상이 이토록 삭막해졌는데도 조용히 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사는 것 자체가 차라리 거짓 것 같은 세상이길 바라면서도 너도나도 쉬쉬하고 있다면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야 이런 세상이 너무 좋다며 발 빠르게 어울려드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너무 힘든 세상이라 힘들다는 쉰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발 벗고 나서서 이 거짓 것 같은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소리치고 싶지만, 이 거짓 같은 세상 속에 빠져 있는 자신도 똑 같은데 누가 누굴 탓하겠냐며 침묵하는 사람. 부정한 일을 크게 저지른 사람이나 작게 저지른 사람이나 부정한 것 자체는 똑같은 것이니, 너나 나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며 목소리를 다문 사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그럭저럭 눈감아 버리고 살면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하고 모두가 편하다며, 그저 사람들 앞에 고개를 떨어뜨리는 사람.

〈2〉공선옥이 쓴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그래도 거짓을 거짓이라, 부조리를 부조리라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다. 이 사회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거짓을 거짓이라고 똑똑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노동 현장에도 공사판에도 대기업에도 공무원 사회에서도 학교 강단에도 환경단체에도, 그 모든 삶 속에서 거짓으로 허물어져가는 이 사회를 바로 건져 올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산동네라는 쪽박은 깨졌다. 가난해서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의 근거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산산이 부서졌다. 돈 많은 사람들이 정원에 값비싼 수목 심어 놓고 행복해하는 것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사과궤짝에 파, 시금치, 채송화 심어 놓고 행복해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을진대, 보호받는 것은 부자의 행복이다. 가난한 이의 행복은 보호받지 못한다. 보호받지 못해도 가난한 사람들은 주장하지 못한다.”

이는 공선옥이 쓴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당대․2005)에 나오는 글이다. 공선옥은 이 거짓 같은 세상, 온통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해 시퍼런 칼 날 하나를 들이대고 있다. 그리하여 그 칼날로 온통 거짓과 부정과 부조리들을 사그리 잘라 낼 태세다. 모두들 쉬쉬하며 조용히 지내자고 할 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그냥 넘어가자고 할 때, 그녀만큼은 그럴 수 없노라고 애써 분을 토하고 있다.

그녀가 보는 거짓 것이란 어떤 것들인가. 차라리 이 사회가 거짓말 같은 세상이길 바라는 그런 부조리한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도무지 이 사회가 어떤 세상이기에 그토록 야박한 사회이며, 어떤 세상이기에 암울하고 서글픈 사회이며,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인가. 과연 그것이 무엇인가.

그건 시청 앞 잔디 광장을 일구는 데는 50억원이나 넘는 돈을 쓰면서도 공원벤치에 드러눕고 싶어 하는 노숙자들을 저 멀리 쫓아내며, 그들이 드러눕지 못하도록 쇠 팔걸이를 박는 이 사회가 그렇다.

또 파업을 이유로 구속과 정직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가압류까지 당한 채 해고자들 앞에서 죄책감마저 느껴야 했던 한 노동자는 끝내 목숨을 끊었건만, 이 땅에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이 땅에 태어날 아이한테 이중국적을 갖게 해 주겠다며 원정출산을 하고 있는 이 사회가 그렇다.

또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이 돈을 곧 인격으로 삼아 놓았듯이, 이 나라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모든 아이들이 좋은 성적만이 참다운 인격인 줄 알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이 최종 목표요 또 최종 인격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 서글픈 현실이 그렇다.

그리고 젖이 멀쩡하게 퐁퐁 솟아나는 데도 젊은 아기엄마들이 그 피 같은 젖을 짜서 버리고, 대신 소젖 값을 벌려고 자본이 들끓는 저 비참한 전쟁터로 아침마다 나가는 이 참담한 모습들이 그렇다.

“본질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이 무시당하고 협박당하고 위협받는 것은, 사람보다 돈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도 어렵다는 말에서 내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획득해야 하는, 누려야 하는 많은 귀한 가치들을 오직 먹고 사는 문제 하나로 평정하고 초토화시키려는 음험한 의도를 느낀다고 한다면 이 또한 나의 오해일 뿐인가.”

〈3〉부조리한, 거짓 것 같은 세상 속에서도 참된 세상을 꿈꾼다

‘살기 위해 애쓰는 순간’들이 지금도 온통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는 공선옥씨. 어린 시절 밥숟가락을 놓지 않으려고 온 식구들이 죽기 살기로 달라붙어 일했다는 경험을 갖고 있는 그녀. 어느 해 겨울에는 집안에 쌀이 없어 어머니와 함께 이웃 할머니 집으로 쌀을 구하러 갔는데, 겨우 장리쌀 두 되를 얻어오다가 그만 눈길에 미끄러져 쌀을 다 엎질러버린 까닭에, 더군다나 눈바람이 쌀까지 휩쓸어 가버린 까닭에 엉엉 소리를 내면서까지 울었다던 그녀.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배고픈 상태는 잘 견딜 수 있다지만 배부른 상태만은 견디지를 못한다고 한다. 살이 찔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에 그렇다는 것이다. 못 먹고 못 입으면서까지 자식들 뒷바라지에 온 힘을 쏟았던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서 그러는 것이다.

“청계천 복개 공사를 하면서 하루 한 끼나 빵 한 조각으로 버티며 비곗 다리를 오르내렸다던 아버지, 소금간한 주먹밥을 뽕잎에 싸들고 울력 나가던 우리 어머니,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랑 함께 살았던 나의 옛집에서 늘 배고팠던 목숨 달린 것들이 내지르던 온갖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생각난다.”

이런 까닭에, 그녀는 제 아무리 맛나고 좋은 음식을 보고도 절대로 감동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시절을 살아왔기에, 이토록 야박하고 암울하고 서글픈 사회, 이토록 부조리한 사회가 차리라 거짓말 같고, 거짓 것 같은 세상이길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는 모두가 쉬쉬하며 그럭저럭 좋게, 좋게 짜 맞추며 살려고 해도, 거짓을 거짓이라 꼬집는 일을 쉬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자꾸자꾸 그 시퍼런 칼날을 들이 댈 것이다. 그래야만 이 거짓 것 같은 세상 속에서도 참된 세상을 꿈 꿀 수 있고, 또 그런 세상에 대해 올곧게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희망은 가장 버림받은 곳에서 싹튼다고 했던가. 오늘, 이토록 많은 천대를 받고 있으니, 어쩌면 이 땅은 어떤 의미에서는 희망 또한 가득한 땅이 아닐까, 하는 기대 하나 붙잡고 그래도 나는 이 땅에서의 신산한 삶을 견뎌내고 싶은 것이다.”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당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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