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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서 ‘단속’하면 떠오르는 것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의무경찰로 경찰서 교통계에서 근무하면서 겪었던 음주단속에 관한 에피소드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곳은 조그만 읍내 경찰서라 교통사고조사계 내근업무와 교통지도계 외근업무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주간 업무를 마치고 달콤한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에 나가야 하는 음주단속은 날씨와 상관없이 괴로운 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2년간 음주단속을 하며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가슴 따뜻한 재미와 감동을 느꼈답니다.

음주 단속을 하면서 가장 곤욕스러운 것은 운전자들의 심한 입냄새입니다. 요즘이야 음주 측정을 위한 센서기로 단속을 하지만 제가 복무할 때만 하더라도 단속 장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종이컵에 운전자의 입김을 담아서 냄새를 맡은 후 음주 유무를 가리는 아날로그 방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물론 술 냄새가 나면 운전자를 검문소로 모셔와 제대로 된 음주 측정을 하게 됩니다.

음주 단속을 나갈 때마다 꼭 한두 명씩은 구토가 일어날 만큼 심한 구취가 나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의 입냄새를 맡고 나면 한동안 정신이 나간 듯이 멍한 상태로 음주단속을 했던 안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금은 웃기고 황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참을 열심히 음주단속을 하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단속을 기다리고 있던 차량의 운전자가 갑자기 도로 뒤편에 있는 논으로 뛰어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단속 경찰관 두 명이 쫓아가서는 30분 정도의 실랑이 끝에 음주측정기 앞에 앉힐 수가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음주 측정을 피하기 위해 도망간 것으로 확신한 동료 경찰관들이 운전자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음주측정을 했는데 측정 수치가 0.049%(0.05% 이상 면허 정지 처분)가 나온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다시 한 번 측정을 하였으나 여전히 같은 수치가 나왔습니다. 이 운전자는 술을 조금밖에 마시지 않고도 지레 겁을 먹고는 줄행랑을 쳤던 것이지요. 그리고 10분 이상의 달음박질로 땀을 흘리고 20분 정도의 실랑이 시간을 거치는 동안 술이 조금 깼던 모양입니다.

지은 죄가 괴씸하여 어떻게든 처벌하려고 했던 경찰관들은 모두 어이없어 하며 애써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리고 "오늘 운 좋은 줄 알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술 마시고 운전하지 마세요"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고이 보내드렸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는 그 후로도 가끔씩 회식 자리에서 회자 되곤 했습니다.

음주단속을 하면서 재미있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병훈련소를 거쳐 경찰서에 배치 받은 후 첫 번째로 나간 음주단속 때 일입니다. 어떤 운전자 한 분이 단속에 걸려서 음주 측정을 했더니 0.15%의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치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음주 운전 위반 스티커를 작성하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이 술에 취한 모습으로 검문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알고 봤더니 좀 전에 면허취소를 당했던 분의 친형이라고 했습니다. 단속을 하고 있는 동안에 동생이 전화 연락을 취해서 형이 술을 마시고 있다가 급한 마음에 영업용 개인택시를 몰고 달려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어쨌든 그 분도 음주 운전을 했기 때문에 음주 측정을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공정한 법 집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날 단속을 나갔던 경찰관 중에서 최고 책임자가 긴 설득 끝에 음주 측정을 하기는 했는데 0.2%의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치가 나오자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검문소 밖으로 나가서 바닥에 깔려 있는 자갈에 머리를 처박으며 "택시를 몰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이럴 수 있느냐, 우리 가족은 이제 뭘 먹고 사느냐, 동생의 연락을 받고 도와주려 왔는데 그런 사정도 봐줄 수 없느냐"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누구 하나 말리거나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후에야 진정을 시키고 보호자를 불러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답니다.

이 일이 있고난 후 저는 경찰관의 업무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경찰관의 업무라는 것이 단순히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벌주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줄로만 생각했었는데 "법과 인정 사이에서 이렇게나 큰 고민과 고통을 가져올 수도 있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경찰관들을 존경하게 되었답니다.

'단속'이란 말은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때만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속은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 모두를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법과 질서를 준수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면 단속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感悟行 硏究所 = http://cyworld.nate.com/aircong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mail : aircong@freechal.com 

단속의 추억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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