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축령산 들꽃 기행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세상에! 여태까지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별의별 꽃이 다 피어 있었다. 식물도감 속에서, 혹은 달력에서만 봤던 온갖 들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종류의 현호색, 괴불주머니, 앉은 부채, 개감수, 피나물, 얼레지….
그때부터였다. 산책을 나가면 아파트 화단의 꽃들을 눈여겨보고 모르면 묻고 식물도감을 찾기 시작한 것이. 의외로 도심에도 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큰개불알풀, 종류가 다른 민들레, 씀바귀, 꽃다지, 봄맞이꽃, 살갈퀴 등 수많은 꽃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 곁에서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해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오월이 되면 양평군 서종면 명달리에 간다. 양수리시장에서 20여분 눈 맛이 시원한 북한강가를 달리다 노문리, 명달리 팻말이 보이면 우회전해 다시 2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다.
2002년 자연생태 마을로 지정된 명달리는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마을 주변에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며 주민들은 유기농법 등 친환경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고려시대 사찰이, 조선시대 서원이 뒤덮었던 이 땅을 가든과 모텔과 최근 펜션까지 합세해 사이좋게 구석구석 파고들어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은 차를 세우고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온갖 도감 속의 꽃들을 만날 수 있는 정다운 땅이다.
대한민국에서 도자기를 빚어 밥 벌어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고된 삶인가를 몸소 보여주는 벗까지 명달리에 있으니, 더 이상 좋은 봄나들이 장소가 어디 있겠는가? 오랜만에 방문하는 벗들을 위해 도공은 돌미나리, 곰취, 머위, 두릅을 데치고 보쌈을 삶아 작업대 위에 차려 놓았다. 감탄! 또 감탄! 쳐다만 봐도 벌써 배가 부르다.
도공을 따라 나선 통방산 탐방. 사방이 통하고 하늘에 통하는 명달리 통방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고사리를 잘도 발견해 연신 자루 속으로 손이 들랑거린다. 작년 고사리 마른 것이 있는 주위를 살피란다. 어딘가에 떨어진 포자가 싹을 틔우고, 도공 눈에는 지천인 고사리가 우리 눈에는 한 개도 띄지 않는다. 이래서 원주민과 함께 하는 여행은 즐겁고 알차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누구에게나 고사리가 다래순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고사리, 다래순을 따는 동안 난 주위에 지천으로 피어난 꽃들에게 눈길을 준다.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꽃들이 제법 생겼다. 벌깨덩굴, 솔붓꽃, 으름꽃, 노루삼, 홀아비꽃대, 참꽃마리, 할미꽃은 벌써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었다. 그래도 들꽃에 관한 한 도공보다 내가 한 수 위다.
낙엽을 헤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족두리꽃을 보여주고, 자줏빛 미치광이 풀에 실제 독성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은 내 몫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게 뭐지? 음, 종류는 구별 못 하지만 제비꽃 종류. 아, 비가 오려나 우산나물도 활짝 우산을 피고 있다.
어젯밤 무슨 꿈을 꿨던가? 도공의 판단으로는 굵기를 보아 십년이 넘었을 더덕이 덩굴째 굴러 들어왔다. 조심조심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캐어 바로 껍질을 벗겨 시식, 공복이면 쓰라릴 만큼 진액이 강하다 한다. 더덕줄기에서도 강한 향이 난다. 발견한 세 개 중 두 개만 시식, 한 개는 다음을 위해 남겨둔다.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낙엽을 덮어 살짝 가리는 것도 잊지 않고.
어린 시절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어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실제로 들꽃을 볼 수 없었나, 아니면 들꽃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워낙 척박한 곳이라 곡식이 잘 되는 곳이 아니었다는 대답이셨다.
계룡산 가는 길목 백암동에 살던 옛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햇수를 되짚어보니 그 아이가 프랑스 가는 해 96년에 만나고 10년만이다. 너 살던 동네에는 혹 들꽃 많았니? 많았단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들꽃과 함께 지냈단다. 내가 관심이 없어 잊었을 거라는 대답이었다. 실제로 함께 산에 올라가 많은 들꽃을 본 적이 있단다.
덧붙이는 글 | 하루면 족한 집 근처 나들이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