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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시골집에 가면 먹을 수 있게 생긴 것은 무조건 다 챙깁니다. 어머니는 이런 아내가 알뜰하다고 하시지만 사실은 박봉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아내의 노력이지요.
아내는 시골집에 가면 먹을 수 있게 생긴 것은 무조건 다 챙깁니다. 어머니는 이런 아내가 알뜰하다고 하시지만 사실은 박봉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아내의 노력이지요. ⓒ 장희용
아내 말 대로 지방 소도시, 조그만 회사에 다니는 나로서는 그리 많지 않은 월급을 받으면서 15만 원을 저축한다는 것이 사실 무리였다. 처음에는 아파트 관리비, 애들 보험에 분유 값, 아프신 아버지 약값, 경조사비, 병원비, 생활비 등 왜 그리도 돈 들어가는 곳이 많은지…. 빠듯한 생활이 아닐 수 없었다.

생활하기에도 벅차니, 저축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게 생활하다 우연히 농협에 갔다가 오늘처럼 순서를 기다리다 '공제상품'을 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그래 지금보다 좀 더 힘들어도, 그래도 저축은 해야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애들 크기 전에 조그만 내 집이라도 있어야지.'

그래서 그 자리에서 월정액이 가장 적은 15만원짜리 적금을 들었다. 이따금씩 우리 집의 유일한 저축통장인 이 통장을 보면서 허탈한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한 달 15만 원씩이다 보니 사실 돈이 모아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1년이 지난 후엔가 통장을 한 번 보고는 해약을 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1년 동안 모은 돈이 고작 180만 원. 웬만한 사람 한 달 월급인데, 1년 12달 모은 것이 고작 180만 원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그 돈 모으기 위해 매달 힘들게 사는 것보다, 해약하고 차라리 그 돈으로 먹을 것도 사 먹고, 결혼 후 옷 한 번, 신발 한 번 제대로 사 입은 적 없는 아내한테 옷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럴 때마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저축해야 한다'면서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차마 해약을 하지 않았다.

아내뿐만 아니라 나도 적지않이 고생했다. 사실 그때 용돈이 3만원이 되지 않았다. 물론 회식비를 내야 한다든가, 개인적인 모임이 있다든가 할 경우 아내한테 특별 용돈을 받아쓰긴 했지만, 말 그대로 내가 음료수라도 한 잔, 커피라도 한 잔 사먹을 수 있는 돈은 3만원이었다.

꼬박꼬박 회사에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고, 담배도 끊었다. 좀 비굴하긴 했지만 술이라도 한 잔 할라치면 넋 살 좋게 "저 돈 없어요. 사주면 먹고"하면서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을 막았다.

지금도 3만원을 넘지 않는다. 몸에 배어서 그런지 딱히 돈 쓸 일도 없다. 그 돈의 절반도 퇴근 때 가끔씩 애들 먹거리를 사는 데 쓴다. 이따금씩 아내가 그런 나를 보고 자꾸 사주면 버릇든다고 말하면 많이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떤 날은 그 용돈 모아서 장모님을 드린다든가, 아내 옷을 사준다든가 하는 기특한 행동의 남편을 상상해 본 적도 있지만 그냥 상상 속에서 끝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로 한 번 했으면 아내가 무지하게 감동 먹었을텐데…. 한 번 해 볼까?

쓰다 보니 갑자기 넋두리로 변했다. 적금 통장 쳐다보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박봉 쪼개 생활하면서도 남편 기 죽을까봐 한 번도 돈 이야기 안 하고 살림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될 것 같다.

"여보, 고마워요. 그리고 싸랑해요!"

은행에서 적금 통장 받아 든 순간부터 생각한 것이 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바꾼다. 처음에는 천만 원이 채 되지 않았으니 천만 원을 채워 은행에 적금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행복한 과소비' 한 번 해 볼란다. 돈이야 또 모으면 되지 돈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900만 원만 저금하고 나머지 76만 원 중 30만 원은 아내에게, 10만 원씩은 자식들 기특하다는 칭찬도 들을 요량으로 어머니와 장모님께 드려야겠다.

그런 나머지 26만 원은? 6만 원은 내 용돈으로 해서 다음달 용돈 3만원하고 합쳐 그동안 꽁짜 술 얻어먹은 분들한테 거하게(?) 술 한 잔 사야겠다.

그래도 20만 원이 남네. 이제 쓸 일이 없는디…. 아참! 적금 탄 기념으로 퇴근 후 집에서 소주 한 잔에 삼겹살 파티 해야지! 그래도 돈이 남으니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제가 가장 부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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