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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전 10시에 열린 고 김영갑 사진작가 영결식
31일 오전 10시에 열린 고 김영갑 사진작가 영결식 ⓒ 양김진웅

당신의 영결식에 다녀왔습니다.

시한부 삶임을 알면서도 버려진 폐교를 '옥석'으로 바꾸는 일을 하루도 쉬지 않았던 당신의 분신 '두모악 갤러리'에서였지요.

5월의 끝자락. 이 날은 마치 시샘이라도 하듯 때 아닌 땡볕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31일 오전 10시 '성산포' 시인 이생진님의 추모시, 오름이야기로 잘 알려진 오름오름회장 김창집님의 추모사에 이어 오랜 벗이었던 '향수' 이동원님이 '부용산'을 부르며 당신의 넋을 달랬지요.

양지공원에서 화장을 한 후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용눈이오름을 거닐다, 두모악 갤러리가 바라다 보이는 팽나무 아래에 당신의 유해를 묻었습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도 영결식 내내 곳곳에서 많은 벗들의 흐느낌이 들리더군요.

여섯 살 난 둘째와 식장을 찾았던 저는 눈부신 햇살을 오래 맞은 탓이었는지 피곤함에 뒤척이다 다시 뒤늦게 책상에 앉았습니다.

위로부터 고인이 마지막으로 지나간 꽃길. 갤러리 정원. 그가 즐겨찾던 사무실.
위로부터 고인이 마지막으로 지나간 꽃길. 갤러리 정원. 그가 즐겨찾던 사무실. ⓒ 양김진웅

한낱 수사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당신에 대한 모종의 빚이 무척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실 거나하게 술 한 잔을 나눠본 것도 아닌데… 몇 년 전 당신과 나는 몇 차례 취재차 만난 인연으로 갤러리를 찾을 때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게 고작이었지요.

이미 당신의 기력이 쇠한 뒤라 만날 때마다 오래 붙잡고 싶어도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은 자유스럽지 못한 몸으로 손수 운전을 하시며 뱃속 막내(이름은 지구라고 지었습니다)까지 품은 아내를 데리고 저희 다섯 가족에게 저녁을 대접한다고 이리저리 밤길을 헤매었지요.

그리고 어렵게 찾은 식당을 찾고는 제법 유명하다며 제주산 똥돼지 오겹살을 주문하며 당신은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더욱 우리 가족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건 "찌개를 해먹으면 맛있을 것"이라며 한사코 거절하던 저희 부부에게 신문지에 둘둘 말린 고기를 쥐어준 것이었지요.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참 많이 망설였습니다.

올해 초쯤이던가요. 문화기행 탐방차 방문객들과 갤러리를 찾았지만 무척 기운 없어 하는 모습을 보고 일부러 당신을 피했습니다. 한마디 인사를 건네지 못했던 게 몹시 가슴에 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빚으로 남았던 건, 그리고 정작 가슴이 아팠던 건, 당신이 남기고 간 무한한 제주사랑에 대한 오늘날 제주의 모습입니다.

보듬고 다듬고 지켜가야 할 제주의 자연과 풍광, 그리고 그 속에 알곡으로 채워진 삶의 이야기들이 점점 퇴색되어가는 듯한 우리들의 자화상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이 사무실 벽에 걸려 있다.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이 사무실 벽에 걸려 있다. ⓒ 양김진웅

당신을 대하는 모든 이에게 그런 마음씀을 베풀었는지는 아직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영혼을 담은 모든 사진은 아직도 남아있는 자들에게 무한한 가슴 떨림을 전해주곤 합니다.

유일한 유산으로 남겨졌지만 자신의 몸보다 아꼈던 필름들을 아껴줄 사람이 없다며 생전에 모두 불살라 버리겠다던 당신.

'살아 있을 때도 대접을 못 받은 필름인데, 죽어서 쓰레기 취급을 받을 바에야 차라리 모든 필름을 태워버릴까'라는 생각도 했었다지요.

하지만 그 바람도 결국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어설프게 남겨놓은 두모악 홈페이지(www.dumoak.co.kr)에는 이 시간에도 추모객이 잇따르고 있더군요.

이날 영결식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속울음의 지인들 또한 이미 당신의 사람이더이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합니다.

부디 잘 가소서.

갤러리 창문 위에 걸려있는 그의 글.
갤러리 창문 위에 걸려있는 그의 글. ⓒ 양김진웅

'우리가 항상 유토피아의 삶을 꿈꾸듯 제주인들은 수 천 년 동안 상상 속의 섬 이어도를 꿈꾸어왔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발전한다 하더라도 나(제주)다움을 지키지 못한다면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문다. 제주인들처럼 먼저 행동으로 실천할 때 이어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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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갑씨의 방에 걸린 고인의 얼굴.
주인이 떠난 김영갑 갤러리는 어떻게 될까.

두모악 갤러리가 위치한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 옛 삼달초등학교의 총 면적은 대략 4000여평. 그 중 2000여평에 300평의 전시공간(교실)과 함께 정원을 제주색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물론 제주도교육청으로부터 유상 임대한 곳이다.

현재 김영갑씨의 가족들이 있지만 현재 갤러리 운영방향에 대해 의견이 모아진 것은 없다. 하지만 최근 김영갑을 사랑하고 후원했던 지인들과 유족들이 모여 '(가칭)김영갑 추모재단'을 만들고 갤러리 보존 운동에 적극 나서기로 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최근 소위원회를 구성, 오는 3일 첫 회의를 통해 후원 법인체 설립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유족들 역시 법인체가 꾸려질 경우 유족 1명이 이사로 참여하고 작품과 지적재산권 등을 단체에 양도하는 방안 등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김영갑을 아끼는 지인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김영갑 갤러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난해 11월 순수 후원 행사를 벌일 정도로 갤러리에 대한 애정이 지대하다.

31일 영결식에 참석한 대부분 지인들은 "'두모악 갤러리를 더도 덜도 말고 지금의 이 모습대로 꾸려가야 한다"는데 입장을 같이 했다.

고인과 가깝게 지냈던 음악인 이상철씨는 "고인의 숨결이 담긴 이 곳을 제대로 운영하는게 남아있는 이들에게 던져진 과제"라며 "조만간 유족들이 참여한 가운데 뜻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후 운영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양김진웅

덧붙이는 글 | 루게릭 병으로 세상을 뜬 영혼의 사진작가 고 김영갑씨가 만든 두모악 갤러리 홈페이지 추모게시판(www.dumoak.co.kr)에는 돌아가신 이후 현재까지 무려 550여명의 추모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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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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