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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끓고 있는 보신탕
'보글보글' 끓고 있는 보신탕 ⓒ 정현순
의외로 사철탕은 입맛에 맞아 주었고 생각이 앞섰는지는 몰라도 그걸 먹는 날엔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는 턱없는 말들을 흘리고 다녔다. 어쨌든 나는 그 날 이후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사철탕 집 문턱을 다반사로 넘나들었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몸으로 매번 백반보다 두 배는 비싼 사철탕 집을 드나든다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결국 그 해 여름이 다가기 전에 나는 돈 앞에 무릎을 꿇고 힘이 세지기 위해서는 돈도 필요하다는 이치를 깨닫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해 겨울이 가기 전 나는 직장을 옮겼다. 전 직장에서 상사로 모시던 분이 사업체를 차리면서 소위 말하는 스카우트를 내게 제의했고 그 제의를 받고 나는 지방 소도시보다 더 작은 도시로 거처와 직장을 옮긴 것이다.

문제는 다음 해 여름이었다. 이제 과장님에서 사장님으로 불러야 하는 그 양반은 한마디로 사철탕 하면 깜빡 죽는 사람이었다. 그 양반 처갓집에서는 매년 누렁이 한 마리를 그 양반 몫으로 갖은 정성을 들여 먹이고 키워낸 후 여름이 닥치자마자 매 끼니마다 내놓는 것이었다.

아직 결혼 전이었던 나는 그 직장 근처에 자취를 얻어 세끼니 모두 그 집안에서 해결했는데 그 전 해에 돈 앞에 굴복했던 사철탕 순례를 굳이 돌아다니지 않고도, 굳이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고 또 먹어 주었다.

그런데 그 해 겨울을 앞두고 목욕탕 저울에 올라 선 나는 질겁하고 말았다. 순전히 사철탕만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지는 몰라도 다른 뾰족한 이유도 없었다. 그 새 내 몸은 63kg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근 십년 정도를 유지했던 58kg의 몸무게가 불과 몇 달 사이에 5kg 증가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키는 1cm도 자라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쩐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서부터 와이셔츠의 맨 위 단추가 쉽게 끼워지지 않고 벨트 구멍이 조금씩 끝을 향해가고 있는 것을 알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사철탕이 내게 맞는 음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에 맞는 음식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한 마리를 둘이 먹었으니 혼자 반 마리를 먹고도 그 중 5kg의 살덩이가 빠져 나가주지 않았다는 계산이다.

정작 문제는 몸무게가 불으니 땀을 더 많이 흘리고 살이 오르니 행동이 전보다 훨씬 둔해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환장할 일은 머리마저 돌아가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없는 살이 생겨 따라오는 부작용치고 심각한 피해였다. 그래도 아담했지만 날랜 몸매에 빠른 순발력으로 세상을 헤쳐 왔는데 나에게서 가장 자랑할 만한 무기들이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사철탕으로 인해 다른 얻은 것이 있다면 억울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살만 얻었을 뿐 한 여름엔 여전히 비루먹은 개처럼 눅진한 몸을 끌고 다녀야 했고 한 겨울엔 천적을 만나 옹송그린 쥐며느리처럼 삭풍 앞에 주눅이 들어 있어야 했다.

달라진 것이라곤 짧아진 목과 불어버린 몸이었다. 나는 여전히 더위를 못 견뎌했고 추위를 참아낼 수 없었다.

나는 몇 해 뒤 결혼을 하였고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이 '장가가면 살찐다'는 통념에서 예외일 수 없었으며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이 줄지 않는 몸피에 한 숨을 달고 산다.

나는 아직 165cm 키지만 몸무게는 72kg을 위태롭게 유지하고 있다. 오늘도 그래서 슬프다. 제발 부탁이다. 남들이 권해주는 좋은 음식을 다 믿지 마시라. 어른들 말씀대로 '밥이 보약이다.'

불행한 사실 하나, 아직 신은 나에게 지구를 바꿀 수 있는 권능을 주시지 않았다. 이제 한 여름은 금방이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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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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