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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자본유치 협약 등 문제가 불거진 한국도로공사의 행담도 개발사업 현장.
불리한 자본유치 협약 등 문제가 불거진 한국도로공사의 행담도 개발사업 현장. ⓒ 연합뉴스 정윤덕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정태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전 동북아위 비서관)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청와대는 어제까지만 해도 "문정인 위원장이 김우식 비서실장에게 사의를 표명했으나 사표 수리여부는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온 뒤에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감사기간을 연장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청와대는 하루만에 입장을 180도 바꾸어 문 위원장뿐만 아니라 정태인 비서관의 사표까지 수리했다. 이렇게 하루만에 입장이 바뀐 배경은 뭘까.

하루만에 뒤바꾼 "사표 수리"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그 사유를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전이지만 자체적으로 문제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민정수석실에서 그동안 언론에서 지적한 사안들을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문제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정수석실에서는 감사원과는 별도로 자체적으로 문정인 위원장 등 관련자들의 직권남용이나 부적절한 업무 개입 혐의 등에 대해 조사를 해왔다. 그러나 청와대가 자체적으로 확인했다는 문제점이 어제오늘 사이에 갑자기 불거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한 '읍참마속'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자체적으로 확인한 문제점 네 가지를 예로 들었다.

첫째, 동북아위원회가 서남해안 개발사업의 외자유치 업무를 추진하면서 행담도 개발사업을 '파일럿 프로젝트'(선도사업)로 잘못 인식해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둘째, 동북아위가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특정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한 '특정인'은 김재복 행담도개발㈜ 대표를 가리킨다.

셋째, 정책 집행기구가 아닌 '자문기구'가 직접 특정기업과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채권발행 과정에서 지원의향서(추천서)를 발급해 특정기업을 지원한 점이다. 동북아위의 정식 명칭은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로 위원장은 무보수 자문직이다.

넷째, 관련자들의 일부 처신이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문정인 위원장의 아들이 해당기업에 취업하고, 정태인 비서관이 건교부차관에게 공문을 보낸 것이 그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서도 핵심은 첫번째 예로 든, 동북아위원회가 서남해안 개발사업의 외자유치 업무를 추진하면서 행담도 개발사업을 '파일럿 프로젝트'로 잘못 인식해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즉 동북아위가 처음부터 '판단 착오'를 해 첫 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문정인과 정태인의 해명

27일 사표가 수리된 문정인 동북아시대위 위원장
27일 사표가 수리된 문정인 동북아시대위 위원장 ⓒ 연합뉴스 한상균
청와대가 행담도 개발 의혹에 대해 처음 해명에 나선 것은 24일부터이다. 이날 기자 간담회를 자청한 문정인 위원장은 기자들이 "행담도 개발이 서남해안 개발과 어떻게 연계되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서남해안 개발사업(일명 S프로젝트)이 동북아위로 넘어오기 전 S프로젝트를 위해 외국인 투자가 필요하고 제일 좋은 투자자는 싱가포르라는 판단이 선 것으로 알고 있다. S프로젝트가 동북아위로 이관되면서 행담도개발㈜ 사장인 김재복씨에게 많은 자문을 받았다. 당시 주한 싱가포르 대사와 김씨를 함께 만났는데 '행담도 개발이 잘되면 서남해안 개발과 관련한 투자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수차례 들어 연관이 됐다."

요컨대, 다소 애매하긴 하지만 서남해안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유치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가 싱가포르 자본이 참여하는 'S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싱가포르투자청을 사실상 대리한 김재복 행담도개발㈜ 대표와 자연스레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해명이 잘 안되자 그 다음날에는 실무책임자였던 정태인 비서관이 나서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정 비서관은 올해 1월까지 동북아시대위원회 기조실장으로 이 업무를 관장하다가 국민경제자문위 사무차장으로 재직중이다.

정 비서관은 25일 청와대 기자실에 들러 "제가 이 사업의 '팩트'에 관한 한 가장 많이 안다"면서 "조금 전에 김만수 대변인이 내게 '아는 대로 다 얘기하라'고 그러던데 아는 것을 다 말하겠으니 그에 대한 책임은 대변인이 져야 한다"고 호기 있게 간담회를 시작했다. 마치 수렁에 빠진 이 사업 설명회의 '구원투수'로 나선 느낌을 주었다.

우선 정 비서관은 "국가균형위원회가 처음 관장한 이 사업이 외자유치가 관건이 됨에 따라 동북아시대위원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서남해안 개발투자에 관심 가진 외국 자본 가운데 싱가포르 자본이 적격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왜냐면 난개발을 우려해 대규모로 투자할 '앵커' 투자자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김재복 사장과 싱가포르 전력청이 연결되었다"고 설명했다.

정 비서관은 이어 "동북아위가 지난해 처음 서남해안 개발사업 외자유치를 맡아 컨셉 회의를 할 때부터 행담도 개발은 서남해안 개발사업의 '파일럿 프로젝트'라는 개념을 명확히 했다"면서 "동북아위가 행담도개발㈜과 체결한 MOU에도 적시되어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정 비서관은 또 "사업의 핵심내용을 양측 정부에 설명할 컨셉 페이퍼(개념 보고서)를 만들어 대통령께도 보고했다"면서 "지난해 11월 ASEAN+3 정상회담 당시 한·싱 정상회담에서 서남해안 개발을 포함한 양국간 전략적 협력에 대해 논의한 것을 계기로 급진전되어 마스터플랜은 CPG(싱가포르 도시 자체를 설계한 회사)에서 짜기로 해 최근 초안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 비서관은 "현재 총리실에서 서남해안 개발사업 전체를 관장하는데 이 프로젝트가 타당하다고 판단이 들면 언론에 공개할 것"이라며 "여러 분이 나중에 보시면 알겠지만 아주 정교한 마스터플랜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정인 위원장도 26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기자들에게 배포한 글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S프로젝트는 참여정부가 중장기적으로 구상하고 추진하려는 서남해안 개발사업 구상 중의 하나이며, 동남아의 허브인 싱가포르와 동북아의 허브를 지향하는 한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려는 프로젝트로서 역사적 의미가 큰 사업이다"면서 "이 사업은 정치적인 사업도 아니고, 비리나 불법이 관련된 사업도 아니고, 권력형 비리는 더더욱 아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동북아위가 행담도 개발사업을 '파일럿 프로젝트'로 잘못 인식"

정태인 국민경제비서관이 25일 청와대에서 도로공사의 서남해안권 개발과 행담도 개발 등에 대해 설명하던 도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고 있다.
정태인 국민경제비서관이 25일 청와대에서 도로공사의 서남해안권 개발과 행담도 개발 등에 대해 설명하던 도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백승렬
그러나 김만수 대변인은 27일 브리핑에서 "일부 언론이 이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규정했는데 행담도 개발사업은 S프로젝트의 '파일럿 프로젝트'로 볼 수 없다"면서 "동북아위가 행담도 개발사업을 '파일럿 프로젝트'로 규정한 것은 판단을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또 "S프로젝트와 별도로 서남해안 개발사업은 총리실 주관하에 문광부와 전남도가 추진하고 있다"면서 "S프로젝트를 행담도 개발사업과 연결시켜 추진한 것은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거듭 판단 착오를 지적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도 밝혔듯이, S 프로젝트는 이미 지난해 11월 한·싱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한국의 서남해안 개발(동북아위의 S프로젝트)에 싱가포르 정부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공식 요청한 사업이다. 또 그후 양국 정상 간에 관련 '친서'가 오갈 만큼 '중대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졸지에 하루아침에 '미운 오리새끼'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고 이 중대한 사업을 추진한 문정인 위원장은 미국 정치학회 부회장을 맡을 만큼 국제 정치학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중견 국제정치학자이고, 정태인 비서관은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이 정부에 참여해온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소장파 경제학자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자체적으로 확인한 이 사업 추진의 문제점에 따르면, 도무지 뭣도 모르고 이 사업을 추진한 이들은 졸지에 '바보'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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