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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고, 그리고 제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집입니다.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고, 그리고 제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집입니다. ⓒ 장희용
지금은 멋진(?) 함석집이지만 제가 초등학교 5학년(83년)때까지 초가집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초가지붕을 새로 할 때는 거의 동네잔치 수준이었습니다. 동네 아저씨들이 모두 모여 일을 하던 관계로 음식이 많이 필요했는데, 아줌마들이 우리 집에서 음식을 만들곤 했지요. 물론 제일 즐거운 것은 저를 포함한 아이들이었죠. 먹을 게 많았으니까요.

이런 초가집이 지금의 함석집으로 바뀐 건 작은 누나 때문이라고 하네요. 작은 누나가 결혼할 때 ‘요즘 세상에 초가집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매형 될 분한테 집 보여주기가 창피하다고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작은 누나 결혼하기 전에 집을 새로 지었답니다.

집 뒤에 있는 큰 나무. 느티나무인데 500살입니다. 어릴 때 그네도 매달아 타고, 누가, 누가 높이 올라가나 시합도 하고 그랬는데, 보호수라는 푯말 맞추기 돌 던지기 시합하다 동네 어른들한테 무지하게 혼 난 적도 있습니다. 신성한 나무에 돌 던진다고.

여름에는 동네 어른들 휴식터 노릇도 톡톡히 했는데, 지금은 그런 풍경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여름 되면 그네 만들어 아이들 태워줄 생각입니다.

우리 집 보물 1호 ‘음매소’. 큰 누나는 이 소를 팔아서 시집갔습니다.
우리 집 보물 1호 ‘음매소’. 큰 누나는 이 소를 팔아서 시집갔습니다. ⓒ 장희용
아버지가 ‘음메 소’ 점심을 주고 있습니다. 소를 아버지가 돌본다는 이유로 송아지를 팔면 어머니는 겨우 만원만 생긴다고 합니다. 어느 해인가는 어머니가 소를 사는 장사한테 떼(?)를 쓰셔서 3만원이라는 거금을 챙기셨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우리 집은 수십 년 동안 소를 3-4마리 정도 키웠는데, 지금은 아버지가 연세도 많으시고 기력도 예전같이 못해 두 마리만 키웁니다.

예전에 ‘소 팔아 자식 가르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거 진짜거든요. 새끼 나면 조금 키우다 팔아서 그 돈으로 등록금 내고 그랬대요. 우리 큰 누나 시집 갈 때는 진짜로 소 팔아서 그 돈으로 시집보냈다고 하대요.

지금도 큰 누나 오면 어머니는 웃으면서 ‘너, 얘들한테 절해라. 너 얘들 땜에 시집갔다!’하시면 큰 매형은 얼른 지푸라기를 손에 들고 “너희들 땜에 내 인생 꼬였다!”면서 소를 때리는 흉내를 냅니다. 덩달아 조카들도 큰 매형과 함께 합세해 때 아닌 소를 원망(?)하곤 하지요.

아무튼 농사지어야 남는 것도 없는 빠듯한 시골살림에 새끼를 낳아 판돈으로 자식들 가르치고 살림살이에 보태니, 예나 지금이나 소는 시골에서는 보물 1호랍니다. 지난 번 강원도 지역에서 산불 났을 때 어른들이 소 먼저 대피시키는 것 보고 저는 충분히 이해가 가더군요.

소가 무서운 우리 딸. 맨날 이렇게 빼꼼이 고개만 내밀고 쳐다봅니다. 그렇게 구경하다 소가 자기 쳐다만 봐도 깜짝 놀라 도망가기 일쑤입니다.
소가 무서운 우리 딸. 맨날 이렇게 빼꼼이 고개만 내밀고 쳐다봅니다. 그렇게 구경하다 소가 자기 쳐다만 봐도 깜짝 놀라 도망가기 일쑤입니다. ⓒ 장희용
안 무섭다고 아무리 말해도 우리 딸은 소가 무서운 가 봅니다. 시골집에 간다고 하면 맨 날 ‘음매소’ 보자고 하면서도 정작 소 앞에만 가면 이렇게 고개만 빠끔히 내밀고 ‘음매소야! 나 왔어’하곤 합니다. 그러다 소가 한 발짝 움직이거나 고개를 틀어 자기를 보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을 치곤하지요.

저 어렸을 적에는 소가 무섭지 않았는데, 소달구지 타기도 하고, 아침에 아버지가 풀 먹이려고 냇가 근처에 소를 매다 놓으면 학교 끝나고 와서 집으로 소를 데리고 오곤 했는데, 가끔씩은 고삐를 놓치기도 하지만 소는 뚜벅뚜벅 저 혼자서도 잘만 집을 찾아갔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린 소가 일할 나이가 되면 길을 들이는데, 코뚜레를 뚫고 멍에를 씌운 다음 달구지를 끄는 연습을 하는데, 무게가 나가게 하기 위해 돌을 올려놓고 동네를 돕니다. 동네 아이들이 쫓아다니면서 태워달라고 졸라대면 아저씨들은 다친다고 안 된다고 하면서도 기꺼이 소가 끄는 연습용 달구지를 태워주곤 했지요.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문명발달의 혜택으로 소의 팔자가 바뀌어 일을 안 하니 길을 들일 필요가 없어 그런 추억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집 보물 2호 ‘비닐하우스’ . 한 해 논농사, 밭농사 새싹들은 모두 이곳에서 자란답니다.
우리 집 보물 2호 ‘비닐하우스’ . 한 해 논농사, 밭농사 새싹들은 모두 이곳에서 자란답니다. ⓒ 장희용
비닐하우스가 보물 2호라니까 조금 의아하죠? 이것도 다 시골이기 때문이랍니다. 이 조그만 비닐하우스에서 1년 농사가 시작되거든요. 여기서 벼 싹도 틔우죠, 고추 모종도 심죠. 상추, 양파, 고구마, 감자, 오이, 호박, 강낭콩, 옥수수 등 논과 밭에 심을 모든 새싹들이 이곳에서 먼저 자란 후 제 갈 길을 가게 됩니다. 농사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이 아닐 수가 없죠.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제일 걱정되는 것이 이 비닐하우스입니다. 밤새 바람에 비닐하우스 날라 가지 않을까 거의 뜬 눈으로 새다시피 하지요. 또 하나. 추운 겨울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정겨운 입담 장소로 딱 입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어머니는 이곳에 많은 것을 심었습니다. 딸아이가 옥수수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옥수수를 많이 심었네요. 사진 오른 쪽 상추 옆에 모양 다른 것이 어린 옥수수랍니다. 뒤쪽에 있는 것이 파릇파릇 커가고 있는 어린 무고, 왼쪽에 있는 것이 고구마이구요. 아시다시피 고구마는 줄기를 잘라 땅에 심으면 그 줄기에서 고구마가 주렁주렁 열리기 때문에 이 만큼만 모종으로 키워도 많은 양의 고구마를 수확할 수 있답니다. 고추모도 있네요. 처갓집에 갖다 줄 고추모입니다.

우리 집 보물 3호 ‘장독대’ . 그런데 이상한 건 똑같은 된장인데, 시골집에서 먹으면 맛있는데 왜 집에 가지고 와서 끓이면 맛이 없는 걸까요?
우리 집 보물 3호 ‘장독대’ . 그런데 이상한 건 똑같은 된장인데, 시골집에서 먹으면 맛있는데 왜 집에 가지고 와서 끓이면 맛이 없는 걸까요? ⓒ 장희용
저를 비롯해 형과 큰 누나, 작은 누나 4남매 모두가 어머니가 담가 주신 된장과 고추장, 간장을 가져다 먹습니다. 심지어 서울에 있는 이모와 외삼촌까지도 이 장독대를 애용하고 있지요.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위치한 장독대. 우리 식구들 식탁을 책임지고 있으니 보물이 아닐 수가 없지요.

자랑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된장 담그는 솜씨 하나는 동네에서도 소문났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모두 모일 때는 다른 반찬 하나도 안하고 커다란 뚝배기에 된장찌개 하나 끓여 놓고 먹습니다. 다른 집 며느리들은 명절 때 면 힘들다는데 우리 집은 그런 걱정 없습니다. 어머니가 해 주시는 된장찌개 하나면 되거든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똑같은 된장인데, 시골에서는 맛있는데 집에 가지고 와서 끓여 먹으면 영 그 맛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나저나 시골 어머님이 안 계시면 이 맛있는 된장은 어디에서 갖다 먹을 수 있을까요? 아내한테 배우라고 할까요.

어머니의 보물 1호인 ‘꽃밭’.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시는데 아직 한번도 꽃을 선물한 적이 없네요.
어머니의 보물 1호인 ‘꽃밭’.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시는데 아직 한번도 꽃을 선물한 적이 없네요. ⓒ 장희용
사실 이곳을 꽃밭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아주 조그맣거든요. 하지만 어머니는 부지런히 꽃을 심고 가꾸십니다. 어떤 때 그런 모습 보면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여자인가보다!’하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어머니한테 꽃을 선물한 적이 없네요. 다음에 꼭 꽃을 선물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전에 어머니는 이곳에다 포도나무를 심은 적이 있는데, 형하고 제가 부쩍 자란 포도나무를 지붕하고 아치형으로 연결했죠. 그런데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들어오시다 그만 걸려버려 넘어지셨고, 화가 난 아버지는 ‘일하는데 방해되게 무슨 포도나무냐’며 그날로 쓱싹 잘라버렸습니다.

아직 그 자리에는 잘려나간 포도나무가 더 크지는 못하게 가지치기를 매년 한 채 생존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지게 지고 대문 안으로 들어올 일이 없고 어머니의 파워가 더 세니 그냥 키워도 될 것 같은데, 다음에 가면 다시 한 번 만들어봐야겠습니다. 그래서 여름에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이 포도나무에서 추억을 따 먹도록 해야겠습니다.

고구마, 밤 구워먹던 추억의 ‘아궁이’. 지금도 명절이 되면 온 식구가 모여 장작 때고 삼결살, 조개, 생선 등을 구워먹습니다. 진짜 맛있습니다.
고구마, 밤 구워먹던 추억의 ‘아궁이’. 지금도 명절이 되면 온 식구가 모여 장작 때고 삼결살, 조개, 생선 등을 구워먹습니다. 진짜 맛있습니다. ⓒ 장희용
요즘은 시골에서도 주방을 개조해서 아궁이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 아궁이에서 어린 시절 참 즐겁고 행복한 시간 많이 보냈습니다. 특히 겨울에 세수할 물 데우느라고 장작을 때고 나면 그 군불로 고구마, 감자, 밤 등을 구워먹던 생각이 납니다. 불장난 하면 오줌 싼다고 그렇게 혼나면서도 정말 맛있었는데…. 압력 밥솥이 없을 때 이곳에다 밥을 해 먹었는데, 누룽지 진짜 맛있습니다. 지금은 슈퍼에서도 포장해서도 팔대요.

지금은 거의 쓰지 않고 명절 때 한두 번 아궁이에 불을 지핍니다. 일부러 불을 지펴 삼겹살도 구워먹고, 조개도 구워먹고, 굴도 구워먹고, 생선도 구워 먹곤 합니다. 그렇게 구워서 아이들 주면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꼭 어릴 시절 저를 보는 것 같아서 참 좋습니다. 이럴 때는 평소 안 먹겠다고 그리도 버티던 우리 딸, 그렇게 잘 먹을 수가 없습니다. 역시 자연이 보약입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이것을 기억하겠지요?

아내는 텃밭 푸성귀 킬러입니다. 쓱 한번 돌고 난 텃밭은 휑해집니다. 어머니가 아직 어려서 맛이 없다고 하는데도 묵묵히 손질만 하는 아내.
아내는 텃밭 푸성귀 킬러입니다. 쓱 한번 돌고 난 텃밭은 휑해집니다. 어머니가 아직 어려서 맛이 없다고 하는데도 묵묵히 손질만 하는 아내. ⓒ 장희용
어머니는 제 아내보고 참 알뜰하다고 합니다.(제가 보기에는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제 아내는 일단 시골집에 오면 텃밭부터 한 바퀴 돕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칼과 바구니를 들고 집 앞 뒤 조금씩 흩어져 있는 텃밭을 샅샅이 뒤져, 일단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란 푸성귀들은 모두 사냥해 봉지에 담아 마루 한 쪽에 빼곡히 쌓아 둡니다.

사실 돈으로 치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아내는 그런 푸성귀들을 챙기면 왠지 마음이 뿌듯하답니다. 그 말이 소위 돈 굳어서 그렇다는 건지, 아님 텃밭에서 푸성귀들을 캐는 재미가 행복하다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행복한 기분이 든다는 뜻이겠지요.

지금도 김칫거리를 다듬고 있네요. 아직 어려서 맛이 없으니까 이 담에 모심으러 올 때 가져가라고 해도 괜찮다면서, 맛있게 담으면 된다면서 한 무더기 뽑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밭에서 일하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는데, 요즘은 일 하는 하나하나가 참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한 달 15만원 부업, 어머니의 ‘마늘 까기’. 이렇게 번 돈, 모아 모아 두었다가 손주들 오면 손에 꼭 쥐어줍니다. 이런게 행복이라고 하시면서.
한 달 15만원 부업, 어머니의 ‘마늘 까기’. 이렇게 번 돈, 모아 모아 두었다가 손주들 오면 손에 꼭 쥐어줍니다. 이런게 행복이라고 하시면서. ⓒ 장희용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은 부자입니다. ‘마늘 까기’를 하기 때문이죠. 많이 하시는 분은 한 달에 수입이 40만원도 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15만원 정도 버신다고 하네요. 그 돈으로 반찬도 사 드시고, 손자손녀들 오면 용돈도 주시고. 그런데 마늘의 독한 성분으로 인해 손이 많이 상하셔서 그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형이 어버이날 선물한 스카이라이프. 요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것  때문에 다툰다는군요. 끊임없이 드라마를 하니 어머니가  밤 12시가 지나도록 TV를 보는 바람에 아버지가 잠을 못 주무신다고.
형이 어버이날 선물한 스카이라이프. 요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것 때문에 다툰다는군요. 끊임없이 드라마를 하니 어머니가 밤 12시가 지나도록 TV를 보는 바람에 아버지가 잠을 못 주무신다고. ⓒ 장희용
알고 보니 이번에 형이 어버이 날 선물로 스카이 라이프를 설치해 드렸다고 하네요. 우리 동네는 첩첩산골도 아닌데, 유난히 다른 동네보다 TV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스카이 라이프 때문에 요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가 별로 안 좋다고 하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저녁 드시고 딱 1시간 정도 시청하시면 주무십니다. 어머니도 예전에는 하도 TV가 안 나오니까 아버지가 주무시면 같이 주무셨는데, 지금은 잘 나오고 계속해서 어머니 좋아하시는 드라마 나오니까 12시까지 보고 주무신다고. 환하고 시끄러우니까 아버지가 그만 끄고 자라고 해도 어머니는 들은 척도 안한답니다.

어머니한테는 분명히 효도 선물인데, 아버지한테는 불행 시작인 스카이라이프가 됐네요. 그런데 낡은 지붕위에 덜렁 달려있는 스카이 라이프가 그리 정겹게는 보이지 않는군요.

덧붙이는 글 | 시골집에 가면 저는 제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가급적이면 많은 시간을 들여, 많은 곳들을 보여주면서, 많은 말들을 해 줍니다. 아직은 나이가 어려 아빠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분명히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지금 보고, 듣고, 만지고, 느꼈던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채움'보다는 '비움'이 아름답다는 것을 믿음을 이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지켜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부족하지만 잠시나마 이 글을 읽고 자본주의에서 '채움'을 위한 속도를 늦추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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