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100년, 숭실 108년, 성균관 607년, 연세 120년, 이화 119년, 서울 99년…?
인터넷에서는 대학생들이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계기로 대학들의 역사를 논하며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신경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교는 어디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대학들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으니 그 역사를 논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역사를 통해 대학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를 되새기는 것은 대학발전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대학들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 아래 박스기사 참조).
다음은 몇몇 대학들이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학교 역사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고려대는 "한국 최초의 민간인에 의한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의 출현"이라고 밝히며 지난 5일 개교 100주년을 기념했다.
단국대는 "1947년 11월 3일 역사적인 개교"를 했고 "해방 후 설립된 최초의 사립대학 출범"이라며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구국, 자주, 자립"의 창학정신을 들었다.
성균관대는 "고구려의 태학, 통일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을 잇는 최초의 국가 교육기관이자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발원지인 성균관"을 모체로 "1398년 건립"됐다고 소개한다.
숭실대는 "1897년 10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배위량(W.M.Baird) 박사가 사저 일부를 사용하여 학교를 시작하고 교장에 취임"한 후 "1906년 숭실학당에 정식으로 대학부가 설치"돼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이라고 밝혔다.
연세대는 "한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으로 120년 동안 국가사회 발전을 선도"했다며 오는 14일 창립 120주년을 맞는다고 홍보했다.
이화여대는 "1886년 5월 31일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톤 부인 창설"이라면서 "1943년 8월 7일 재단법인 이화학당으로 설립 등기, 김활란 이사장 취임"을 이야기한다.
조선대는 "민족국가 수립에 기여할 지역 사회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뚜렷한 민족적 자각 속에서 태동"됐고 "일제시대에 좌절된 호남지역의 민립대학 건립 운동은 해방 직후인 1946년 5월에 조선대학 설립 동지회 창립으로 부활"됐음을 알렸다.
홍익대는 "1946년 4월 재단법인 '홍문대학관' 설립"으로 시작했으며 "홍익인간이란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교육법에 명시된 교육목표"라면서 건국이념까지 거론했다.
눈에 띄는 것은 서울대. 다른 대학들이 모두 전통의 뿌리를 캐며 최대한 역사를 늘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서울대는 "1946년 8월 22일 민족교육의 기치아래 민족 최고 지성의 전당"으로 "학문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국내 최초의 국립종합대학교로 설립"되었다며 경성제국대와의 연관성을 차단했다.
이상에서 보듯 대학들은 학문 발전과 인재 양성을 이끌었다며 서로 최초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최초'의 개념을 '최고(最古)'가 아닌 '최고(最高)'로 여기며 대학서열을 논하는 자료로 삼고 있다. 입시점수 등으로 시작됐던 대학서열의 논쟁이 학교 역사로까지 옮겨 간 상황이다.
황폐해진 교육현장에는 대학서열 고착화에 따라 입시전쟁터로 변한 고등학교와 무한경쟁으로 녹초가 된 고등학생들이 있다. 게다가 이제는 최초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다양한 주장을 펼치는 대학과 취업전선에 내몰린 대학생들도 그 현장에 합류했다.
교육현장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아니다. 최근 내신등급제라는 대학입시제도는 고교생들과 교육당국의 대치상황을 낳았고, 이건희 회장의 철학박사 학위수여 논란은 대학교와 기업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수반했다.
많은 사람들은 교육현장이 더 이상 입시전쟁터와 취업전쟁터로 황폐화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전인교육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한다. 고려대의 개교 100주년과 연세대의 창립 120주년을 축하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은 어디인가에 대답하기 이전에, 대학교 본연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를 되새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 대학들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 | | |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 대학생은 '실천하는 지성'? | | | | 사람들은 대학을 가리켜 '진리의 상아탑', '지성의 전당'이라 불러왔다. 대학생을 가리켜서는 '실천하는 지성'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말이 지금도 유효한 지는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한다.
진리의 상아탑과 실천하는 지성에 대한 해답은 대학들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에서 찾아야 한다. 해답을 찾을 수 없다면 대학들은 이념과 취지를 수정하든지 아니면 교육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건학이념과 설립취지는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의 본분이자 사명이라고 대학 스스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홈페이지에서 살펴 본 몇몇 대학들의 건학이념과 설립취지.
고려대는 고대의 전통과 지향에 대해 "1. 민족적, 민주적 전통(민족주체의 건학이념, 민족운동의 본산, 반독재 투쟁) 2. 비판적, 저항적 전통(압제투쟁, 불의항거, 부정거부, 독재반대, 정의감) 3. 의리적, 화합적 전통(애교심, 모교애, 선후배 의리, 사제간 정의) 4. 행동적, 야성적 전통(추진력과 실천력, 진취성과 저돌성, 호랑이 정신) 5. 서민적•대중적 전통(비관료적 순박성, 정직성, 비귀족적 대중성, 향토성)"을 꼽았다.
단국대는 "범정 장형 선생은 젊은이에게 민족의 동질성을 끝까지 지켜가도록 교육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신념에서 교명을 '단국'으로 하고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대학을 설립"했다며 "창학정신은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구국, 자주, 자립이다. 구국은 국가관을, 자주는 민족관을, 자립은 세계관을 표상"한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설립 이념과 비전으로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선도하는 세계수준의 종합대학"을 들고 "세계수준의 대학, 종합대학, 연구대학"을 표방해 "세계적 수준의 학문 수월성 추구와 종합대학의 3대 기본 핵심 기능인 연구ㆍ교육ㆍ사회봉사의 균형발전, 기존지식의 발전 및 체계화와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들었다.
성균관대는 "인간의 존엄성을 토대로 자기 완성과 인류평화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유교정신"이 건학이념이라며 "유교정신은 현실생활에 있어서의 실천도덕과 철저한 인본주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격도야와 학문연마를 통하여 인륜대도를 밝히고 인류공동의 이념구현에 공헌할 국가동량의 인재를 길러내는데, 교육의 목표를 둔다"고 밝혔다.
숭실대는 "고등교육의 불모지나 진배없는 이 땅에 '진리와 봉사'를 이념으로 내걸고 고등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며 "1997년 10월10일을 기하여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그 긴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시대가 요구하는 고유한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그 나름의 사명을 다해왔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교육이념에 대해 "연세가 다른 보통 대학과는 확연히 다른 지도자를 양성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며 "이웃과 국민을 진심으로 섬기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엘리트를 양성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엘리트를 연세가 반드시 교육시켜내야 한다고 믿는다"는 총장의 말로 대신했다.
이화여대는 창립이념으로 "대한민국 교육의 근본이념에 기하여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고등교육ㆍ중등교육ㆍ초등교육 및 유아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정관 제1조)"는 것을 들며 "이화대학이라는 교명은 1887년초 고종이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의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스크랜톤 부인이 경영하던 여학교에 하사한 '이화학당'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조선대는 "민족국가와 민족 문화 건설의 시급한 과제에 당면하여 획일성을 배격하고 개성을 갖춘 민주시민을 양성"해서 "학문과 사회 현실이 상호 실천적 연관을 갖는 현실적인 교육을 행하여, 전문 지식인을 양성하되 자질 있는 학생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할 필요를 강조"했다는 설립동지회 발기 선언문을 전했다.
홍익대는 건학이념으로 "홍익인간”을 들며 “홍익인간의 이념은 자아와 만유의 공존 공영을 정립하려는 필수불가결의 사상"이며 "홍익인간은 인간가치로서의 진선미를 숭상하고 사회가치로서의 자유, 평등, 평화를 표방"해 "구체적으로는 인본정신, 민주원리의 정신, 민족통합의 정신 등이 내재한다"고 소개했다. / 최육상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