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는 백두산에서부터 태백산을 거쳐 계룡산으로 이어진 국사봉(충남 계룡시 두마면 향한리 소재) 아래 정맥에 자리하고 있다.
故 숭산 선사의 한국불교 세계화 뜻에 따라 지난 2000년 3월에 개원, 그 해 여름 하안거에 들어갔다. 안거는 스님들과 신도들의 '집중학습기간'으로 보면 된다. 무상사는 서울 화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대표적인 외국 수행자를 위한 참선도량이다.
또 동학사, 갑사, 신원사와 같은 유서 깊은 사찰들이 계룡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 근대 불교의 정신적 스승인 경허, 만공 스님과 같은 위대한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8일 계룡산 무상사를 찾아 세속적인 욕망을 끊고 구도의 길을 가려는 성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화두에…오직 행할 뿐
'나는 누구인가?' 라는 영원한 물음을 갖고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산 넘고 물 건너 머나먼 이국땅 계룡산 산골까지 모여든 성자들. 미국, 싱가포르, 중국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외국 수행자들이 용맹정진에 여념이 없다.
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는 묵언수행(默言修行)을 강조한다. 묵언수행은 일반적으로 말을 하지 않고 하는 참선수행으로, 구체적인 이유를 말함으로써 짓는 온갖 죄업을 짓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정화시키고자 하기 위함이다.
철저한 묵언수행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법회를 연다. 이 때 참석자들은 수행에 대한 모든 질문을 할 수 있다. 오가는 질문과 대답을 '공안인터뷰'(공안: 선종(禪宗)에서 도를 깨치게 하기 위하여 내는 과제) 라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오직 모를 뿐 (不識 불식)'의 기본적인 공안을 '오직 행할 뿐'으로 날마다 오직 한마음으로 용맹정진 해서 크게 깨달아 고통 받는 중생을 구하는 것이다.
묵언 수행을 강조하기 때문에 1년 이상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용맹정진에 힘쓰고 있는 스님들도 눈에 띈다.
보스턴 대학 시절 숭산 선사 만나 출가... 20년 동안 참선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말할 때 숭산 선사를 빼놓을 수 없다. 서산대사 이후로 근대 불교에서 선종을 중흥시킨 경허, 만공으로 이어져 온 전통 임제의 법맥을 이어받은 고봉스님으로부터 숭산이라는 당호와 전법계를 받은 78대 조사.
숭산 선사는 미국 등 전 세계 30개국에 120여개의 홍법원을 개설, 해외포교를 통해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불교에 입문하게 했다. 지금까지 숭산 선사의 가르침을 받은 5만여 벽안의 납자와 제자들만 보아도 그가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알 수 있다.
그 중 한 분이 현재 무상사의 주지로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출신 무심 스님이다. 79년 미국 보스턴 대학교 화학과 재학시절 숭산산 선사를 만나 발심하여 수계를 받고 케임브리지 선원에서 스님 지도 아래 참선 수행을 시작했다.
이후 1984년 26세에 숭산 큰 스님을 은사로 출가, 법명 無心을 받고 숭산 스님을 시좌스님으로 호주, 유럽 등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포교활동에 나섰다.
무심 스님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다. 그렇지만 늘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다고 한다. 지식만으로는 알 수가 없고, 정신 세계와 진리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보스턴 대학교 시절 은사이신 승산 선사와 만나 스님의 인도로 출가하게 되었다.
"케임브리지 선원에서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숭산 스님께서는 '내려놓게! 모두 내려놓게나! 이것이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네' 라는 한 구절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저는 출가했고 지난 20년 동안 '내려놓아라! 또, 모를 뿐인 마음으로 곧바로 정진하라'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승산 스님께서는 '베풀며 살아가라고 강조하셨고 한국인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라고' 당부하셔서 늘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 무상사 조실(사찰에서 최고 어른을 이르는 말)로 있는 대봉스님의 경우 숭산 선사의 5만여 벽안의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법을 받았다. 미국 켄터키주립대학 경영학 교수였던 그는 1977년 숭산 선사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됐다. 이후 84년 34세에 미국 프로비던스 홍법원에서 숭산 선사를 은사로 출가해 한국 스님이 되었다.
사부대중이 다함께 스님과 같은 선방에서 수행
한국불교는 1500여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스님들을 위한 선방, 강원, 법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불교를 체험하고 수행하고 싶어도 언어장벽 등 많은 어려움에 부딪친다. 그래서 숭산 선사의 불교의 세계화 취지에 따라 외국인들도 한국 참선을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사실 한국사찰에서는 선방 입방이 어렵고 번거롭다. 지금은 스님이 계시는 선방을 일반 외국인들에도 개방해 같이 수행할 수 있다. 보통 한국 선원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승속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본성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승속을 초월해 사부대중(비구승·비구니승·처사·보살)이 같은 선방에서 안거를 한다.
최근 일반 사찰에서도 재가불자들을 위한 템플스테이(사찰체험)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스님은 스님들만의 공간에서, 재가불자들은 또 다른 공간에서 각각 따로 수행을 하고 있음에 비추어 파격적이다.
이밖에도 한국 전통사찰과 다른 점이 눈에 많이 띈다. 법문도 영어로 하고, 반야심경 독경도 한국어와 영어로 번갈아 한다. 발우공양 역시 한국사찰과 똑같지만 한식을 위주로 하되 양식(샌드위치, 야채류 피자)으로도 하고 있다.
이곳 수행자들이 결제(안거)에 임하는 정신자세는 한국사찰과 마찬가지로 엄격하다. 결제 중에는 묵언을 준수해야 하고 전화나 서신은 물론 외부와의 접촉은 일체 허락되지 않는다.
주지인 무심 스님께서 지도법사로 결제동안 지도와 함께 매주 법문과 정기적인 선문답을 가져 한국불교의 이해를 돕는다.
요즘 무상사에서도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온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연등을 손수 만드는 등 행사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종무소에서는 때마침 원성 스님(싱가포르 출신 비구니승)이 한국 선불교에 관심이 있어 찾아온 2명의 외국인들을 위해 친절하게 템플스테이(사찰체험)를 설명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중생구제에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원성스님. 이곳에 오기 전에는 재가불자로서 인도, 네팔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수행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수행자에게서 모두 놓아 버린 자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청정함과 평화를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홈페이지 http://www.musangs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