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채만식의 숨겨진 문제작 소년은 자란다

▲ 채만식, <소년은 자란다> 표지.
ⓒ 진달래산천
6월 11일. 오늘은 '태평천하', '탁류'등으로 잘 알려진 백릉(白菱) 채만식 선생의 55주기 기일이다. 일제 식민지시대와 해방 이후의 혼란한 상황을 겪으며 그는 특유의 풍자와 반어, 역설로 시대의 모순과 불안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번에 소개할 '소년은 자란다'는 그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소설이다. 뛰어난 문학성을 지닌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발표되지 못한 채 유족이 20년 넘게 보관하고 있다가 1972년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들로 일부가 삭제되는 수모를 겪었고 1987년 '채만식 전집'이 편찬되면서 복원되었으나 전집이 절판되면서 그동안 잊혀져 있던 비운의 작품이다.

비싼 해방 값을 치른 소년의 가족

소설은 이리역에서 동행하던 아버지를 잃어버린 영호와 영자 오누이의 막막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영호의 가족은 농사지을 땅을 찾아 만주로 이주했다가 해방을 맞아 돌아온 이른바 전재민이었다.

▲ 해방을 맞은 사람들이 교실에 모여 만세를 외치고 있다 -김세현씨가 힘있는 필체로 그린 삽화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 크게 해준다.
ⓒ 진달래산천
이야기는 그들이 이국에서 해방 소식을 접하는 때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조국을 떠나 척박한 간도 땅에 머물던 마을 사람들에게 어느 날 외지로 볼일을 보러 갔던 학교의 오 선생이 나라가 독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다들 믿기지 않는 가운데서도 기쁜 마음에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하지만 영호의 아버지인 오서방은 공산당 빨치산 부대에 몸을 던진 큰 아들 영만을 기다리느라 망설인다. 영호의 어머니 또한 누추하나마 그간의 살림과 다 지어놓은 한해 농사를 두고 떠나는 것이 섭섭하다. 가난과 억눌림에 시달리던 그들이 해방된 나라에서 바라는 것은 그저 자식들 교육이나 시키고 소작이나마 넉넉히 부쳐 먹는 것, 그리고 고향에 뼈를 묻는 일 정도이다.

▲ 해방을 맞아 돌아온 조국. 그러나 영호남매는 부모를 잃고 오갈곳 없는 신세가 된다.
ⓒ 진달래산천
결국 우여곡절 끝에 고국에 돌아오지만 그 와중에 영호의 어머니와 젖먹이 막내동생은 비명횡사하고 열차에서 아버지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비싼 해방 값을 치르고 돌아온 조국은 그들이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고압적인 순사들의 태도는 여전하고 사람들도 이국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동포들에게 차갑게 대할 뿐이다. 정치적 혼란과 빈부의 격차로 보통 사람들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졌다. 서울에서 다시 만난 오 선생은 이런 상황을 두고 다음과 같이 개탄해 마지않는다.

"젠장맞을! 이거 해방 잘못됐어, 잘못돼…. 어서 해방을 고쳐 해야지, 큰일났어!"

생활비가 떨어져 여관에서 일하게 된 영호는 잘 차려입고 훌륭해 보이는 사람들의 정체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38선이 터지지 말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나마 영호 남매를 도와주는 것은 똑같은 처지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일 뿐이다.

왜곡된 '해방'과 '민주주의'를 바라보며 소년은 과연 훌륭한 사람이란 무엇인가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일하던 여관을 나와 독립해서 스스로 살아갈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된다. 채만식은 이런 물음과 결심을 통해 자라나는 소년으로 형상화된 조국에 대해 희망을 놓지 않는다.

▲ 작가 채만식은 해방후의 혼란기를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 진달래산천
해방 후의 공간을 치밀하게 형상화한 역작

작가인 채만식은 주인공인 소년 영호의 눈을 통해 당시의 풍속을 단순하게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혼란과 절망이 가득한 해방 후의 공간을 치밀하게 형상화 한다.

"호랑이 한 마리를 내쫓았더니 사자하고 곰하고 두 놈이 앞마당 뒷마당에 들어앉은 꼴이 되었으니! 젠장맞을!"

작가가 등장인물인 오 선생의 입을 빌어 말한 위의 구절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그의 현실인식이 당시 지식인으로서는 드물게 냉철하고 객관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세상에 홀로 남은 소년이 꿋꿋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통해 삶과 성장, 사회와 역사의 문제를 되돌아보고 자연스럽게 우리 근현대사의 고민이 현재도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킨다.

작가의 안목과 통찰력에 감탄하면서도 광복 60주년이 되어가는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당시의 문제점들이 지금 우리 사회의 여러 면에서 중첩된다는 점은 참으로 아프고 씁쓸한 반성을 하게 한다.

저자 소개
채만식(1902-1950)

▲ 생전의 채만식 선생 - 그는 늘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한다.
전북 옥구에서 태어난 그는 1922년 와세다 대학 부속 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귀국한 뒤 돌아가지 않았다. 1924년 단편소설 세길로가 조선문단에 등단하고 타계 하기 직전 1950년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소설, 희곡, 평론, 수필 등 200여편의 많은 작품을 저술했다.

해방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탁류> 등을 통해 식민지 사회상과 인간상을 날카롭게 제시했으며 특히 해방후에는 일제에 굴종한 자신의 잘못을 비판한 <민족의 죄인>을 통해 동시대 작가 그 누구도 하지 못한 부역 행위에 대한 자기 비판을 감행한다.

1950년 6월 11일 걱정하던 동족상잔을 앞두고 익산시 마동에서 노후성 폐결핵으로 영면했다. 임종전 "민주적 민족주의 만세!"라고 외쳤다는 그의 나이는 향년 49세였다.

소년은 자란다

채만식 원작, 박상률 엮음, 김세현 그림, 진달래산천(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