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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우근
우리는 집단으로 맞았고 집단으로 울었다. 그러면서도 집단이 아닌 선착순으로 구제되었다. 부잣집 아이들이 먼저 구제되었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그 다음에 구제되었다. 끔찍했고, 끔찍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받았던 그 기합이 삼청 교육대에서 행해지던 그 교육(?)이라는 것과 강도만 다르지 아주 유사했다. 혹자는 ‘어떻게 여고에서 그런 일이…’라고 묻지만, 그랬다. 그런 일들이 학교 교정에서, 지붕도 없는 운동장에서 마이크 소리로 욕설이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가운데 그렇게 일어났다.

그 지옥 같은 풍경을 주도하던 체육 교사나 교련 교사들은 어떻게 그렇게 그 시대의 보편적인 기합 방법을 잘 알고 있었을까. 그 기합 방법은 군사문화적인 것이었고, 그것도 식민지 군대적인 것이었다. 교실로 돌아오면 다른 폭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쯤은 누군가가 매를 맞아 코피를 흘렸다. 막대기로도 맞고 주먹으로도 맞고, 출석부로도 맞고… 뺨도 맞고 머리도 맞고, 막대기로 온몸을 이리저리 맞으며 쫓기는 짐승처럼도 맞고…. 그리고 특별히 코 밑의 연한 부분을 출석부의 뾰족한 면으로 가격하던 장면, 그리하여 그 아이의 코에서 코피가 터져 흐를 때까지 그 연하고 좁은 코 밑을 조준하여 때리던 그 선생의 얼굴은 내게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다던 나 역시 그 폭력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집단적인 체벌 외에도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를 듣고 웃었다는 이유로 앞으로 불려나가 따귀를 맞았다. “내 수업이 끝나는 게 그렇게도 좋냐!”는 게 그 선생이 내 따귀를 때린 이유였다. 한 젊은 선생님은 학교에 오셨다가 폭력에 질려 몇 년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떠나셨다. 나는 폭력이라는 것의 실체를 그때처럼 오래도록, 일상적으로, 차근차근, 아무런 단죄의 이름도 없이, 영문을 모른 채 생생하게 체험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유신 말기라는 단서를 붙여 쓴 그 <광기의 역사>라는 소설을 읽고 요즘 학생들이 “공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 소설을 유신의 광기가 다만 정치적인 것을 지나 일상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우리 모두의 정신도 함께 파괴했음을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요즘 학교에서 그 폭력이라는 것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이 나에게 두 번째 충격이었다.

얼마 전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선생님께 매를 맞았다고 손바닥을 보여 주었다. 이유는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는 것. 내가 벌컥 화를 내자, 아이는 내가 그 선생님께 항의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됐는지 얼른 덧붙였다.

“그 선생님이 여러 번 자르라고 하셨는데 내가 안 잘랐거든.”

머리를 자르지 않은 게 체벌의 이유니, 아니면 여러 번 말했는데 듣지 않은 게 이유니, 더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다만 선생님을 두둔하려는 아이에게, “그래도 엄마는 어쨌든 체벌에 반대야” 하고 말았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내가 가장 감동한 것은, 나를 부르는 선배들의 말씨였다. “공지영 씨”라고 부르던 그 호칭이었다. 생각해 보니 학교에서 우리는 늘 만나자마자 “야!” “너!” 아니면 바로 반말을 들어왔다. 어린 사람, 즉 어린이라도 친해져서 서로 스스럼없게 될 때까지, 그리고 서로 합의하기 전까지는 말을 높이는 것, 만일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처음부터 선생님이 학생에게 ○○씨라는 호칭을 붙이거나 높임말을 쓰는 규정을 마련했다면 과연 그런 폭력이 가능했을까?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싸움의 대부분이 먼저 반말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학교에서부터 높임말을 썼으면 좋겠다. 공식적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그것이 주는 효과는 다만 말 이상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인권은 생활에서, 그들이 어리든 가난하든, 지위가 있든 없든, 사람이면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나는 그걸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장 쉽지만 가장 일상적인 말에서 존중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5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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