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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신문협회(WAN) 행사에서 나왔다는 한국 언론에 대한 말들은 무지하거나 아니면 한국의 시민사회를 무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5월31일자 한국의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은 그 행사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온갖 것을 다 써대면서 아전인수적인 실체를 드러냈다. 1면 머리기사에다 중요한 해설면 한 개 전체를 다 털어 그 단체의 행사 내용을 보도했고, 사설까지 맨 위에다 게재한 신문도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의 신문법은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악법이라는 얘기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가침의 성역인데 이것을 제한하려 든다고 비판하는 연설과 토론이 이어졌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언론 개혁을 추진해 온 한국의 많은 언론인과 시민단체, 인권변호사, 학자, 정치인들은 일거에 반민주행위자가 될 판이다.

대표적으로 신문법에 대한 비판을 주도한 사람은 협회의 게빈 오렐리 회장대행이었다. 그는 한국의 보수신문들에 의해 영웅이 됐다. 언론 자유의 수호자로 떠올랐다.

사투하는 소년가장에 던지는 부잣집 아이의 한마디

그러나 보수신문들의 보도를 떠나 오렐리 대행의 연설문 원문을 보면 그 근거 없고 무책임한 주장에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마치 생존을 위해 사투하는 소년가장에게 철없는 부잣집 자식이 던지는 비아냥거림이라고나 비유할 수 있을지….

그들에게 한국 국민의 피땀 어린 민주화 역정과 그것과는 다른 세계에 살아 온 보수 언론의 배반을 과연 알려 줄 수 있을 것인지 참으로 암담하다. 굳이 알리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다만 모르면 말이나 말아야 할 텐데 헛소리들을 늘어놓으니 문제다.

오렐리 대행을 비롯해 그들이 말하는 신문법에 대한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한국의 구체적 상황에 걸맞지 않는 추상론에 불과하다. 첫째, 그들은 총론적으로 이 법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그 힘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그들이 말한 이른바 보편성에 해당하는 언론 발전사를 무시하고 있어서 자가당착이다.

한국의 언론자유는 120% 넘치고 있다. 그러나 그 누리는 자유에 상응한 사회적 책임은 턱없이 엉터리다. 이는 한국의 시민사회와 전문가단체들이 거의 모두 동의하는 문제점이다. 언론의 자유가 충분히 얻어진 뒤에는 그 책임과 윤리 문제가 법제화되는 것이 어느 나라에서건 보편적인 발전사다.

일찍이 1947년 발표된 미국의 허친스 위원회 보고서도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을 제목으로 채택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17세기식 무작정한 언론 자유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함께 져야 하는 것이 21세기형 선진 언론이다.

둘째, 그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신문의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민주주의 세계의 보편적 현상과 맞지 않다는 비판이다. 이 비판을 인용하면서 보수 신문들은 시장점유율에서 '1개 신문이 30%, 3개 신문이 60%'를 넘으면 규제하는 신문법 조항을 위헌적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독일 귄터위원회, 시장점유 20% 넘으면 남의 자유 위협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운 오렐리 대행은 한국의 거대 회원신문사들의 수구적 입장에 속지 말아야 한다. 보수 신문들의 반민주적 내부구조와 시장 독과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말하기 바란다. 언론 자유의 진의를 이해하려거든 언론사상사를 더 공부해야 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말하려면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더 살피기 바란다.

예컨대 독일의 귄터위원회는 1968년 보고서에서 한 신문의 시장 점유율이 20% 이상이면 남의 언론자유를 위협한다고 보았다. 그것이 25%를 넘어서면 이미 남의 언론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언론 자유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며 남의 언론 자유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보장되는 상대적 자유라는 의미다. 그런 민주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 시장점유율 제한이다.

셋째, 그들은 신문법이 발행인과 편집인의 자율권에 간섭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보수신문들은 법 조항이 편집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권고한 것이 그런 간섭이라고 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뿐 아니라 그 사회적 책임과 다양성의 가치는 편집권의 독립 없이는 얻어질 수 없다. 그리고 직업언론인이 사주와 경영진으로부터 내적 자유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편집권 독립은 불가능하다. 그 최소한의 장치가 편집위원회이다.

군사독재 때도 한국언론 자유롭다고 한 글로벌 스탠더드인가

신문법은 편집위원회 운용을 법적으로 강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신문사에 대해서는 신문발전기금을 우선 지원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적 강제와 정책적 장려도 구분하지 못해서야 토론 상대가 될 수 없다.

▲ 김재홍 의원
ⓒ 권우성
이번 세계신문협회 행사는 많은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 공식예산만 8억원, 공공기금 등에서 수억원의 돈을 지원해서 이루어졌다. 세계 언론인들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그들에게 왜 눈을 흘기는지 알아야 한다. 국제언론인협회(IPI) 같은 단체가 한국 언론이 군사독재 아래서 신음할 때도 '언론자유국가'로 공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글로벌 스탠더드라면 탄압받던 한국의 언론인들을 더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심각한 범죄행위였다. 과연 국제 언론계가 존재한다면 그런 단체의 과거 비행에 대해 사과하고 한국의 언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한국 언론은 엉터리 국제단체의 피해자다. 그래서 자국의 시민운동에 의해 개혁되고 다시 태어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김재홍 기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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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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