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들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인권현장의 실태에 대해 기록한 책이 나와 주목된다.
바로 전국 34개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약칭 인권회의)에서 활동 중인 인권운동가들이 함께 펴낸 <2004 인권운동보고서>(도서출판 사람생각, 아래 <보고서>)가 그것.
한국사회에 인권관련 '보고서'가 없는 건 아니다. 대한변협 소속 변호사들이 정리, 집필해 지난 1986년부터 발간하는 <인권보고서>가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도 자신들의 활동 상을 중심으로 <인권백서>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보고서>가 기존의 인권'보고서'나 '백서'와 다른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인권현장에서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직접 원고를 집필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1부 2004년 인권운동 개관을 시작으로, 2부 영역별 인권운동과 부록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청산 안 된 과거와 차별 해소의 과제까지 복잡한 인권상황
우선 1부 2004년 인권운동 개관 부분에서는 한국인권의 현실을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와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발목을 잡고 있고, 자유권과 사회권에서는 여전히 인권침해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거기에 차별의 해소라는 과제까지 제기되는" 복잡한 상황이라 규정했다.
<보고서>는 인권운동 현실이 '복잡한 상황'으로 변한 것은 주로 정치적 자유를 중심으로 전개돼 왔던 인권운동이 1990년대 이후 더 크게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부터 사회권적 기본권에 대한 제기와 함께 차별 영역으로 급격히 확대됐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다른 시급한 영역에 가려서 잠복돼 있었던 인권운동 영역에 대한 관심폭이 시대 변화에 따라 넓어진 것이란 지적이다.
이러한 인식아래 <보고서>는 2004년 인권운동에 대해 정치권력의 의지가 반영된 과거청산 국면과 사법구조의 개혁 등에서 일정 진전이 있었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정보, 감시 기술과 그에 따른 인권침해의 증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각종 차별철폐와 불평등 해소에 힘쓰고 있는 인권운동 스스로의 척박한 현실을 돌아보는 목소리도 나온다. 열악한 재정구조 때문에 대부분의 인권단체들이 소수의 인권활동가의 헌신적인 활동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현실에서 인권의제를 선점하지 못하고, 장기적인 운동방향을 설정하지 못하며, 단체간의 역량 불평등성도 존재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권단체들은 주제별로 네트워크를 형성했는데 인권교육네트워크와 행형네트워크, 사회권전략팀 등이 있다. 또 주제별 네트워크를 뛰어넘어 전국적인 연대조직인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구성돼 활동하는 건 인권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보고서>는 또 2004년에 이어 2005년에도 인권운동이 여전히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들로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위한 노력,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 차별 문제에 대한 인권운동의 전략 마련 등을 제시하고 있다.
각 영역별 2004년 인권운동 성과와 과제 한눈에
다음으로 짚어보는 '영역별 인권운동'에서는 2004년 한 해 동안 우리사회 각 분야에서 뜨거운 화두였던 인권침해 제도와 차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담겨있다. 어느 한 분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인권운동의 흐름을 총 9개의 장으로 분류 정리했는데 우선 1장 '시민·정치적 권리 영역'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투쟁'과 '사회보호법 폐지운동'을 비롯해 '장애인의 인권보장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운동',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학내 종교의 자유를 위한 저항인 강의석 학생 사건' 등을 다루고 있다.
2장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영역'에서는 'KT 상품판매팀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삼성 SDI 노동자 감시와 정보인권유린' 등을 다뤘으며, 3장 '차별 영역'에서는 'HIV/AIDS 인권지침서'와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쟁취를 위한 투쟁,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을 담아냈다.
4장 '인권교육 영역'에선 2004년 인권교육의 현황과 전망을, 5장 '과거청산'에서는 과거청산과 인권운동의 관계를 조명한 뒤,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과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운동',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 활동', '올바른 과거청산법 제정 운동' 등의 조명했다.
이어 6장 '국제연대' 영역에선 '전범민중재판운동'과 '북한인권문제와 관련된 활동과 과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7장 '지역인권운동'에선 울산지역과 부산지역 인권운동의 성과를 정리했다.
8장 '정보인권'에선 '개인정보보호법 제정과 주민등록법, 호적법 개정운동', '지문날인, 주민등록번호 거부 행동', '인터넷 실명제 실시 반대행동' 등을 다뤘으며, 끝으로 9장 기타 부문에선 '국가인권위 쇄신 요구와 밀실 인선 반대',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반대 운동, ‘반차별 포럼과 3회 전국인권활동가대회' 다뤘다.
이처럼 각 장에 실린 각각의 주제와 사안들에 대해 해당 인권운동이 제기된 배경과 전개과정, 그에 따른 운동의 성과와 앞으로 풀어야 과제를 진솔하게 표현했다.
"인권활동가의 문제의식 담아 우리사회 인권현실을 진단하고자 노력한 결실"
끝으로 '부록'은 2004년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걸어온 길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료들을 정리한 활동일지와 성명서 등 자료 모음, 17대 국회에 요구하는 인권입법과제 의견서, 소속 단체 소개로 구성됐다.
<보고서> 편집위원회 일을 맡아 본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는 "지난 해 5월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활동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연간 보고서를 계획했다"며 "다양한 인권운동의 분야 간 의사소통과 운동 방향을 모색해 함께 대응해 나가는 것 역시 인권활동가의 주요한 의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의 의미에 대해 박래군 활동가는 "우리나라에 '인권운동'보고서는 없고, 다만 인권보고서 형식의 변호사들이 정리하는 것과 인권위가 만들어 내는 백서가 있다"면서 "다른 보고서와 차별성이 있게 인권현장을 누비는 현장감 있는 인권활동가의 문제의식을 담아 우리사회 인권현실을 진단하고자 노력한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보고서>는 다산인권재단(이사장, 김칠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출간 됐으며, 인권회의는 앞으로 해마다 연간 보고서를 발간해 발로 뛴 인권운동의 기록을 역사에 남긴다는 계획이다.
| | 인권단체연석회의(약칭 인권회의)는? | | | 다양성 힘으로 한 인권단체의 수평적·전국적 연대질서 | | | | 인권단체연석회의는 2004년 5월, 우리 사회의 인권 신장을 위해 사회 각 방면에서 노력해온 인권단체들이 모여 수평적·전국적 연대질서를 만들자는 취지로 결성됐다.
인권회의의 참여단체와 활동가들의 다양성을 가장 큰 힘으로 보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권의 지평을 확인하고, 사회를 인권화하기 위한 장기적 인권전략과 인권의제들을 찾아 실천하고 있다.
현재 인권회의에는 참여하고 있는 34개 인권단체들은 다음과 같다.
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 군경의문사진상규명과폭력근절을위한가족협의회, 다산인권센터, 대항지구화행동,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운동가족실천협의회, 부산인권센터, 불교인권위원회, 사회진보를위한민주연대, 새사회연대,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안산노동인권센터, HIV`AIDS인권모임나누리+,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울산인권운동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이주노동자인권연대, 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 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자유·평등·연대를위한광주인권센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쟁없는세상,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한국DPI(한국장애인연맹),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나다 순) / 이민우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