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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초등학교 졸업 사진. 어느 덧 20여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사진을 보노라니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1984년 초등학교 졸업 사진. 어느 덧 20여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사진을 보노라니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 최육상
얼마 전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 친구들을 만나니 20여년의 시간을 훌쩍 건너 뛰어 이야기꽃이 활짝 핍니다.

"6학년 때 선릉으로 소풍갔을 때 수건돌리기 한 거 기억하냐? 정환이가 유독 네 옆에다만 수건을 놓고 옆에 앉으려고 했잖아."
"야, 성심아. 넌 그 때 학급축제 공약하고 춤추는 걸로 반장됐잖아. 기억해? 지금 생각하면 '사건'이었는데, 어떻게 춤 출 생각을 했냐?"
"넌 OB 응원했고, 난 해태 응원했었지. 소풍사진 보면 다들 야구 점퍼 하나씩 입고 있었잖아."
"종수야, 네가 '얼레리 꼴레리' 좋아하던 수정이는 요즘 뭐 하는지 아냐?"

소풍, 반장선거, 야구, 누가 누구를 좋아했었다는 추억이 바삐 오고 갑니다. 다들 한 추억씩 합니다. 소풍을 갔던 '왕릉'이 누구의 것인가는 관심 밖의 일입니다. 그저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무시하는 재미로 잔디를 마구 뛰어다닌 기억만 있습니다.

야구방망이하고 글러브를 하나씩 갖고 학교 앞산에 오르던 기억이 있습니다. 반장 선거가 부풀려진 공약과 환심사기로 얼룩(?)졌다는 기억이 웃음거리로 떠오릅니다. 가슴 설레던 풋사랑에 대한 아스라한 추억이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학원과 공부에 얽힌 이야기는 없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업무 때문에 대학로를 지나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어느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라면에 김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들어옵니다. 초등학생 2-3학년 정도로 보이는 7명의 아이들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천원 자리를 하나씩 꺼냅니다.

"떡볶이 먹자", "순대도 먹자", "오뎅은?", "튀김은?", "김밥도!", 메뉴를 정하는데 한참이 걸립니다. 결국 결전의 순간, 가위바위보가 동원됩니다. "난 공짜다." 돈 안내고 먹는 것이 큰 행운이라도 되는 듯 두 명이 무척 좋아합니다. 그렇게 정한 메뉴는 떡볶이와 순대 5천원 어치.

주문 받은 아주머니는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짓습니다. 손자 같은 아이들에게 접시 가득 먹을거리를 내 옵니다.

유쾌합니다. 왠지 모르게 이 아이들에게 자꾸 눈길이 갑니다. 서로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아옹다옹 다투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옥신각신하는 유치함이 즐겁습니다. 창문 밖으론 촉촉한 빗줄기가 흩날리고 있습니다.

빗줄기를 보니 밤늦도록 비를 맞으며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 땐 배고픈 줄도 모르고 운동장을 뛰어 다녔습니다. 갈증이 나면 수돗물에 입을 맞추고 거푸거푸 아무 걱정 없이 들이켰습니다. 노는 것을 마친 후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학교 앞 가게로 쪼르륵 달려갑니다. 잔돈들을 모아서 '쫀득이', '똘이장군', '라면땅' 등 불량식품을 사 먹고선 좋아라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생일잔치는 친구들을 집에 불러서 하고는 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라도 있을라치면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내 생일인데 우리 집으로 와라. 함께 놀자"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 뱉습니다. 그러고서는 '그 아이가 올까' 걱정을 합니다. 거꾸로 좋아하는 아이의 생일에 초대라도 받지 못하면 어쩌나 심각하게 가슴 졸이던 기억도 있습니다.

어렴풋하지만 즐겁게 뛰놀던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려 준 7명의 아이들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참을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군것질을 하고 나서 창경궁에 간답니다. 비가 오는데도 자연을 벗 삼아 놀 모양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쉴 겨를이 없습니다. 각종 학원에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기 바쁩니다. 늦은 밤에는 컴퓨터 앞에서 게임 하느라 손발도 바쁩니다. 친구들은 학원별로 나눠지고 성적에 따라 엇갈립니다. 어른들보다 더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아이들의 생활인 듯합니다.

아이들은 햄버거, 피자, 콜라 등 인스턴트식품에 익숙합니다. 생일잔치도 대부분 이것들을 파는 곳에서 합니다. 주인공의 호주머니에 몇 만원쯤은 기본입니다.

동심(童心). 동심이 그립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온종일 '혼자서' 공부하랴, 게임하랴 녹초가 됩니다. 아이들에게 학원과 컴퓨터가 아니라 자연을 벗삼고 흙에서 뛰놀게 할 수는 없을까요?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 여럿이서 뒤엉키며 엎어지고 깨지는 환경을 되돌려 줄 수는 없을까요?

제게 아이가 생기면 전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 가더라도 제 아이는 자연 속에서 숨쉬고 운동장에서 저녁 늦도록 공차고 그렇게 컸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몇 가지 지식을 얻는 것보다 감성을 풍부하게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풍부한 감성을 바탕으로 인생을 즐겁게, 여유롭게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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