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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철쭉 1
황매산 철쭉 1 ⓒ 정일관
아이들은 그 선물의 의미를 잘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체념한 것이지 잘 모르겠지만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 고마웠습니다. 이제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아이들은 합천군 생명의 숲에서 하는 어린이날 큰잔치를 보러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종류의 어린이날 잔치에 가기 싫었습니다. 공연과 많은 먹을거리, 그리고 풍선과 솜사탕, 북적대는 인파로 이미 정형화되어 버린 행사장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또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황매산 철쭉 2
황매산 철쭉 2 ⓒ 정일관
"얘들아, 어린이날은 왜 생겼을까?"
"어린이를 더 잘 위해 주라고요."

"그래, 바로 그거야! 우리 어린이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고 꿈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지. 그런데 말이야. 어린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어린이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아빠 생각엔 어린이가 진정 훌륭하게 성장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 날 만큼이라도 자연과 가까이 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가족이 함께 지내는 것만큼 멋진 어린이날이 어디 있겠어? 어때 황매산 철쭉 보러 가지 않을래?"

아이들은 어느 정도 아쉬움이 있었겠지만 저의 이 체계적인(?) 제안에 대해서 마땅히 반박할 수 없어서인지,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작은애가 생명의 숲에서 하는 큰잔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그럼 황매산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가 나오자는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황매산 철쭉 3
황매산 철쭉 3 ⓒ 정일관
김밥과 물을 준비하고 혹 추울지도 몰라 여벌옷을 챙겨서 철쭉꽃이 아름다운 합천 황매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들른 생명의 숲 잔치 마당에서 이미 실망하고 나오는 두 가족을 만나 황매산 행을 제안하자 흔쾌히 동참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매년 철쭉제가 열리는 황매산 중턱을 향해 닦여 있는 길을 따라 차로 올라갔습니다. 그 길에는 휴일을 맞아 우리들처럼 이미 많은 등산객들과 차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황매산 넓은 평전엔 철쭉꽃이 만발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황매산 철쭉 4
황매산 철쭉 4 ⓒ 정일관
맨 먼저 귀에 들려온 것은 사람들의 감탄사였습니다. "우와, 저 꽃들 좀 봐!" "이야, 정말 멋지다." "햐, 기가 막히네!" 사람들은 꽃 속으로 전신을 넣으며 저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을 연신 주체하지 못 하였습니다.

올라가다 조급한 마음에 철쭉을 지고 사진을 찍으려 하면, "아이구, 저 위에 가면 훨씬 예쁜 곳이 많아요. 여기서 찍을 거 없어요"하며 안타까움을 전하며 내려가는 등산객도 있었는데, 얼마나 예쁘게 피었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습기도 하였습니다.

황매산 철쭉꽃밭에서 필자의 가족
황매산 철쭉꽃밭에서 필자의 가족 ⓒ 정일관
아, 정말 그랬습니다. 평전에 올라가 바라본 산은 철쭉의 향연이 한창이었습니다. 지리산 세석평전의 철쭉보다 더 아름다운 철쭉들이 황매산을 온통 수놓고 있었습니다. 철쭉이 무리무리 모여서 연붉은 산마을을 하나 이루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우리도 꽃 속으로 들어가 푹 파묻으니, 우리 몸에 연붉은 꽃물이 흠씬 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감탄과 심호흡으로 꽃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한 떼의 안개가 몰려들었습니다. 철쭉꽃잎에 물방울이 맺히며 색다른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기온이 떨어져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가지고 간 김밥을 서둘러 펼쳤습니다. 철쭉꽃에 둘러싸인 옴팡한 자리에 김밥을 풀어놓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철쭉에 둘러 싸여 김밥을 맛있게
철쭉에 둘러 싸여 김밥을 맛있게 ⓒ 정일관
김밥을 다 먹고 나자 이젠 바람도 불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더 추워졌고 비도 흩뿌리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아쉽고 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려오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우리 여성 동지들은 동동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며 앉았고, 아이들과 운전 요원인 남자들은 파전과 어묵을 축내며 요동치는 날씨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때부터 비는 계속해서 내렸습니다. 그래서 잔치를 벌이고 있는 곳도 다 파장이 되었고, 어린이날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촉촉이 내린 비는 입하의 더위를 식혀 더욱 봄답게 하였고, 올해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린이날 황매산을 오른 사람들
어린이날 황매산을 오른 사람들 ⓒ 정일관
아이들이 황매산에서 보낸 어린이날을 얼마나 잘 새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년 어린이날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을 찾을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날, 어린이날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선물로 줄 것인가를 늘 고민하면서 어린이날을 맞이할 작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5월 8일부터 합천 황매산 철쭉제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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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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