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의 중인 최영택 구들학회 회장
강의 중인 최영택 구들학회 회장 ⓒ 전희식
옛날에는 동네마다 '구들장이'들이 있어서 고장 난 구들을 고치기 위해 아궁이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방구들을 뜯어 내기도 했는데 옷이건 얼굴에 검댕을 주렁주렁 매달고 살았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은 애들이 며칠간 얼굴을 씻지 않아 땟국이 졸졸 흐르면 "구들장이 아들이냐"고 놀리기도 했다.

그 천대 받던 구들장이의 솜씨를 배우기 위해 몇 만원씩 참가비를 내고 전국방방곡곡에서 서른 남짓 장정들이 한데 모였다. 멀리 뉴질랜드에 농업 이민을 가 살고 있는 예순이 넘은 분도 오셨다. 여성은 두 분이 왔다.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자리를 마련했고 강사는 '구들학회' 최영택 회장이었다.

수강생들의 자발적인 노동으로 일이 착착 진행됐다.
수강생들의 자발적인 노동으로 일이 착착 진행됐다. ⓒ 전희식
아무리 좋은 강사를 모시고 좋은 공부를 해도 그것이 손과 발을 통해 완성되지 못하고 눈과 머리로만 익히고 끝나면 자기 것이 안 되는 법. 따라서 우리는 꼬박 이틀 동안을 고된 막노동을 통해 구들 놓기를 배웠다. 이론 강의는 짧고 실습이 대부분이었다.

"허허. 품삯 주면서 일 시키면 저렇게 못 할 거여~"
"10만원을 준들 누가 하겠소?"

일을 다그치는 감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이래라 저래라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은 눈썰미로 일을 찾아서 열심을 다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게으름 안 피우고 일 잘하는 사람은 그만큼 더 깊이 배우게 되는, 노동이 곧 공부가 되는 이틀이었다.

지난 21일 오전 9시 반에 온양온천역에 모인 우리는 아산시 초사동 사래마을의 한 시골집으로 갔다. 70년 되었다는 집은 낡을 대로 낡았지만 오랜 세월을 견뎌 온 넉넉함이 있었다. 뒤꼍에는 자그마한 채마밭이 있었고 생태 화장실은 냄새 하나 안 풍겼다. 허술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쉽게 넘볼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아담한 크기와 자연스러우면서도 위엄 있는 지붕 물매가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공부는 이 집의 한 칸짜리 구들방을 뜯어 내면서 옛 어른의 구들 솜씨를 익히는 것과 대청마루까지 이어지는 두 칸짜리 구들방을 새로 만드는 것이었다.

여성 두 분도 참석하여 거침없이 막노동을 했다.
여성 두 분도 참석하여 거침없이 막노동을 했다. ⓒ 전희식
일흔이 넘은 최 회장은 구들에 들어 있는 생활문화와 과학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을 한 마디로 반박할 수 있는 자료도 고구려민들의 구들문화라고 잘라 말했다.

나는 아궁이 부넘기에서 구들로 들어가는 곳을 작업할 때 제일 신경을 곤두세웠다. 3년 전 집을 짓고 양쪽 방의 구들을 직접 놓았는데 자료라는 자료는 다 뒤져보았지만 이사람 얘기 다르고 저사람 얘기 달라서 여태 풀리지 않고 있던 의문들이 많았던 부위가 바로 이 곳이었다.

솥단지가 걸리는 아궁이 방식과 방구들 밑에 불을 피우는 함실 방식에 대해 설명이 있었다. 우리는 함실 방식을 택해 작업했다. 열과 대류 등 과학 문제에 대한 질문들이 날카롭게 오고가기도 했다.

구들 모형을 마당에 만들어 놓고 설명하고 있다.
구들 모형을 마당에 만들어 놓고 설명하고 있다. ⓒ 전희식
구들 놓기 강좌에 모인 사람들은 귀농학교 출신과 농사 짓는 사람도 있었지만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나이와 직업, 경력은 달라도 생태적으로 살고자 하는 깊은 고민은 다 같았다. 제주도에서 온 사람만 없고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라 새참 먹을 때와 식사 시간은 물론이고 밤 늦은 시간까지도 막걸리 통을 끼고 둘러앉아 생태농사와 귀농지에 대한 이야기를 팔도 사투리로 주고받았다.

다음날인 22일 오후 3시쯤이었다. 12평 남짓 되는 두 칸짜리 방의 구들을 다 덮고 새침을 치고 불을 땠다. 연기가 나는 구들 틈새를 막아나가자 앉은뱅이 굴뚝으로 연기가 퐁퐁 뿜어 나왔다. 골 개자리(방구들 윗목에 깊이 파 놓은 고랑)와 굴뚝 개자리가 아주 잘 만들어진 덕이다.

구들 학회의 인증서
구들 학회의 인증서 ⓒ 전희식
최영택 선생은 명강사였다. 구들의 원리나 시공에 대한 설명을 할 때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 정교한지 착착 들어맞는 구들 아귀 같았다. 나이 잡수신 분이 익살스럽기가 개구쟁이 소년 같았다. 수강생들을 이틀 내내 들었다 놨다 했다.

이번 공부에서 굴뚝을 세우지 않는 이유를 막걸리가 부족한 때문이라고도 했고 예민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국보급 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눙쳤다.

이틀간 열심히 일한 사람만이 겨우 풀 수 있는 아주 어려운 시험을 내서 통과해야 구들학회의 인증서를 주겠노라는 애초의 약속을 어기고 모든 수강생에게 구들학회 인증서를 주었다. 최 선생은 "여러분들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나는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모두에게 인증서를 준다는 것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