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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오일뱅크 부산저유소 앞 파업현장
현대오일뱅크 부산저유소 앞 파업현장 ⓒ 김보성
부산 감만동 현대오일뱅크 부산저유소 앞에서 운송노동자들이 "다단계알선 중단"을 요구하며 12일째 운행을 중단,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화물연대 오일뱅크 지회 소속으로 광주·부산·마산·목표 지역에서 현대오일뱅크의 기름을 운송하는 노동자들이다.

지난 16일에 찾아간 부산저유소 정문 바로 앞에는 대형 기름탱크들을 뒤로 하고 50여대의 유조차량이 서 있었다. 차량마다 깃발과 플래카드가 휘날린다. 유심히 보니 누군가 휘갈겨 쓴 글씨체로 구호가 적혀 있다.


부산저유소 앞에는 약 50여대의 유조차량이 운송을 멈추고 서 있다. 오른쪽에는 경찰병력이 보인다.
부산저유소 앞에는 약 50여대의 유조차량이 운송을 멈추고 서 있다. 오른쪽에는 경찰병력이 보인다. ⓒ 김보성

유조차량마다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유조차량마다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 김보성
"한진은 악덕수송사 퇴출하라!"
"한진은 다단계 알선을 즉각 중단하라."
"현대오일뱅크는 직접계약 체결하라."

현대오일뱅크 앞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이건만 구호는 대부분 한진을 향하고 있어 2003년도 화물연대 파업으로 널리 알려졌던 '다단계알선'이 원인임을 짐작케 한다.

다단계 알선은 쉽게 말해 운수하청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것이다. 다단계 알선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운수회사는 실제 회사 소유차는 없으면서 알선을 통해 화물차를 가진 차주를 고용하여 알선료만을 챙긴다.

가령 A회사가 B운수회사에 하청을 주면 B운수회사는 C,D,E 등의 작은 운수회사에 또 하청을 준다. 현대오일뱅크가 A회사 즉, 화주(화물주인)라면 한진은 알선을 받은 B운수회사다. 한진은 다시 C,D,E 운수회사 등 작은 운수회사에 하청을 줘 알선료를 챙긴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연령이 대체적으로 높다고 한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연령이 대체적으로 높다고 한다. ⓒ 김보성
오후 1시경 파업현장에서는 40-60대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구릿빛 노동자들이 파업가에 맞춰 율동을 따라하고 있었다. 율동이라 해봐야 구호가 적힌 선전띠를 노래에 맞춰 힘차게 흔드는 것뿐이지만 저마다 최선을 다하는 얼굴이다. 부산을 비롯 광주·목포·마산에서까지 올라와 파업이 11일째 흐르고 있지만 지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도 팔을 걷고 파업에 함께 하고 있다.
가족들도 팔을 걷고 파업에 함께 하고 있다. ⓒ 김보성
"정말 많이 참았습니다."

잠깐 쉬는 동안 만난 한 노동자는 목포에서 현대오일뱅크의 기름운송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몇 달 전부터 여섯 차례 넘게 한진에 대화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배차중지밖에 없어요." 그는 자연스레 목소리가 높아졌다.

파업 현장에는 4개의 천막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약 60여명의 노동자들이 11일 동안 먹는 것과 자는 것을 해결하고 있다. 한 천막 아래엔 부인들이 열심히 남편들이 먹을 점심을 준비 중이다. 남편들이 이렇게 노상에서 파업농성을 벌이는 것에 대해 어떠냐는 질문에 "안타깝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5·18노동자대회에 참석하러 광주로 떠난 화물연대 광주지부 박종태 사무차장은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1명의 노동자가 3명의 사장을 먹여 살린다"며 운송업계의 전근대적인 다단계알선구조의 해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수차례 대화와 교섭을 요구해도 묵살하더니 파업을 하고 나니 교섭에 나섰다"면서 "파업은 현대오일뱅크와 한진 등 운송회사들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주장했다.

다단계 알선이 현행법상 문제가 없느냐는 물음에 그는 "화물운송관련 법은 아직도 구시대법에 머물러 화주-주선-운송까지의 알선은 허용하고 있다"며 현행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파업 현장에 가장 먼저 설치했다는 분리수거통.
파업 현장에 가장 먼저 설치했다는 분리수거통. ⓒ 김보성
오일뱅크 파업현장을 떠나려던 시간, 곳곳에 붙은 한진과 다른 운송 회사에 대한 규탄 플래카드가 곳곳에 휘날린다. 정문에서 파업현장을 감시(?)하던 사측 관계자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카메라를 들고 앞을 찾아가자 급히 피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어렵사리 전화 통화로 한진측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파업의 한진측 교섭에 나서고 있다고 밝힌 한 관계자는 "현행법상 화물연대는 노동3권을 가진 노조라고 볼 수 없다"며 "이들은 노동자가 아닌 사업주, 즉 개별 화물차를 소유한 사장이다"고 인식 차이를 확연히 드러냈다.

다단계 알선 중단을 요구하는 화물연대측 주장에 대해 "현재 화물운송 전반에 걸쳐 다단계 알선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진이 의도적으로 그런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한진이 현대오일뱅크와 계약을 맺기 전 G라는 업체가 주알선업체로 있으면서 계약을 맺었던 업체들을 한진이 받아들인 것뿐"이라 불법 다단계 알선 부분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화물운송 쪽은 다단계가 어쩔 수 없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며 화물운송법 상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한진은 부산시와 경찰의 중재로 교섭을 진행하며 절충안을 찾고 있다고 한다.

현대오일뱅크 앞에서 현대가 아닌 한진 등을 대상으로 파업을 벌여야만 하는 운송노동자들에게 2003년 정부가 약속한 '다단계 알선 실태조사에 즉시 착수해 단속 및 처벌을 강화하겠다'던 약속은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민중의소리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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