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관행 개선, 비정규직 법안 관련 의견 표명…. 국가인권위가 최근 의견을 발표한 사안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이 같은 논란은 현안에 대한 인권적 시각보다 본질에서 벗어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에서 주요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한바탕 논란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인권'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돋아났다. 우리 사회가 친인권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이 논란이 통과의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국가인권위 결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모았다.


▲ 인권위는 2003년 3월 이라크전쟁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다.
ⓒ 사진 김윤섭
출범 3년 6개월을 맞는 동안 국가인권위가 낸 권고 또는 의견 표명은 우리 사회에서 크고 작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의 권한이 막강해지고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국가기관이 무책임하게 이상에 치우친 얘기를 해서 우리 사회를 마냥 시끄럽게 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수긍하는 것이나 부정하는 것이나 모두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런 법적 구속력 없는 국가인권위의 권고지만 그것이 나름의 '권위'를 갖게 됐다면, 그건 우리 사회 인권지수의 상승이고 도덕적 역량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또 '무책임하게' 현실을 무시하는 국가기관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설령 그랬다손치더라도 그것이야말로 국가인권위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국가인권위의 지난 3년 6개월간은 어쩌면 지난 수십 년간 국가기관을 통해서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얘기들을 쏟아낸 시간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고 국가인권위의 필요성에 대한 비판과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차분히 되돌아보면 국가인권위의 권고 하나 하나가 모두 결국 우리 사회 사람의 삶과 가치에 대해 성찰과 공론의 장을 마련하려 한 것들이었다.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마냥 편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음은 그동안 익숙하던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였기 때문이다. 우리 삶과 문화 속에 철옹성처럼 견고한 고정관념에 대한 거센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령 논란이 되더라도 그건 소모적인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전진할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전조등' 구실을 한 것이 아닐까. 지난 3년 6개월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국가인권위의 주요 권고 및 의견 표명을 되돌아보며 우리 사회에서 국가인권기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먼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결정으로 이라크전 반대 의견 표명, NEIS에 대한 의견 표명, 일기 검사 관행 개선,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의견 표명을 들 수 있다.

▲ 이라크전에 대한 의견 표명
2003년 3월 26일


"세계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비춰 이라크전을 반대한다."

국가인권위는 '대한민국은 국제 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명시된 헌법 제5조 제1항 등을 들어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국회에 대해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사안을 결정함에 있어 헌법에 명시된 반전·평화·인권의 원칙을 준수해 신중히 판단할 것을 밝힌 내용이었다.

국가인권위의 의견 표명이 정부와 국회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이 같은 의견 표명으로 "정부가 결정한 것을 같은 국가기관이 뒤집으려 한다"는 비난이 국가인권위에 쏟아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국가인권위 내·외부에서 국가인권위의 존재와 그 위상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 인권위는 2003년 5월 NEIS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다.
ⓒ 사진 김윤섭
▲ NEIS에 대한 의견 표명
2003년 5월 17일


초고속통신망을 통해 16개 시·도 교육청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집적 관리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NEIS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이 시스템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검토 결과, 학교에서 수집 작성된 개인정보를 NEIS에 집적하거나 다른 기관에 제공할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NEIS의 27개 개발 영역 중 사생활의 비밀 등 침해 소지가 있는 교무·학사, 입(진)학, 보건 영역은 입력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간과되기 쉬운 학생들의 정보인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으며 교육부는 이를 일부 수용했다.

▲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2004년 8월 24일


국가보안법은 그 시작과 운용과정에서 숱하게 인권침해 지적을 받아 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악법이다. 1948년 법 제정 당시부터 인권침해 소지로 논란을 빚었고 법 운용과정에서도 반민주성과 빈번한 인권침해 사례 때문에 위헌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유엔 인권기구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국제인권규약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여러 번 우리 정부에 그 개폐를 권고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가 폐지 권고를 하기까지는 1년 반의 연구와 숙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일부 조항의 개정만으로는 이러한 문제점과 인권침해 소지를 근절할 수 없다고 판단한 국가인권위는 '전면 폐지'를 국회의장과 법무부에 권고했다.

국가인권위는 국가보안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형법으로도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고 보았다. 또 현재의 국가보안법 관련 사범의 처리는 폐지 법률안에 경과규정을 둠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 그리고 많은 인권단체와 국제사회의 '사망 선고'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살아 있다.

▲ 인권위는 2004년 8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 사진 김윤섭

▲ 일기검사 관행 개선 의견 표명
2005년 4월 7일


초등학교의 일기 쓰기 교육을 개선하라는 국가인권위의 의견 표명은 아동인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국가인권위 의견의 취지가 잘못 알려져 "적극 권장해야 할 일기 쓰기를 못하게 한다"는 오해를 비롯해 많은 논란이 불거졌다.

국가인권위는 "삶의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나 생활의 반성을 통해 좋은 생활습관을 형성하도록 할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 아동기에 일기 쓰기를 습관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이를 강제적인 검사를 통해 습관화할 경우 일기가 사적 기록이라는 본래 의미에서 벗어나게 돼 "아동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의 의견 표명 후 거센 찬반 격론이 일어났으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의견 표명
2005년 4월 14일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정부 법안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보호의 목적에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고 동일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지불할 것을 원칙으로 명시하라는 의견을 냈다.

이 의견은 비정규직이 결코 고용의 일반 원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이들의 근로조건은 정규직과 근본적으로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의견은 그 의견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국가인권위의 '개입' 자체에 대한 비판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가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고용불안과 차별적인 근로조건 속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수백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가장 시급한 인권 문제일 수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의 의견은 국회에서 전개된 노사정 대화에 방향을 제시했지만 노·사 양측의 견해차가 너무 커 아직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5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