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이 흘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중학교 2학년 신효순·심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지 말이다. 친구들은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러나 효순·미선이는 여전히 '여중생'으로 남아있다.
효순·미선양 사망사고 3주기 촛불 추모제가 12일 저녁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열렸다. 2002년 겨울, 서울 광화문과 전국 곳곳을 밝혔던 촛불이 다시 불을 밝혔다. 그 해 겨울, 언 손 촛불에 녹여가며 "미선이와 효순이를 살려내라"고 외쳤던 사람 1천 여명도 다시 모였다.
다시 광화문에 울려퍼진 "살인미군 처벌하라!"
"살인미군 처벌하라!"
"소파(SOFA)협정 개정하라!"
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사람들의 외침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슬프고 씁쓸하다고 했다.
"2002년 겨울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땐 임신 중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컸다. 아이는 생겨나고 자라고 있는데,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 때 외친 구호를 여전히 외치고 있지 않은가."
3살 짜리 아들과 함께 나온 김주희(33. 가명)씨의 말이다. 김씨는 "이 아이가 효순이 미선이 정도 나이쯤 되면 우리나라가 미국과 평등한 관계가 돼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나고 자라는데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아 효순·미선양에게 미안하다는 사람도 많았다.
"3년 동안 너희를 잊고 살아 미안하다. 그동안 어두운 그늘에 너희들을 그냥 놓아두었구나. 그리고 힘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핑계를 댔구나. 우리를 용서해다오. 사랑하는 우리 누이 효순·미선 고이 잠들라."
"3년 동안 잊고 살아 미안하다"
무대 위에서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던 방송인 홍석천씨는 눈물을 흘렸다. 홍씨는 "앞으로도 세상이 효순·미선이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개그맨 노정열씨는 "미국이 전쟁에 쓰는 막대한 돈으로 세상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쓴다면 친미주의자가 되겠다"며 "그러나 현실의 미국은 나를 당당한 반미주의자로 만들고 있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은 "최근 공개된 미군과 한국 검찰의 두 여중생 사망사고 수사 기록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파(SOFA) 협정을 개정하지 못해 수치스럽다"고 개탄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교보빌딩 뒷길을 이용해 주한 미대사관 앞까지 행진을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전경버스 세 대로 한국통신 건물 뒷길을 차단, 이들의 행진을 막았다. 이날 경찰은 10개 중대 1천여 명의 병력을 배치했지만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집회는 밤 9시30분께 끝났다.
한편 이날 추모제를 주최한 '신효순·심미선 6·13 자주 평화 촛불기념사업회(준)'는 오는 7월 10일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반대하는 평화 대행진을 평택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 | 동두천 상인 100여명, 미군부대 앞 집회 저지 | | | |
| | ▲ 반미청년회 회원 등이 탄 관광버스(가운데)가 지난 10일 미2사단 장병이 운전하던 화물차에 치여 숨진 50대 여성 사고현장인 동두천시 평화로 인근으로 향하자 동두천 상인연합회 관계자들이 현장방문을 몸으로 저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미군 장갑차에 의한 신효순·심미선양 사망사고 3주기를 맞아 12일 낮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과 반미청년회 소속 회원 십여명이 사고 현장인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천리를 방문해 추모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추모비를 찾아 헌화 및 묵념하며 "주한미군 경기도 평택 이전을 막아내고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추모비 앞에는 '미2사단장병 일동'이라고 적힌 조화가 놓여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정태영 반미청년회 회장은 10일 동두천에서 요구르트를 배달하다가 미군 차량에 치여 사망한 김모씨 사고와 관련해 "미선, 효순이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고 현장 추모 행사에 앞서 동두천 미군2사단 소속 캠프 케이시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미군부대 이전에 반대하는 인근 상인연합회 소속 회원 100여명의 항의로 열리지 못했다. 상인들은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시민단체 회원들이 탄 버스에 물병을 던지기도 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