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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롱한 빛깔의 송화에 반해 일순 감격하다.
ⓒ 한석종
한낮 기온이 삼십 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 마치 곤충들이 허물을 벗듯, 사람들의 노출이 아슬아슬할 정도로 한계점에 이른 이 시점에 지리산 고산지대에서는 이제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는 4월 중순이면 송화(松花)가 맺기 시작하고 5월 초순부터서는 봄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송화 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하는데 비해, 지리산에서 만난 송화는 지금 한참 토실토실 여물어 가고 있었다.

우리말 '솔'은 '으뜸, 높음, 우두머리'를 뜻하는 옛말 '수리'가 술로, 술이 솔로 변한 것으로 소나무가 나무 중의 으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자 '송(松)'은 또한 나무(木)에 귀한 벼슬(公)을 내린다는 뜻으로 나무 중 소나무를 가장 으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소나무에 꽃이 핀다는 사실과 꽃의 모양을 기억하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학명의 일부인 'densiflora'의 의미가 '꽃이 빽빽이 많음'을 뜻하지만 누구나 쉽게 접하면서도 그것을 꽃으로 눈여겨보지 않은 탓일 것이다.

▲ 새록새록 자라나는 해맑은 새순
ⓒ 한석종
이렇듯 예로부터 사람들은 변함없이 늘 소나무를 소중하게 여겨왔지만 흩날리는 송화만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솔잎 사이로 방울토마토보다 더 작은 모양의 송화가 무르익어 흩날릴 때면 소나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집안 창문을 닫아걸기 바쁘다. 그런데도 송화 가루는 그 조그마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방바닥에 내려앉아 주부들의 신경을 여간 거슬리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 송화 가루에 시달려 온 탓에 송화를 유심히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며칠 전 지리산 바래봉 등반길에 우연히 마주친 송화의 모습이 하도 앙증맞고 영롱하여 그 모습에 반해 일순 감격하고 말았다.

그 때부터 바래봉 등반은 뒷전이었고 내 눈길은 오직 송화, 그에게로만 향하고 있었다. 송화는 소나무의 종류에 따라 그 모양이나 크기와 빛깔이 조금씩 달랐다.

송화는 아랫부분에 우수수 달린 수꽃이 암꽃보다 십여일 전에 피어난다 하며 스스로 수정은 못하므로 맨 위의 암꽃은 다른 나무의 수꽃에서 날리는 송화 가루를 받아 따로 수정한다고 한다.

가루받이에 성공한 암꽃은 자주색을 띠다가 점차 초록색으로 바뀌게 되고 그로부터 일 년 정도 지나면 황갈색의 솔방울로 여물게 된다. 그로부터 또 다시 일 년 후에 솔방울은 백여개의 솔씨를 바람에 날려 보내고 땅에 떨어지며 솔씨는 겨울을 땅 속에서 지내다가 이듬해 새봄에 파릇파릇한 싹을 틔운다고 한다.

▲ 세상밖으로 고개를 빼곰 내민 솔의 눈
ⓒ 한석종

▲ 새색시 볼처럼 송화의 빛깔이 곱기만 하다
ⓒ 한석종

▲ 송화 가루를 가득 담고 흩뿌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 한석종

▲ 송화가루를 흩뿌리기 직전 만삭의 상태
ⓒ 한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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