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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들어 우리집 컴퓨터는 큰녀석이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 어제 저녁만 해도 그렇다. 저녁밥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큰녀석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내가 이미 앉아 있는 의자에 자신의 조그만 엉덩이를 들이밀며 내 손에서 마우스를 낚아채 갔다.

"아빠, 나 뭐 좀 할 게 있어요. 조금만 하고 줄 테니 좀 비켜 보세요."
"뭘 하려고 그래?"
"재밌는 거 있어요. 내가 지금 해 볼 테니 한 번 보세요."

그러면서 녀석은 내가 지난번에 알려준 포탄쏘기 게임부터 시작해서 이런 저런 게임을 자랑하듯 해 보였다.

"너 이런 거 누구한테 다 배웠어?"
"안 배웠어. 나 혼자 다 할 줄 알아."

녀석은 신이 난 얼굴로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요즘 집에 와서는 오직 컴퓨터만 켜고 놀더니 이 녀석이 아주 재미가 들린 모양이었다.

"너무 오래하지 말고 동생하고도 놀아주고 그래."

컴퓨터 게임에 푹 빠진 큰 아이

녀석은 내 말을 듣기나 했는지 대답도 없었다. 사실 큰녀석이 컴퓨터에 매달리고부터 막내는 집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어 버리고 만 셈이 됐다. 이전에는 막내놈도 제 형을 따라 온 집안을 벌집 쑤셔놓듯이 하며 정신 없이 놀았는데 요즘은 제 형이 컴퓨터 게임을 하는 동안 그 옆에서 손가락이나 빨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고작이다.

어제도 내가 큰녀석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나오자니 막내 놈은 제 형 옆에서 컴퓨터 화면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큰애는 또 컴퓨터 하는 모양이네."

거실로 나오자 제 엄마가 저녁 밥상을 치우면서 말했다.

"그때 병원에서 봤잖아. 저 나이 또래 애들이 컴퓨터 게임에 얼마나 열광하는지 말야."
"그래도 다른 애들은 글자 공부도 하고 그런다던데 저애는 글자 공부는커녕 벌써부터 게임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니 걱정이지."
"큰애가 남들 다 할 줄 아는 컴퓨터 게임도 못한다고 걱정한 게 누군데 그래?"

사실이 그렇다. 지난 번에 막내가 아파서 소아과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진료 순서를 기다리며 있자니 한쪽 옆에 놓여 있는 컴퓨터 앞에서 큰애 또래의 아이들이 잔뜩 모여서 서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우리집 큰 녀석은 그때까지 컴퓨터 게임은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라 그저 한쪽 옆에서 멍하니 구경이나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이 제 엄마가 보기에는 또 조금 못마땅하게 보였던지 집에 오자마자 날더러 들으라는 듯 큰애를 앞에 두고 한마디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은 벌써 컴퓨터 게임도 다 하는데 우리 집 아빠는 도대체 무얼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날로 애들 엄마가 바라는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한번 해 보고자 큰 녀석에게 간단한 게임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글자를 좀 배워서 동화책도 혼자 좀 읽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애 엄마의 말을 흘려 들으려 애쓰며 앉아 있자니 갑자기 녀석들이 있는 방에서 작은애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해서 서둘러 녀석들이 있는 방으로 가 보았다.

컴퓨터는 꺼져 있었고 막내 놈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마구 울고 있다.

"왜 그래?"

묻는 말에 막내 놈이 울먹이며 대답한다.

"형아가 나 얼굴 때렸어."

막내놈 말을 받아 큰녀석이 재빠르게 대답한다.

"너가 먼저 컴퓨터를 꺼 버렸잖아."

녀석들의 말을 들으니 대충 짐작이 간다. 여느 때처럼 막내놈이 제 형이 게임하는 모습을 무료하게 지켜보다가 더 이상 심심해서 안되겠던지 그냥 컴퓨터 스위치를 눌러 버렸을 것이다. 당연히 큰녀석은 한참 재밌게 하던 터라 그만 화가 나서 막내놈을 때렸던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큰녀석은 또 컴퓨터 스위치를 켜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얼른 큰놈에게 겁을 주며 을러댔다.

"너 아빠랑 밖에 바람 쏘이러 갈래, 아니면 동생하고 싸웠으니 같이 벌 받을래?"

녀석은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보더니 정색을 한 내 얼굴이 심상치 않았음을 느꼈음인지 냉큼 밖으로 나가겠다고 그런다.

아들과 들은 봄밤의 소리

녀석과 아파트 밖으로 나오니 봄밤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듯했다.

"아빠랑 어디가 볼까?"
"…."

가만 생각해 보니 얼마전에 들었던 개구리 울음소리가 생각났다. 녀석을 차에 태우고 그리로 가 보았다.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자 개구리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녀석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 녀석은 갑자기 컴컴한 들녘으로 나와서 그런지 내 목을 꼭 안고서는 꼼짝할 생각을 안 한다. 녀석을 품에 안고 말했다.

"눈을 꼭 감고 들어봐. 무슨 소리가 들리니?"
"응, 깨굴깨굴해"
"또?"
" 뽀룩뽀룩하기도 해"
"또?"
"빵빵하는데."
"그건 저기 자동차 소리야."

"으응, 자동차?"하고 녀석은 그제서야 제 머리를 내 품속에서 쳐들었다.

"아니, 눈을 감고 다시 들어봐"
"싫어, 난 안할래."

녀석은 답답한 모양이다. 잠시 동안 이 봄밤의 들판에 적응이라도 되었는지 얼른 내 품에서 내려와 쪼르르 저 쪽으로 내달린다. 이제는 무섬증도 없어졌나 보다. 하긴 길 이쪽으로는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갑자기 녀석에게 봄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리를 온전하게 들려주고 싶어 논둑길 쪽으로 걸어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녀석을 불렀다.

"이리 와. 아빠하고 저기 들어가 보자."

녀석은 냉큼 뛰어 왔다.

"우리 저기 논 가운데로 들어가 보자."

내가 불빛 한 점 없는 쪽을 가리키며 말하는데도 녀석은 무어가 그리 재밌는지 얼른 좋다고 맞장구를 친다. 녀석의 손을 잡고 좁다란 논둑길을 따라 개구리 소리가 아우성치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 발소리에 놀랐는지 여기 저기에서 펄쩍이며 멋대로 뛰기 시작하는 소리의 주인공들은 그래도 즐거운지 더더욱 크게 노래를 한다. 큰 녀석은 내 손을 꼭 잡고 조용히 그 소리를 듣고 있다.

"저 소리 들리니?"

묻는 말에 대답도 없다. 그렇게 잠시 있더니 갑자기 큰녀석이 작은 소리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깨굴깨굴 깨꾸리 노래를 한다. 아들, 며느리 모여서,~"

그리고 이젠 하늘도 올려다 볼 줄 아는지 "아빠, 저기 별이 반짝여요"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개구리 울음소리만큼이나 맑고 빛나는 별이 밤하늘을 가득 수놓고 있었다. 녀석의 손을 꼭 잡은 내 가슴으로 한 줄기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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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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