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학교>는 99년 방송이래 3여년에 걸쳐 학교에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주목을 받았다. 최근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보인 재미와 성찰이라는 두개의 날개 중 하나도 없는 모양새다.
이미 종영된 KBS <쾌걸 춘향>과 <열여덟 스물아홉>이 삼은 배경의 한 축은 고등학교 였고 KBS 미니 시리즈 <러브 홀릭>도 역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초반을 시작했다. SBS 수목드라마 <건빵선생과 별사탕>는 전적으로 고등학교를 무대로 삼았다.
초반의 <러브홀릭>과 <건빵선생과 별사탕>은 일본 드라마 <고쿠센> 시리즈와 비슷한 내용 전개를 보인다. <고쿠센>은 야쿠자의 딸이 교사가 되어 고등학생들과 부딪치며 이들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두 드라마가 모아지는 것은 결국 여교사와 남제자간의 사랑이라는 점이다. <러브 홀릭>의 남제자 서강욱(강타 분)은 여교사 이율주(김민선 분)를 위해 대신 감옥에 가고, 이성 관계로 발전한다. <건빵선생과 별사탕>은 문제아 박태인(공유 분)과 그를 졸업시는 임무 때문에 임시교사가 될 수 있었던 나보리(공효진 분)의 사랑이 중심이다.
2002년 여교사(김하늘 분)와 남제자(김재원 분)의 사랑을 그린 MBC <로망스>가 크게 인기를 얻은 바 있다. 3년만에 다시 여선생-남제자 코드가 재등장 한 셈이다. 중간 단계로 <열 여덟 스물 아홉>에서는 열여덟의 고등학생과 스물아홉 누나의 사랑 이야기가 끼어 있기도 했다. 나이많은 여성과 고등학생의 사랑이야기라면 맥락이 같아진다. SG워너비의 뮤직비디오 <죄와 벌>에서도 여선생(한은정 분)과 남제자 커플이 등장한다.
MBC 드라마 <사랑해 당신을>, SBS 시트콤 <여고시절> 등을 보듯 90년대 후반까지 남교사와 여학생의 사랑이 드라마의 소재로 각광받았다. 이제 2000년대의 코드는 남선생과 여제자가 아니라 여선생과 남제자의 사랑이다. 대개 남제자는 싸움을 잘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에 여교사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약하고 남제자가 감싸고 보호해야 할 인물로 설정된다. 이 때문에 남성 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렇게 드라마의 소재로 애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10대의 대중 문화 소비성을 염두하고 학원소재 드라마는 만들어진다. 여기에 사회 금기적인 내용을 채워 눈길을 잡아 두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남교사와 여제자에 비해 여교사와 남제자의 사랑은 사회적 금기가 더 강하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점에 기대어 <건빵선생과 별사탕>은 여선생님과의 포옹과 키스까지 시도하는 등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두고자 했다.
식상하기도 하겠지만, 남교사와 여제자 사이의 사랑은 원조교제와 교사 성매매, 성희롱이라는 사건들이 우리 사회를 휩쓴 이래 더욱 매력이 없어졌다. 하지만 여교사와 남제자와의 이러한 염려에서 벗어나 있다. 남교사는 강자, 여학생은 약자의 구도이지만 여선생은 약자, 남학생은 강자의 구도를 보인다.
이때 교사라는 사회적 위치를 가졌어도 '여자는 여자일 뿐이라는 인식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더구나 여교사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인물로, 남제자는 거친 세상 살이를 다 아는 듯한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와 만화에서나 쉽게 보는 학교 짱들의 폭력에 여선생이 적극적으로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데 활용된다.
영화 <두사부일체> <화산고> <말죽거리 잔혹사>의 짱인 주인공들이 드라마에서 여교사에게 구애를 하는 판이다. 이 때 남자제자는 폭력을 화려하고 멋있게(?) 행사하는 멋진 남성이기 때문이다. 남제자는 나이만 어릴뿐 어른 뺨치는 외모에 행동, 사고를 보인다. 이것은 현실의 역반영인 셈이다. 이런 점 때문에 현장 교사들은 우려하기도 한다. 더구나 이러한 설정 자체는 이미 식상해졌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낮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여교사를 선망하지 않을만큼 공교육과 학교 체제가 무너졌는 지도 모른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여교사가 겪고 있는 학교 조직 차원에서 겪는 문제들은 너무나 피상적이거나 아예 도외시 한다. 초점은 오로지 한 제자와 연결된다. 무엇보다 학교에는 아름다운 미혼 교사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에는 커다란 구멍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