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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아들아!

아버지는 오랜만에 아들에게 편지를 적는구나. 지금도 거실에서는 네 어머니가 네게 “빨리 풀어라. 문제 풀다가 화장실에서 2시간동안 뭐하냐?”라며 너에게 한자문제를 풀라고 채근하고 있구나. 너는 지금 참으로 피곤하고 하기 싫을 것이다. 네가 지난 5월 7일 시험에서 성공을 하였다면 지금은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아버지도 참으로 안타깝다.

그 전날인 5월 6일에 너희 5학년은 남해에 수련회를 갔었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많은 고민을 하였단다. 그리고 네 담임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밤에 너를 창원으로 데려올 수 있었지. '더 놀고 싶다'는 너를 데려오는 우리 마음도 편치는 않았단다. 그러나 네가 자는 동안에 본 삼천포대교의 야경은 참으로 아름답더구나.

▲ 남해 수련회에 참석한 아들을 데리고 오면서 본 삼천포 대교의 야경
ⓒ 한성수
아버지가 네게 한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아마 2003년 가을쯤이었을 게다. 21세기는 천연자원보다 인적자원이 중시되고, 가장 인적자원이 풍부한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아버지는 생각한단다. 초등학교 5학년인 네가 성인이 되었을 때 지금도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가 지금과는 또 다른 위치에 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야.

같은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중국문자인 한자와 중국어를 미리 익혀둔다면 능동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네게 한자를 배워주는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단다. 다행히 너는 지금까지 참으로 싫은 공부를 잘 견뎌 왔구나. 그래!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공부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이런 편지까지 적게 했구나.

▲ 아버지가 출제한 한자 문제
ⓒ 한성수
2003년 한자 5급 시험에 너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고 우수상까지 받아서 아버지는 참으로 대견했단다. 그리고 작년 겨울의 한자능력 4급 시험은 교육인적자원부 공인 급수라서 그런지 훨씬 어렵더구나. 아버지가 문제를 직접 만들어서 풀게 하고 너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4급 급수증을 받을 수 있었지. 아버지는 더 큰 용기를 얻었단다.

'우리 아들은 할 수 있다. 5학년 1학기에 3급을 취득하고 2학기에 2급을 취득하고 6학년에 1급을 취득한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 중국어를 익힌다.'

두 달 전, 우리 가족은 너의 3급 급수 도전에 모두 동참하기로 했지. 네 어머니도 너와 같이 한자시험을 치기 위해 원서를 넣었지. 한자카드를 만들고, 모의문제와 기출문제를 푸는 등 네가 최선을 다한 것은 아버지도 인정한단다.

▲ 아들이 만든 한자카드
ⓒ 한성수
그러나 아들아!

아마 네 어머니는 너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한자를 익혔을 것이다. 3급 한자가 모두 1800자가 넘는데, 네 어머니도 익숙하지 않긴 너와 마찬가지란다. 그러나 어머니는 밤에 네가 자는 동안에도 쓰고 익혀서 너를 지도하더구나. 그 정성은 너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 상장 및 급수증
ⓒ 한성수
모의시험과 기출문제를 풀어보니, 너는 평균적으로 150점 만점에 115점을 넘어서더구나. 105점이면 합격하는데 아버지는 왜 그리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까?

드디어 시험일 우리는 애써 태연해하며 시험장을 들어섰단다. 그런데 네 어머니와 너의 자리가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었더구나. 아버지는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단다.

아버지는 네 어머니를 불렀단다. 네가 절대 어머니를 의지하지 않도록 시험장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게 했지. 혹시나 해서 아버지가 네 어머니에게 당부한 다른 말은 네가 더 크면 일러주마. 너희처럼 모자가 함께 응시한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이더구나. 시험이 시작되고 아버지는 잔디밭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단다.

40분이 지날 때쯤 네가 나오더구나. 아버지는 네게 호통을 쳤지. 네 어머니는 시간이 끝날 때쯤 마지막으로 나왔던 것을 너는 기억하지! 그래, 아들아! 최선을 다해야지. 아버지가 그렇게 일렀건만 너는 그 사이를 못 참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구나. 아버지는 시험에 불합격한 것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네 모습에 화가 난 거지.

이번 시험문제를 풀어보니, 너는 채 100점이 되지 않더구나. 너는 아직 실패가 없었는데…. 안타깝구나! 그러나 실패에 마음을 두지는 말거라. 더욱이 의욕마저 꺾여서는 안 된다. 시험이야 언제든지 다시 치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 또 다른 한자공인 3급 급수자격증에 도전한다고 끙끙대는 너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구나.

사랑하는 내 아들아!
실패는 앞으로도 자주 너를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좌절해서는 절대 안 된다. 너는 이긴 사람이 되거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아니 그럴 수만 있다면 진토(塵土)가 되더라도 너에게 거름이 되고, 물이 되고, 햇볕이 될 것이다.

자! 다시 앞으로 나아가 보자. 고진감래(苦盡甘來),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사랑하는 내 아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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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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