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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 준비설과 미국의 북핵 유엔 안보리 회부 움직임 등 불안한 조짐들이 하나둘씩 커지고 있던 5월 중순에 들려온 남북한 당국자 회담 재개 소식은 그야말로 '짙은 먹구름을 뚫고 나온 한 줄기 햇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2004년 7월 이후 고 김일성 주석의 조문 불허와 탈북자 대량입국으로 10개월여 중단됐던 남북대화가 재개된 것이다.
이번 회담 재개가 식량난 해결을 주공(主攻)으로 삼은 북한이 남한으로부터 쌀과 비료를 지원받기 위한 것이 1차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당국자 회담 재개는 급격한 상황 악화를 방지하고 문제 해결의 발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
5월 16일부터 19일까지 개성에서 열린 차관급(실무) 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5주년을 맞는 올해에 온 겨레의 염원과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따라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평양 6.15 공동행사에 장관급 대표단 파견,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에서 제15차 장관급 회담 개최, 비료 20만톤 제공에 합의했다.
비록 관심의 초점을 모았던 핵문제가 공동보도문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남북관계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한 것 자체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남한이 한반도 비핵화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민족공조도 화해협력도 불가능하다며 북한을 강하게 압박했지만, 북한은 이를 빌미로 판을 깨지 않았다.
남한 역시 장관급 회담 일정 확정을 양보 받으면서 무리하게 공동보도문에 북핵 문제에 대한 언급을 관철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양측의 실용적이고 유연한 자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북미 뉴욕 접촉의 의미
남북 차관급 회담과 함께 북미간의 뉴욕 채널이 재가동되었다는 소식 역시 반가운 것이다. 2004년 12월 이후 중단된 뉴욕 접촉이 6개월 만에 재개되면서 북미간의 직접 접촉이 이뤄진 것이다.
5월 13일 조셉 디트러니 국무부 대북협상 특사와 제임스 포스터 한국과장이 뉴욕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찾아가 박길연 대사 및 한성렬 차석대사를 만나면서 이뤄진 북미 직접 접촉에서 미국은 북한을 주권국가로 간주한고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직접 전달했다. 아울러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강력히 촉구하면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미국은 유연한 자세를 보일 수 있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이번 접촉이 갖는 긍정적인 의미는 북미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양측이 조심스럽게 대화를 모색하는 시점에 나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5월 8일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형식을 빌려 "우리는 6자회담과 별도의 조(북)-미회담을 요구한 것이 없다"면서도, "있다면 미국이 우리를 주권국가로 인정하며 6자회담 안에서 쌍무회담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보도들이 전해지고 있기에 그것이 사실인가를 미국 측과 직접 만나 확인해보고 최종결심을 하겠다고 한 것뿐이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의 제안으로 이뤄진 이번 뉴욕 접촉은 이와 같은 북한의 입장에 대한 화답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남북 차관급 회담과 뉴욕 채널을 통한 북미 접촉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가지 모두 빠르게 확산되던 '6월 위기설'을 '6월 대화 국면'으로 반전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지만, 동시에 외교적 해결 노력이 막바지에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기가 커지면 기회의 가능성도 열리듯이 그 기회가 이렇다할 성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위기는 한층 커지는 법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정세는 정확히 이 지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북 차관급 회담의 경우 1년 가까이 중단된 당국자 회담을 복원시켰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크지만, 핵문제에 대한 양측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거듭 확인된 것은 앞으로 남북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라는 결단을 내릴 경우 남북관계와 6자회담의 병행 발전을 위한 기틀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 역시 상당한 위기를 맞이할 공산이 크다. 남북관계가 핵문제에 구조적으로 종속되고 있는 것이다.
북미간의 뉴욕 접촉 역시 마찬가지이다. 북미간의 대결이 한창 고조되던 시기에 이뤄진 이번 접촉은 서로의 의지를 마지막으로 시험해본다는 의미를 깔고 있다. 우선 이번 접촉을 먼저 제안했던 미국은 북한에게 사실상 '최후통첩'을 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회담 틀 내에서 양자 회담도 하고 과거보다 유연해진 자세로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전하고 있지만,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유엔 안보리 회부 등 본격적인 대북 제재 및 봉쇄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갈림길에 선 북미 갈등
특히 이번 뉴욕 접촉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극심한 분열을 보였던 부시 행정부 내 강온파 사이의 정치적 타협물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잘 알려진 것처럼 2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이후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본격적인 제재와 봉쇄에 나서야 한다는 초강경파와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협상파 사이의 이견이 계속돼왔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중심으로 한 협상파는 유엔 안보리 회부 등 "다른 선택"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을 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했다. 이에 반해 딕 체니 부통령을 정점으로 한 초강경파들은 북한의 현금줄을 차단하기 위한 치밀한 봉쇄 방안을 강구하면서 대북강경책을 주문했다.
이러한 와중에 이뤄진 뉴욕 접촉은, 대북 협상파에게는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마지막 외교적 노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대북 제재파에게는 이것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강화된 입지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대북 압박에 나설 수 있는 기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제안으로 이뤄진 뉴욕 접촉은 점차 비등점에 도달하고 있는 북핵 문제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6자회담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조건과 분위기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해온 북한은 미국의 제안으로 이뤄진 5월 13일 뉴욕 접촉을 일단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뉴욕 접촉을 전후해 미국의 고위 관리들이 계속 대북 강경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5월 22일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이 뉴욕 접촉 사실을 확인하면서 적당한 때에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밝히는 동시에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들의 발언을 문제삼은 것은 이러한 기류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6자회담의 재개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6자회담의 재개 여부는 부시 행정부가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자제할 것인지, 그리고 북한이 뉴욕 접촉에 대해 어떤 입장을 전달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2005년 6월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어질 글: 숨가뿐 6월, 한반도의 운명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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