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들이 "할아버지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박하준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며 "아이들과 친구가 돼 준다는 그런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박하준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며 "아이들과 친구가 돼 준다는 그런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 방춘배
선생님과 아이들의 떠들썩한 한자 공부가 한창인 곳은 남양주시 평내동 장내마을 주공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마련된 꿈나무공부방.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20여명의 아이들이 한자 공부를 위해 모여든다.

한자를 가르치고 있는 박하준 선생님은 올해 71세의 할아버지. 6년 전 초등학교 교장에서 정년 퇴임한 후 공기 좋은 곳에서 노년을 보내려는 마음으로 이곳 주공아파트에 이사왔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제 놀다가도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보면 달려와 인사를 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제 놀다가도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보면 달려와 인사를 한다고 한다. ⓒ 방춘배
그런 박하준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직장일에 바쁠 텐데도 동대표들이 아파트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어요. 그래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고민했죠."

할아버지는 경로회 동료 노인들과 상의한 끝에 무료 공부방을 생각하고 수업계획안까지 만들었다.

"아이들을 행복하고 톡톡 튀게 만들자는 생각을 모으니 누구는 서예를 잘하고 누구는 바둑을 잘하고... 직접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좋겠다는 계획이 나오더군요."

"마음만 굴뚝 같았다"는 입주자대표회의 박성준씨는 "어르신들이 직접 수업계획안까지 준비하시는 모습에 뛸 듯이 기뻤고 생각만 있던 공부방이 쉽게 만들어지게 됐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아파트 어르신들을 다시 한 번 존경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해서 주공아파트 꿈나무공부방에서는 매주 두 차례씩 한자와 서예, 바둑을 가르치게 됐다. 아파트 한켠에 있는 '채소원'이란 텃밭을 이용해 아이들과 자연관찰 일기반도 운영하고 있다.

서예를 가르치고 계시는 구교선 선생님. 경력 5년의 상당한 입선 경험도 갖고 계신 서예가이시다.
서예를 가르치고 계시는 구교선 선생님. 경력 5년의 상당한 입선 경험도 갖고 계신 서예가이시다. ⓒ 방춘배
바둑반 선생님이면서 자연관찰 일기반에서 아이들과 함께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자연체험학습을 지도하고 있는 김은철 할아버지는 "꿈나무들을 우리가 안 돌보면 누가 돌보겠소"라며 "바둑 수업이 끝나도 경로당까지 따라와서 바둑을 두자고 하는데 참 기특하다"고 가르치는 재미를 귀뜸했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다고 한다. 3학년인 아이를 공부방에 보내고 있다는 박진희씨는 아이가 부쩍 달라졌다고 말한다. 박진희씨는 "같은 한문 교재를 가지고도 예전에는 이리저리 몸을 꼬면서 하기 싫어하더니 공부방에 다니고부터는 한문 공부를 스스로 하고 재미있어 한다"며 달라진 모습을 전했다.

아이들이 공부방에 다니면서 달라진 모습은 의외로 많다. 아파트 안에서나 밖에서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고도 서슴없이 인사를 하고, 싸움을 하다가도 지나는 노인분의 한마디에 쉽게 그친다고 한다. 여기에 다양한 친구들까지 사귀게 되니 아이들에겐 일석삼조.

이렇게 아파트 단지내에서 노인과 학부모, 아이들이 남다른 공동체를 일궈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공부방을 다니며 아이들이 많이 달라져 일부러 학원보다 이곳을 보내는 학부모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공부방을 다니며 아이들이 많이 달라져 일부러 학원보다 이곳을 보내는 학부모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 방춘배
입주자대표회의 김상균 회장은 "현재 동대표가 10명이 있는데 모두 30대와 40대 초반이고 이들이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고자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 자신의 나이도 올해 서른일곱으로 열정이 넘친다.

이에 대해 박하준 할아버지도 "아이들 부모들이 가운데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중간 역할을 훌륭히 해 내고 있고 여기에 경로회를 중심으로 노인들도 적극 공감하고 나서다 보니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린이날인 5일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자체적으로 사생대회를 치러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또 아이들과 어른들이 맘껏 책을 읽을 수 있는 주민도서관도 이날 개관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 주민공동체를 이뤄가고 세대와 세대를 잇는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양주지역 인터넷신문 [남양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