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는 산이 참 많습니다. 국토의 70%가 산이라고 하는데 산이면 산마다 절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절 또한 많고 대부분의 문화유산들은 불교 관련 문화재인 경우가 많습니다. 절을 방문할 때마다 법당 바깥 벽에 그려진 벽화를 볼 수 있는데 불교에 문외한인 분들은 물론이고 절에 오래 다닌 불교신자들조차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종로의 조계사 같은 곳은 대웅전을 둘러싸고 그려진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벽화의 아래쪽에 아예 설명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문화재청장이 된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머리에 적힌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합니다. 비록 스님이나 불교를 전공한 학자들의 전문적인 설명은 아니지만 제가 알고 있는 내용만큼 벽화를 소개하려 합니다.
벽화 1- 부처님의 탄생과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
해인사 대적광전의 첫번째 벽화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나무를 잡고 서 있는 사람은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또는 마하마야)입니다. 당시의 풍습대로 해산이 가까워오자 친정인 이웃나라로 가던 중 룸비니라는 곳에서 잠시 쉬다가 산기를 느끼고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고 싯달타 태자(부처님의 출가 전 이름)를 낳게 됩니다. 이때 부처님은 부인의 허리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셨다고 하지요.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짚고 넘어가자면 '자신밖에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바로 아래는 지난 2003년 2월에 들렀던 네팔의 룸비니 사진입니다. 겨울이라 안개가 많이 끼인 날이었습니다. 벽화 속 그림과 좀 비슷한가요? 안개가 많이 끼어 잘 보이지 않지만 뒤쪽에 깃발이 많이 걸린 나무가 바로 벽화 속의 그 나무입니다. 벽화 위쪽의 가로로 긴 벽화는 아마 벌써 눈치챘겠지만 그 유명한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입니다.
신라시대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은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벽녘 목이 말라 일어나 물을 찾던 원효 스님은 손을 더듬어 바가지 속의 물을 마시고는 '아,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물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갈증을 달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노숙했던 곳은 무덤이었고 자신이 마셨던 물은 해골에 고여 있던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원효 스님은 구역질을 하다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게 됩니다.
해골을 들고 계신 분이 원효대사이고 그 옆이 의상대사입니다. 걸림 없이 자유롭게 살면서 포교에 힘쓰신 원효대사의 수행력은 아마도 저 일화 때문이지 싶습니다.
벽화 2- 고행 중인 부처님과 우유죽을 올린 수자타
부처님은 왕자라는 신분을 버리고 출가한 후 당대의 유명한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런 수행들의 최고 경지에 도달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되지 않음을 알고 스스로 숲에 들어가 곡기를 거의 끊은 채로 단식을 시작합니다. 오랜 단식 때문에 부처님의 몸은 수척해져서 퀭한 눈에는 거미가 거미집을 지을 정도가 되고 뼈와 가죽만 남아 힘줄이 드러나고, 뱃가죽은 등에 닿았습니다.
파키스탄의 라호르 박물관에 있는 유명한 고행상은 그런 부처님의 모습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고행이 진리에 도달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님을 알고 근처의 나이란자강가에서 몸을 씻고 근처 마을의 수자타라는 처녀에게 우유죽을 공양 받아 기운을 차린 후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부처님이 고행하시던 곳인 인도 부다가야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인 전정각산(정각 즉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머물던 산) 아래 마을에는 오래 전에 우리 나라 불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수자타 아카데미라는 교육 및 의료시설이 설립돼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벽화 3- 세조와 문수보살
이 벽화속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선시대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던 세조와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입니다. 아시는 대로 세조는 조카 단종을 몰아내어 왕이 되고 이후 꿈에 단종의 어머니였던 현덕왕후가 나타나 침을 뱉자 온몸에 종기가 나게 됩니다. 부스럼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의 명산 대찰을 찾다가 어느 해 여름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 행차합니다.
산을 오르다가 더위를 느껴 계곡에 옷을 벗고 목욕을 시작하자 어디선가 동자가 나타나 세조의 등을 밀기 시작합니다. 그 손이 너무나 시원하여 온몸의 종기가 벗겨내려가는 듯했답니다. 그런 중에서도 혹여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려워 동자에게는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내 몸에 손을 댔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자 동자도 "저는 대왕의 약속을 지킬 것이나 대왕께서도 다른 이에게 문수보살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며 사라졌답니다.
벽화 4- 목탁의 유래
'절'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법구 중의 하나인 목탁입니다. 이 벽화는 목탁의 유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네요. 목탁은 원래 목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옛날 어느 절에 높은 스승이 제자 몇 명과 함께 생활했는데 그 중 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계율을 지키지 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죽은 제자는 생전에 지은 죄에 대한 업보로 등에 나무가 달린 물고기로 환생을 하게 됩니다.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불면 등에 달린 나무 때문에 무척이나 고통스럽게 지내야만 했습니다.
하루는 스승이 배를 타고 가는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달린 물고기가 뱃전에 머리를 대고 슬피 우는 것을 이상히 여겨 깊은 선정에서 살펴보니 자신의 제자가 환생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수륙제를 베풀어 제자를 물고기의 몸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답니다. 제자는 물고기 몸을 벗게 해준 것을 감사하며 자신의 등에서 자란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깍아 두드려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삼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목탁입니다.
또 물고기는 밤이나 낮이나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고기와 같이 수행을 함에 있어서 잠을 멀리하여 정진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벽화 5- 지장보살
원래 보살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보리살타'의 준말로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 같은 분들이 바로 그런 보살님들인데 벽화 속의 주인공은 지장보살입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절대 성불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신 분으로 사찰에서는 육환장(여섯 개의 고리가 달린 지팡이)을 들고 있고 머리는 파랗게 삭발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또는 지옥도의 한쪽에서 지옥중생을 제도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벽화속의 지장보살 옆의 문은 바로 지옥문이고 보살님은 그 옆에서 지옥중생을 제도하는 모습을 표현한 벽화입니다. 이렇게 해인사 대적광전을 한 바퀴 돌며 벽화 속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법당 뒤쪽에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장경각으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나들이가 많은 철입니다. 사찰에 가면 겉만 둘러 보고 "다 봤네" 또는 "별거 없네"라고 돌아서는 모습이 참 아쉽습니다. 벽화 속 이야기를 주변사람과 함께 나눠보세요. 아마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질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