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일요일(29일), 전날 모임으로 피곤해서 늑장을 부리다가 12시쯤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뵈러 가자’며 가족들에게 통지를 합니다. 이종사촌과 컴퓨터게임을 하는 아들은 그냥 두고 가려는데, 제 누나가 ‘같이 가자’며 아들의 팔을 끕니다.

“나는 할머니한테 안 가면 안돼요?”
“왜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차갑게 아들을 쏘아 봅니다. 그런데 아들은 '누나 때문에 가게 되었다'며 제 누나를 원망하더니, 끝내 볼멘소리를 쏟아냅니다.

“시골에는 컴퓨터도 없고 같이 놀 친구도 없잖아요.”

나는 참을 수가 없어 버럭 고함을 지릅니다.

“야, 이놈아! 5학년이나 된 놈이 어떻게 그렇게 생각 없이 말할 수 있느냐! 할머니가 안 계셨으면 네 놈이 태어 날 수나 있었겠느냐? 네 놈이 어른이 되고 우리가 병들면 그 때 너는 모른 척 하려느냐?”

나는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아들은 '순간적으로 잘못 생각했다'며 용서를 구합니다. 나는 볼이 퉁퉁 부은 채로 5일장인 상남시장 (창원 상남동에서 현재 위치인 창원시외버스터미널 뒤편으로 옮겼음)을 찾았습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상인들로 제법 난장판이 벌어져 있습니다.

아내는 부지런히 시장을 돕니다. 명태, 고등어, 꽈리고추, 콩나물, 가지, 오이, 감자, 오징어포, 어묵, 계란 등 아내가 시장을 본 품목이 워낙 많아 나는 일일이 기억도 못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튀밥도 하나 주워 듭니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를 부릅니다. 오늘은 다행히 마을회관에 가시지 않고, 집에 계십니다. 집 마당에서 본 서녘하늘은 서러운 핏빛인데, 온통 전선으로 석양을 묶어 놓았습니다.

▲ 집마당에서 본 석양
ⓒ 한성수

“아이고, 내 새끼들!”

어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맨발로 나와 아이들을 감싸 안고 볼을 부빕니다. 아들은 이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아마 제 놈이 오면서 한 말을 되새김질 하고 있겠지요. 어머니는 귓등이 갈라진 아들의 상처에 삼베옷을 긁어서 붙입니다. 오금에 난 아토피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혀를 끌끌 차십니다.

어머니는 마루에서 서둘러 콩나물을 다듬습니다. 어머니 머리칼을 닮은 새하얀 콩나물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손자들에게 입에 맞는 반찬을 먹이겠다는 어머니의 마음이겠지요.

▲ 관절염으로 불편한 다리를 뻗고 콩나물을 다듬는 어머니
ⓒ 한성수

나는 아들과 함께 마당에 내려섭니다. 마당에는 어머니의 지팡이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어머니! 못 보던 지팡인데 어디서 났어요?”
“응, 너희 작은 형님이 요번에 여행가서 지팡이를 사 왔는데, '부모에게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네 이모에게 주었단다. 그래서 네 이모가 짚던 지팡이를 가져온 거란다.”

나는 어머니의 불편함을 보조하는 저 지팡이보다 못한 아들은 아닐는지요.

“막내야! 카메라 가지고 다른 사진 찍지 말고, 내 만 리 갈 때 쓸 사진 하나만 찍어라. 저번에 찍어서 액자에 넣어놓은 사진은 한복을 입지 않아서 좀 그렇다.”

어머니는 서둘러 한복을 꺼내어 입습니다.

“어머니, 다음에 시내 나가서 찍읍시다. 카메라도 좋지 않고, 지금은 어머니의 얼굴이 붉게 나오는데 화장도 하셔야겠습니다.”
“괜찮다. 한복만 입고 찍으면 된다.”

어머니는 풀썩 마당에 주저앉습니다. 나는 사진을 찍는 시늉만 합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사진을 이렇게 찍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한밤중에 나는 아들의 일기를 보고 있습니다. 제목은 ‘반성문’입니다.
"오늘 할머니 댁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무척 혼났다. 내가 커서 아이를 낳아서 내 아이가 나를 만나지 않으려고 하면 나도 아버지처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들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더 아프고 죄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한 것처럼 아들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습니다.

겨우 보름에 한번 어머니를 찾으면서 반찬 몇 사가는 것으로, 매일아침 받지도 않는 전화 한통으로 효도를 다했다고 스스로 우기는 이 못난 아비의 서러운 초상을 잠든 아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늙어 꼬부라진 그 어느 날, 나는 찾지 않는 아이들에게 어머니와 달리 서운해서 펄쩍펄쩍 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하던가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