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 화창한 날씨 속에 혜준이가 다니는 화순제일초등학교 봄 운동회가 열렸습니다. 3일과 4일 이틀간에 걸쳐 열린 운동회에는 13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해 뛰고 달리고 구르며 신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제가 4학년 때까지 다닌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는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어 전 학년 어린이들이 참가해 운동회가 열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응원가로는 "따르릉 따르릉 전화왔어요, 백군이 이겼다고 전화왔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거짓말, 청군이 이겼다고 전화왔어요" 뭐 이런 노래가 주로 불렸습니다.
응원도 '응원술'과 나무판자 두 개를 맞대 소리를 내는 '짝짝이', 색도화지를 폈다 접었다 하는 도화지 응원, 음료수 캔에 모래나 쌀, 콩 등을 넣어 흔들며 소리는 내는 그런 응원도구들이 이용됐습니다.
응원단장을 맡은 친구들은 색색 노끈을 엮어 팔찌와 치마 등을 만들어 손목과 발목, 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온몸을 흔들어대며 응원을 펼쳤지요. 운동회가 열리면 각 반에서는 끼 있는 응원단장을 뽑는 일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응원단장의 능력(?)에 따라 응원점수에 많은 차이가 생겼거든요.
엄마가 정성껏 싸온 김밥이며 삶은 밤, 삶은 계란, 사이다, 콜라 등은 빼놓을 수 없는 간식거리였답니다. 국민학교 운동회는 온 마을이 들썩거릴 정도로 큰 행사였습니다.
그러다가 국민학교 4학년말,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5학년이 되어 처음 맞는 운동회는 운동장이 좁은 관계로 1,3,5학년과 2,4,6학년이 나뉘어 이틀간 운동회를 하게 됐습니다. 물론 운동회가 오전에 끝나는 관계로 점심은 각자 집에 가서 먹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학교 운동회는 운동회가 아닌 체육대회 정도로 기억이 됐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전교학생이 다 모인 가운데 열린 운동회를 해본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운동회가 열렸는데도 그때 그 시절의 '반쪽짜리' 운동회는 여전합니다.
하긴 갈수록 늘어나는 인구에 좁은 땅덩어리, 바쁜 일상들 탓에 전교생이 엄마아빠와 함께 뛰고 달리는 운동회를 열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도 있겠지요. 어쨌든 혜준이의 운동회에 참석해 아이가 속한 팀을 응원하고 달리기와 줄넘기에 참여하면서 나름대로 신나는 오전을 보내고 나니 문득 어릴 적 운동회가 기억납니다.
운동회 전날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자다가도 몇 번씩 하늘을 쳐다보고, 혹 비라도 내리면 '어떡해, 어떡해'하면서 엉엉 울던 그때 그 운동회를 혜준이에게도 알려주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시골이라지만 4만5천의 인구가 밀집되고 그 안에 사는 아이들이 3곳의 초등학교에 나눠 다니는 제가 사는 화순에서조차도 말입니다.
하지만 어릴 적 오전 내내 땀으로 범벅이 될 정도로 뛰고 달리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그늘을 찾아 엄마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친구들과 나눠먹던 그런 운동회의 기억을 혜준이와 강혁이, 남혁이에게도 한 번쯤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싶습니다.
어쨌든 혜준이는 "모든 어린이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발휘하고 질서를 잘 지켜 주기 바라며 오늘 하루 맘껏 뛰고 달리며 씩씩한 제일초교 학생들의 기상을 보여 달라"는 김영률 교장선생님의 당부대로 신나고 뛰고 달리더니 얼굴이 새까매졌답니다.
이틀 동안 학생들은 달리기와 청백 기마전, 단체 무용 등을 펼치며 신나는 한때를 보냈습니다. 또 5학년 학생들은 희망하는 학생들에 한해 운동장을 4바퀴 도는 1000m 달리기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체력장'이라는 이름으로 달리던 그 오래달리기 말이에요.
아이들의 운동회를 보기 위해 참석한 학부모들도 100m 달리기, 줄다리기 등의 게임에 참여하며 잠시나마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을 가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