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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시골에 계신 시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요즘 남의 집 고깃배를 타신다. 한 달 월급을 받기로 하고 하시는 일이다. 2년 전에 "이제는 다시는 타지 않는다"며 배까지 팔아가며 그만둔 일이시건만 그 진절머리 나서 당신네 아들네들한테만은 결코 물려주지 않으마 하시던 그 일을 아버지는 환갑이 넘으셔서 다시 하시는 것이다.
"아버지 저녁은 드셨어요?"
"응. 우린 먹었지. 너희들은 묵었냐?"
"예. 일은 안 힘드세요?
"힘들기는... 어려운 일은 젊은 사람들이 허고 아빠는 그냥 쉬엄쉬엄 헌다. 너무 걱정말어."
"예. 그래도 몸 생각하시면서 하세요."
그만두시라는 말이 하고 싶었지만 그 한마디가 차마 목구멍을 넘기지 못하고 목 안쪽 저 한구석에서 그냥 맴돌기만 한다.
"지금 뭐하세요?"
"응. 느그 형님이 보내준 과자 묵고 있다. 나가 이래서 딸내미를 젤로 좋아 안 허냐. 아부지 묵으라고 과자도 만날 보내고. 허허허"
"아버지는... 형님이 또 과자 보냈셨던가요?"
"어따, 저번에 느그 형님이 보낸 거 아직 남아서 그거 느그 어무니랑 안 묵고 있냐. 요거이 서울서 온 과자라 그런지 이러코롬 달고 맛나다. 허허허."
"그렇게 맛나세요? 호호호"
"나가 이래서 며느리들보다 딸내미를 더 이뻐헌당께."
아버지와 나의 허물없는 농담이 오고갈 때 혹시나 아버지의 농담으로 속 좁은 며느리 맘 상할까봐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서 큰소리로 "아니라며 느그 아부지가 얼마나 느그를 이뻐하는지 알지야?"하시면서 정색을 하시며 목소리를 높이신다.
"느그 엄마 목소리 들리냐?"
"예 "
"나 맘은 안 그런디 느그 엄마가 저리 실없는 소리를 잘헌다. 허허허."
"아버지는 만날 서울형님만 이뻐하시고. 저 삐질라고 그래요. 아버지."
"허허허 어찌겄냐. 근디 나가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근가 왜 이렇게 뇌물이 좋은지 모르겄다. 숭허지야?"
"아니요. 아버지 저도 사실은 뇌물이 좋던데요. 호호호."
"아이고, 니도 그냐? "
"예, 진아 아범이 무슨 잘못해 놓고 뇌물 하나 떡허니 들고 들어오면 그게 눈녹듯 녹아버리데요. 아버지. 저도 뇌물 무지하게 좋아하는거죠?"
"야야, 너도 뇌물을 무지허니 좋아하는거다야. 니는 시아부지 욕은 못허것다야. 니가 그런께. 허허허."
"그러게요. 호호호."
"야야 니도 아부지헌테 이쁨받고 싶음 뇌물보내라 잉. "
"예. 저도 아버지께 뇌물 좀 보내야겄네요. 이쁨 좀 받게요."
"니가 말귀를 솔찬히 잘 알아듣는다야. 허허."
수화기 너머 들리는 "영감이 실없는 소리혀서 며느리들 미움살라고 한다"는 어머니의 밉지 않은 핀잔과 뇌물이 좋아진다며 며느리와 농담을 즐기시는 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뒤로 한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시부모님이 사시는 섬에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슈퍼다운 슈퍼가 없다. 조그마한 막걸리 집 한 편 세 칸짜리 선반에 누가 사먹을까 싶을 만한 마름모꼴 박하사탕과 유행은 상관없는 듯한 변함없는 과자 몇 가지와 요즘 슈퍼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든 옛날에 유행했던 라면 몇 가지가 전부다.
그러다보니 뭍으로 나가기 전에는 우리가 흔히 먹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사탕 종류는 구경하기도 힘들다.
저녁 6시 정도만 되면 어둑어둑해지고 곧 사방이 칠흙 같이 어두워져버리는 시골집에서 뭍에 사는 자식새끼들이 보내온 군것질거리로 길고긴 밤 나이 드신 두 부모님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시며 그나마 적적함을 달래시는 것이다. 자식놈들이 보내온 그 소박한 과자 한 상자가 아버지에게는 큰 뇌물인 셈이다.
어쩌다 지난번 보낸 것보다 조금 더 보냈다 싶을 때는 여지없이 "야야, 니가 살림을 사는 것이냐, 마는 것이냐. 니 손이 그리 커서 쓰겄냐"하는 싫지 않은 꾸지람이 날아든다.
오늘은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더라도 한두 달 넉넉히 드실 정도의 군것질거리를 보내드려야겠다. 뇌물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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