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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 권우성
“삼성이 잘한다고 하면서도, 왜 욕을 먹는지 이유를 알겠다.”


최근 삼성 사장단이 이른바 ‘삼성공화국’ 비판론에 대한 대책을 내놓은 것을 놓고 4대그룹의 한 고위 임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 말이다. 그가 꼬집은 대목은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한 이상 단 1%의 반대세력이 있더라도 포용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상생’과 ‘나눔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하자”고 다짐한 삼성 사장단의 발표 내용이다.

“달리 말하면 국민의 99%는 삼성을 좋아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극소수 1%만 비난한다는 말이 아닌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99%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선거에서도 50%를 얻기 힘든데…. 한마디로 오만의 극치다.”

삼성이 겉으로는 ‘삼성의 독주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허심탄회하게 듣겠다’고 표현했지만, 내심으로는 그런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진실성이 담기지 않은, 단지 여론 무마용 발표 아니냐는 것이다.

"반(反)기업정서=반(反)삼성정서"

실제 삼성 구조조정본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삼성을 헐뜯는 세력은 우리사회의 극소수라는 인식이 분명하다. 국민 대다수는 그렇지 않은데, 참여연대나 극소수 언론들이 반(反)삼성 분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삼성 말대로 현실이 그럴까? 삼성도 인정하듯 우리 국민들의 반 기업정서는 선진국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反)기업정서는 정확히 말하면 반(反)재벌정서라고 할 수 있다. 4대그룹의 한 임원은 “더 분명히 말하면 반(反)삼성 정서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며 “재벌들이 주로 무노조경영이나 세금없는 대물림 때문에 욕 먹는데, 실제로 가장 큰 책임은 삼성에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삼성의 발표에서 무노조경영과 세금없는 대물림에 대한 대책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좋은 기업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상생과 나눔 경영에 더욱 박차’ 등과 같은 말만 늘어놨을 뿐이다.

삼성을 스웨덴의 최대 재벌인 발렌베리와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국민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기업집단이 특정가문에 의해 지배되고, 소유와 경영권이 세습되는 행태가 외견상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간에 가장 큰 차이는 한국엔 ‘삼성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많지만, 스웨덴에는 ‘반 발렌베리 정서’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럼 왜 그런 차이가 있는가?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이 몇 달씩 스웨덴 현지에 머물며 발렌베리를 연구했으니 삼성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엔 ‘삼성공화국’ 우려 존재... 스웨덴엔 ‘반 발렌베리 정서’없다

발렌베리는 1938년 스웨덴 노사가 대타협을 할 때 막후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또 스웨덴 대학이나 연구소의 최대 출연자로도 유명하다. 발렌베리는 경영행태에서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거나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에서도 한국재벌과는 차이가 많다.

한국에서 재벌 2, 3세들의 병역기피는 흔한 일이지만, 발렌베리 가문의 남자들은 해군장교로 군복무를 하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왜 발렌베리에게 잘못된 점이 없고, 스웨덴 국민 중에 발렌베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처럼 ‘발렌베리공화국’이라는 우려는 없다는 점이다.

삼성은 항상 상생과 나눔 경영을 강조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이번 대책에서도 역시 포함돼있다. 삼성이 올해 사회공헌으로 지출하는 돈은 5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삼성은 오른손으로는 사회의 어둡고 그늘진 곳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면서도, 왼손으로는 강압적 무노조경영을 고수하고, 경영상 이유로 대규모 감원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연간 이익 100억달러 클럽 가입을 자랑했던 삼성전자가 최근 직원 300명이 다니는 자회사인 노비타를 한마디 사전협의 없이 전격 팔아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한 나눔과 상생의 경영철학은 한낱 가식이나 분칠로 비쳐질 수 있다.

삼성, 자회사 '노비타' 한마디 사전협의 없이 매각...상생은 어디로

걱정스런 것은 삼성이 최근 우리사회의 우려를 일과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실제 삼성 임원들을 만나면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같다. 하지만 이는 지극이 안이한 생각이다. 오히려 지금이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삼성의 뛰어난 경영실적 때문에 문제점들이 가려진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삼성의 놀라운 실적이 주춤하는 순간 더 큰 파도가 몰려올 수 있다. 하지만 ‘삼성에게 좋은 것이, 대한민국에 무조건 좋다’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다. 또 삼성이 잘못되면 대한민국에 좋을리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삼성이 잘되도록 관심이 가져야 한다. 삼성이 진정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이번 사장단회의에서 빼먹은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다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곽정수 기자는 <한겨레> 대기업 전문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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