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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한 알짜주유소를 사이에 두고, SK와 에쓰-오일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강남 신사동의 H주유소.
서울 강남의 한 알짜주유소를 사이에 두고, SK와 에쓰-오일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강남 신사동의 H주유소. ⓒ 김종철

지난 24일 오후 2시께 서울 강남 성수대교 남쪽끝 사거리에 위치한 SK H주유소 앞. 평일 오후에도 불구하고 고급 대형차들이 연달아 주유소를 찾고 있다. 주변에는 압구정동 현대와 한양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밀집해 있다.

올 2월부터 주유소 관리를 맡고 있다는 한아무개씨는 "대개 출퇴근 시간이 영업의 피크 타임"이라며 "특히 이곳은 입지조건상 출근시간보다 퇴근때 주유소를 찾는 고객들이 더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평일 시간대에도 차량이 꽤 많다'고 하자, "이 정도 주유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거의 쉬지 않고 2대 정도의 차량은 계속 걸려 있어야(기름을 넣어야)한다"고 전했다.

그의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기자가 찾은 2시 이후 주유소에는 차량들이 거의 쉼없이 들어왔다. 휘발유 값은 1리터당 1501원. 인근 강북지역의 경쟁이 치열한 주유소 기름값보다 무려 20% 가까이 비싸다. 대부분 국산 대형차나 외제 차량이었고, 나홀로 운전차량이 많았다.

20년 '노란색' 간판이 하루아침에 '빨간색'으로

강남일대 주유소 가운데 '알짜 주유소'로 꼽히는 이곳을 두고, 최근 국내 최대 정유업체인 SK와 후발업체인 S-Oil(에쓰-오일)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지난 86년 문을 연 이후 지난 20여년동안 노란색 'S-Oil' 간판을 걸고 영업을 지원해온 에쓰-오일쪽의 반발이 거세다. 올 2월초 주유소의 소유주가 바뀌는 과정에서, 기존 노란색 간판(에쓰-오일)이 빨간색 간판(SK)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에쓰-오일쪽에선 지난 1월말 소유주가 바뀌었지만, 그 이전 소유주와 맺은 계약기간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어, 계약 갱신이나 연장 등에 대한 충분한 협의과정도 없이 계약이 일방적으로 해지됐고, 소유주가 바뀌자마자, 새벽에 기습적으로 SK 간판으로 바뀌었다고 에쓰-오일쪽은 주장했다.

회사쪽 관계자는 "SK가 주유소 사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거래선을 바꾸도록 은밀하고 집요하게 설득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는 서울에 몇개 안되는 핵심 주유소를 침탈한 것이며, (SK쪽에서 우리와) 주유소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H 주유소의 주변에는 압구정 현대 아파트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밀집해 있다.
H 주유소의 주변에는 압구정 현대 아파트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밀집해 있다. ⓒ 김종철

S-Oi, "99섬 가진자가 마지막 1섬까지 차지하겠다는 의도"

'침탈'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강하게 반발하는 배경에는 에쓰-오일이 그동안 정유업계의 후발업체로서 당한 설움이 그대로 녹아있다.

지난 76년에 설립된 에쓰-오일은 SK와 GS칼텍스(구 LG) 등에 비해 적은 주유소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 지난 98년 이전까지 일정한 거리 이내에 주유소를 설립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알짜 위치를 차지한 기존 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유소 숫자나, 위치가 나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재 서울 등 수도권일대 주요 주유소는 SK가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유소 숫자도 전국적으로 SK가 3700여개에 달한다. 에쓰-오일은 1300여개 정도로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 역시 수도권보다 지방 쪽이 많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신사동의 H주유소는 에쓰-오일의 몇 개 안되는 서울 주요 전략 주유소 가운데 하나다. 입지상으로 강남 요지에 위치에 있으면서, 매출도 그동안 연간 90억원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주유소다. 회사쪽에선 매출도 매출이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강조한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SK는) 과거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 덕택에 국내 대부분의 노른자위 주유소를 손쉽게 확보했다"면서 "이번 건은 99개의 섬을 가진자가 마지막 남은 하나의 섬까지 차지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위기의식은 회사 고위층도 마찬가지다. 알 아르나우트 에쓰-오일 사장은 지난 4일 SK 최태원 회장에게 주유소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법적인 절차도 밟고 있다. 지난 2월 17일 법원에 SK를 상대로 H주유소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했고, 지난달부터는 본격적인 소송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SK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계약한 것일 뿐"

이에 대해 SK 주유소를 관장하는 SK 네트워크쪽에서는 에쓰-오일의 주장을 일축했다. 오히려 에쓰-오일쪽에서 그동안 정유 유통시장을 흐려왔고, 이번과 같은 주유소의 공급자가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특히, 신사동 H주유소는 SK의 직영 주유소가 아닐 뿐더러, 주유소 소유주가 바뀌는 과정에서 모든 결정은 소유자 스스로 내린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SK쪽에 따질 것이 아니라, 바뀐 주유소 소유주와 에쓰-오일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소송과 관련해서는, 에쓰-오일쪽에서 전 소유자와 맺었던 계약관계에 대해 법적인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에쓰-오일쪽이) 취하했다고 SK쪽은 전했다.

SK 네트워크 관계자는 "에쓰오일쪽에서 H주유소의 전 소유자와 맺었던 계약관계가 소유자가 바뀐 시점에도 유효한지에 대해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그쪽에서 소송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소를 취하하고 다른 쪽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H주유소와의 계약과정은 전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서 "새로 바뀐 주유소 사장이 우리와 계약하기를 원했고, 고객이 원하는 만큼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유류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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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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