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업 뒤에는 이권이 있고, 그 이권 뒤에는 비리가 똬리를 튼다?
이권과 비리의 먹이사슬에 걸려 서울시 부시장, 국회의원, 공사 전 사장, 한국노총 전 위원장 등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황금알 낳는 거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26일 고석구 전 수자원공사 사장이 한탄강댐 건설 사업과 관련해 '공사 수주를 딸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대건설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며,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9000만원을 선고했다. 고석구 전 사장은 이 뿐 아니라 W산업대표 이아무개씨에게도 공사 발주와 관련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유재만)는 관급공사 수주를 위해 로비자금 100억 원대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W산업대표 이아무개씨를 지난 24일 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고석구 전 사장 및 정치인 등과의 친분을 과시했던 이씨는 수자원 공사가 발주하는 공사를 맡기는 대가로 하도급업체에게 71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2002년 또다른 관급 공사로 37억여원 상당의 이득을 챙긴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이씨가 조성한 100억원대 비자금이 정관계로 유입됐는지 여부도 면밀하게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자원공사 감사를 지낸 열린우리당 Y의원이 거명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씨는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납품계약서, 공사대금청구서, 세금계산서를 이용해 가짜 서류를 만들었다. 가짜 서류 만들기는 건설업계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게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고질적인 건설 비리가 공사 전 사장과 정치인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상황이 된 셈이다.
노총 위원장도 건설비리에 동참
지난 25일 밤 구속된 한국노총 이남순 전 위원장도 역시 한국노총 근로자복지센터 준공 과정에서 하청업체들에게 2억2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확인됐다.
이남순 전 위원장은 전기업체에게 벽산의 하청업체로 선정되도록 도와주면 공사금액의 10%를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현금 2억원을 받았고, 근로자복지센터 설계를 맡은 건축사무소 대표로부터 감리사 선정 청탁과 함께 현금 2000만원을 받았다는 것.
한국노총 권원표 전 부위원장도 벽산건설 간부와 벽산건설 하청업체 사장에게 1억7500만원과 7000만원 등 모두 2억4500만원을 받은 혐의가 확인돼 23일 구속됐다. 권씨는 벽산건설로부터 5억원을 더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지원금 334억원이 투입된 한국노총 근로복지센터 공사에 관련 하청업체만 40여개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비리 연루자는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은 한국노총 전임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건설사 선정→다단계의 하청업체 사업 수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건설업체 뇌물 비리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청계천 복원과 개발이익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출신으로 서울시 청계천 복원 추진본부장을 맡았던 양윤재 부시장이 부동산 개발업체인 미래로RED 이사 길아무개(36)씨에게 2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 5월 8일 구속돼 기소를 앞두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미래로RED 이사 길씨가 양 부시장에게 뇌물을 제공한 이유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길씨는 양 부시장에게 "30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고도제한을 풀어달라"는 청탁을 한다. 미래로RED는 38층 주상복합빌딩을 추진했던 업체.
2001년 10월 확정된 '도심부 관리계획 및 도심재개발 기본계획'에 따르면 최고 높이를 90m 용적률(층별 면적의 합계가 대지 면적의 몇배인지를 나타내는 수치)을 600%로 결정했지만,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제한이 완화되면서 고층 주상복합 건물 건립이 가능해졌다. 서울시는 2004년 8월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심부 발전계획'을 세우면서 도심 재개발구역에 건물 높이를 110m로 20m 높게 해줬다.
여기에 영화관, 공연장, 호텔 등 도심 활성화에 기여하는 시설을 유치하거나 연면적 30% 이상을 주거비율로 정하면 인센티브를 적용해 용적률을 최대 1000%까지 허용하도록 했다. 그 결과 30층 이상 주상복합건물 공사가 가능해졌다.
주상복합은 상업·업무 시설보다 평당 분양가가 2배 이상 높기 때문에 개발이익도 그만큼 높다. 용적률 인세티브까지 받았으니 건물도 높이 올릴 수 있고, 주상복합은 선분양도 가능하기 때문에 자금 유동성도 용이하다. 건설업체들이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경쟁적으로 로비를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미래로RED가 38층 주상복합빌딩을 추진하면서 예상되는 개발이익이 1000억원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1000억원의 개발이익이 나는데 몇십억원 로비자금은 그들에게는 투자 비용에 불과하다.
미래로RED가 김일주(53. 한나라당 전 성남중원지구당 위원장)씨에게 이명박 시장과 면담을 주선하는 대가로 14억원을 선뜻 제공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석구, 이남순, 양윤재 이외에도 건설업의 생리를 잘 아는 박혁규(경기도 광주) 한나라당 의원은 LK건설로부터 광주시 오포읍 일대에 아파트를 짓게해달라는 로비를 받고 8억원을 받아 지난 1월 구속됐다. 박 의원에게 로비자금을 건네 구속된 LK건설 권아무개씨는 이외에도 6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재판과정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구조 개선하지 않는 한 비리건설족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건설사업은 그야말로 비리종합전시장이다. 민간 공사나 관급공사 모두 마찬가지다. 원청자-하청-재하청 등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과정에서 공사비가 부풀려지고, 사업권을 따기 위한 뇌물 로비가 일상화돼 있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 김헌동 본부장은 "아파트의 경우 원가를 공개하고 관급 공사는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해야 하는데, 참여정부의 이 공약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건설업계 비리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면서 "분양원가공개, 최저가 낙찰제 도입을 통해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비리 건설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동 본부장은 "청개천 복원, 서울 뉴타운, 판교 신도시, 행정도시 건설, 현재 논란이 되는 행담도 개발 등은 모두 엄청난 건설 이권이 걸려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잡음이 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