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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버이날이라며 가판대가 설 만한 곳에는 어디든지 빨간색 카네이션이 환한 미소를 머금은채 부모님 은혜에 감사할 자식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난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 꽃들을 지나쳐 그야말로 일부로 날을 잡은 것처럼 일년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라디오 방송에 사연이 소개되서 자유이용권이 상품으로 날라 왔는데, 오늘이 아니면 그걸 쓸 날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삼십여분을 달려 손목에 감아주는 하얀 밴드를 달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날씨는 내 마음만큼이나 스산함이 뚝뚝 묻어나왔습니다. 아이들의 얼굴도 금세 파르르해졌습니다.

가슴에 카네이션을 꽂은 어르신들도 자식들의 손을 잡고 많이 나오셨습니다.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난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얼른 고개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나 또한 부모이기에 그분들의 카네이션이 부러워서가 아니라 내 부모님가슴에 이 흔하디흔한 카네이션을 단 한 번도 달아드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가난한 어린 시절에는 카네이션을 사는 사치도, 그걸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호강도 누려볼 새가 없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어버이날까지 왕복 사흘은 걸리는 그 고향집을 찾을 여유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며칠 전, 친정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아버지 어버이날이 몇 날 안 남았는데 올해도 카네이션을 못 달아드려서 어떡한대요. 죄송해요"했더니, 그것도 다 팔자좋은 사람들 얘기란다.
멀리 사는 이 딸의 마음이 아플까봐 아버지는 선천적으로 꽃을 싫어하신단다.

결혼한 지 십년쯤 되는 주부처럼 "묵지도 못 허는 그놈의 것을 뭣헐라고 돈을 주고 사야. 통 신경쓰질 말어라"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픕니다. 가까이만 사셔도, 하룻길로 찾아갈 수만 있어도, 꼭 한번은 내 손으로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건만 그것도 효도라고 내게는 그런 기회조차 오지를 않는 것인지.

그래서 우울할 때는 사람 많은 곳으로 가라는 그 말처럼, 오늘이 어버이 날인지도 모른 채 새벽부터 일어나 갯가에서 톳을 메시고 먼 바닥에서 그물을 건져 올릴 그 부모님에게 죄송하면서도 놀이공원엘 갔습니다. 엄마를 닮아 멀미 때문에 놀이기구 한 가지 탈 줄도 모르는 내가 하얀 자유이용권을 팔에 두르고 찬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닌 이유가 될까요?

그런데 놀아도 노는 것이 아니고, 걸어도 걷는 것이 아닌 것 같은 이 어리석은 어미 때문인지 큰 아이가 넘어져 무릎이며 팔꿈치를 동전 만하게 쓸려버렸습니다. 게다가 넘어지면서 돌부리에 찍혀서 눈썹 옆엔 커다란 난봉까지 생겨버렸습니다.

엉엉 울면서 아이가 품으로 들어오는데, 그 울음에 맞춰서 같이 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어른만 아니라면, 아니 나를 세상의 전부라 믿는 아이들만 아니어도 나 역시 아이처럼 일부러 넘어져서라도 한번 실컷 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 나도 내 엄마 품에 안겨서 한번 실컷 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우는 아이를 데리고 의무실로 가서 치료를 한 뒤, 놀이공원을 조용히 빠져나오는데.

놀이공원 입구에서 파는 유난히 빨간 카네이션이 내 눈에 와 박혀 나도 모르고 한 송이 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부모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향기에 취할 만큼 한 아름 달아드리리라 다짐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아버지,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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