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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남자와 여자에 대한 확실한 구분 없이 자랐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우리 집에서는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남자인 내가 빗자루를 들고 방 청소를 하고 누나가 마당의 멍석을 치우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환경으로 인해 좋은 점도 있었지만 가끔씩은 누나와 치고받고 싸우는 일도 생기곤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탓에 나는 여자에게는 그에 맞는 말을 사용해야 하고 배려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여자도 남자와 같이 일하고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배려를 몰랐던 시기
이런 생각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초년병으로 회사에 취직을 했을 때까지도 변함없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안정된 직장을 잡고 배치된 부서에는 수백 명의 여사원들이 근무하는 곳이었지만 남자는 열 명도 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사회 경험이 전혀 없는 나와 함께 일하는 여사원만도 수십 명은 족히 되었다. 그런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누구도 여성과 일할 때의 주의사항 같은 것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자라면서 해 온 행동들을 그대로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어떤 여사원이 '오늘은 와이셔츠가 참 잘 어울립니다'라고 말을 걸어오면 '감사합니다. ○○씨의 머리도 달라졌군요'라고 대답을 하면 좋을 텐데 '아침부터 쓸데없는 말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라며 분위기를 깨 버리는 것이다.
나의 이런 말을 들은 상대는 며칠씩이나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상대의 기분도 모르고 남을 배려하지도 않으면서 생활을 하다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하는 곳의 분위기가 나빠지면서 실적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구타를 하다
그러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날 무슨 잘못을 저지른 여사원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툭툭 쳤는데 그 여사원이 구타를 당했다며 고향에서 부모님을 불러 온 것이었다. 누나와 싸울 때는 그보다 더 심하게도 싸웠지만 누나로부터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랬지만 시골에서 올라오신 여사원의 부모님을 뵈니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서 다른 변명 없이 진심으로 사과했다. 여사원의 부모님도 딸이 구타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험상 굳은 사람을 상상하며 올라왔는데, 큰절을 하며 사죄하는 나를 보고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하시며 돌아가셨다.
어쨌거나 그 이후로 나는 여성들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많은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것이 <저 물레에서 운명의 실이>란 책이었다. 이 책은 여성을 비판한 책으로 생각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여성을 이해하는 것에 방향을 맞추고 읽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여성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동안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한 행동이 여성들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내 주변에는 항상 그 책이 있고 요즘도 잠들기 전에 아무 페이지나 펴서 잠시 읽고 있다. 그동안 읽다 헤지면 다시 신판을 사서 읽었으니 아마 수십 번은 읽었을 것이다. 그 책에서 감명을 받은 문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여성은 덩굴이다. 덩굴은 무엇인가에 의존해야만 생명의 잎과 꽃을 피울 수 있다.
- 여성은 약한 것이 힘이다. 약하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다루는 것을 이용하여 오히려 강자의 힘을 꺾는 것이다.
- 그 동안 여성에게 가한 남성의 횡포는 어떤 궤변으로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성이 한 인간으로 독립하고 권한을 누리는 것이 남성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B-B 시스템
30년 이상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는 그 책은 한 때 <이것이 여성이다>라는 제목으로 바뀌기도 했으나 요즘 다시 원래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나는 내 인생의 전환점을 제공한 것이 그 책이었고 그 책 때문에 회사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영향으로 요즘은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격지 않도록 하기 위해 B-B시스템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운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빅 부라더 & 빅 시스터(Big brother & Big sister)의 줄임말인데 선배사원이 신입사원을 지도하는 것을 말한다. 즉 후배사원이 입사하면 선배들과 1:1의 의형제를 맺어 주고 선배는 후배에게 책에서 배울 수없는 경험을 전해주며 후배가 좌절을 격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