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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서리태, 쥐눈이콩, 메주콩, 콩나물콩 입니다.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서리태, 쥐눈이콩, 메주콩, 콩나물콩 입니다. ⓒ 전희식
이틀이나 앞당겨 비가 온 덕분에 똥줄이 타게 바빴다. 제일 먼저 서리태 콩밭부터 매야 했다. 심은 지 보름 남짓 되는 서리태가 쪽 잘 났는데 잡풀도 뒤질 새라 파랗게 돋아나 콩 새싹의 키를 따라잡기라도 할 듯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비를 맞히면 일이 열 배는 불어나 버릴 게 뻔하다. 저 놈의 잡초를 손으로 뽑나 괭이로 긁나 한참을 노려보았다. 준비해 둔 쥐눈이콩(서목태)도 비 오기 전에 심어야 했다. 콩밭에 가자니 감자밭이 내 발목을 잡았다.

두벌 북주기까지 잘 해서 대풍이 예감되는 감자밭 마지막 풀매기도 해야 한다. 황토담장을 쌓느라 벌여 논 어수선한 앞마당 작업 터는 별 수 없이 괭이, 물통, 짚 쓰는 작두, 체 등 연장들을 하나하나 챙겨 들이고 비닐로 덮었다.

어제는 몇 번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수동식 파종기를 큰 맘 먹고 샀다. 비가 오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시내 종묘상에서 4만 7천원이란 가격표가 부담스러워 돌아서곤 했었는데 카드로 긁었다. 오로지 날씨 때문이다. 단축된 이틀간의 노동시간을 파종기에 맡기기로 했다.

파종기 배출구 구멍 조절을 하고 간격도 한 간씩 건너뛰게 하고는 콩을 넣고 엄명을 내렸다. 절대 다투지 말고 차례대로 두 알씩만 나오라고 다짐을 놓았다. 쥐눈이 콩들이 눈깔만 깜박대면서 고분고분 파종기 통 속으로 들어갔다.

먼저 심은 서리태
먼저 심은 서리태 ⓒ 전희식
이놈들이 난생 처음 들어가 보는 파종기 속이 답답했나? 콩알이 이리 구르고 저리 튀고 야단이었다. 떼구르르 굴러서 옆 골에 처박혀 시치미 딱 떼고 돌아앉아 있기도 했다.

못줄 잡듯이 줄을 쳐 놓고 파종기를 살살 굴려갔는데 어떤 놈은 흙이 반쯤 덮이다 말고 어떤 놈들은 대여섯 개나 나와서 와글거렸다. 파종기 굴리는 속도도 바꿔보고 중심도 다시 잡아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둠이 밀려오자 콩들이 더 용감하게 굴었다.

파종기를 과감하게 팽개치고 손을 믿기로 했다. 쪼그려 앉아 오리걸음으로 콩을 심었다. 시간의 속도도 제 마음대로였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도 제 맘대로 어두워져 버렸다. 어디가 골이고 어디가 두둑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어두워졌다.

굵은 빗줄기가 한번 후드득 훑고 지나갔다. 손보다도 마음이 더 더듬거렸다. 밀려온 어둠은 콩 심을 골이 몇 개 남았는지도 다 덮어버렸다.

남은 것은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야 했다. 어둠이 고단한 노동을 멈추게 했다. 지지난주에도 비슷했다. 주간일기예보보다 이틀 먼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루 전에야 알고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법석을 떨었다. 덕분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날씨야 너 왜 그러니? 자꾸 그러면 가만 안 둔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주간일기예보를 매일 매일 갈무리해서 네 이마빡에 침 발라 붙일지도 모르니 변덕 좀 그만 부리 거라! 잉?

덧붙이는 글 | 콩 이름이 참 다양합니다.
서리태는 생장기간이 길어 제일 먼저 파종하고 제일 늦게 수확합니다. 첫 서리를 맞아야 된다고 하여 서리태라고 한답니다.
귀농 초기에 그것도 모르고 다른콩이랑 함께 심었다가 길게 줄기만 자라고 쭉정이만 거뒀습니다.

아래 사진은 6월 1일 찍었습니다. 보름여 먼저 심었던 서리태가 새싹이 난 모습입니다.

쥐눈이콩은 생김새가 쥐 눈깔 같습니다. 서목태(鼠目太)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요즘 이게 굉장히 인깁니다. 약콩이라고도 부르죠. 요즘 인기 좋다하면 저는 무조건 성인병 예방에 좋다, 체지방을 감소시킨다, 콜레스트롤이 어떻다 등으로 대충 이해 하는데 약콩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좋은지는 잘 모릅니다.

메주콩은 제일 많이 보는 노란콩입니다. 

(이 글은 <농어민신문> 6월 첫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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