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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일 이틀 동안 나는 전남 광양에 다녀왔다. 가족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다섯 가족이 모였다. 아이들까지 합치니 20명이 넘었다. 한 가족은 아이가 셋, 다른 한 가족은 아이가 넷이었다. 이들은 아직 40살도 되지 않았다. 젊은 사람치고는 흔치 않은 일이다.

▲ 재첩무침입니다
ⓒ 박희우

나는 광양이라고 해서 꽤 먼 곳인 줄 알았다. 행정구역상은 엄연히 전라남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게 아니다. 경남 하동과 바로 인접해 있었다. 불과 다리 하나 사이다. 섬진강 이쪽저쪽 건너편에 있었다. 하도 가까워 큰소리로 부르면 들릴 것만 같다.

우리가 모임 장소를 광양으로 잡은 것은 순전히 총무를 맡고 있는 이○○씨 때문이다. 그분 처가가 바로 이곳 광양이다. 정확하게는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다. 광양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게 매실이다. 매실로 유명한 홍쌍리 여사도 바로 인근에 산다. 재첩 또한 유명하다. 하동 재첩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 재첩국입니다
ⓒ 박희우

우리 일행은 이틀 동안 푸짐하게 재첩을 먹었다. 국으로도 먹고 무침으로도 먹었다. 쌉쌀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지금 광양은 매실 따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놀러온 우리가 눈치가 다 보일 정도였다. 우리는 의논 끝에 오전 한나절만이라도 매실 따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아이들과 부인들은 다른 밭에서 매실 따기 체험을 하도록 했다.

우리는 매실 밭에 도착하자마자 앞치마부터 둘렀다. 앞치마에 매실 담는 주머니를 크게 만들었다. 총무인 이○○씨의 장모님이 우리를 보자 활짝 웃으신다. 기쁜 표정이 역력하다. 아줌마 두 분도 보인다. 품앗이하러 오신 분들이다. 그분들은 매실을 무척 잘 땄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분 중 한 분이 말씀하신다.

▲ 매실나무입니다
ⓒ 박희우

"매실도 혼자 따면 재미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해도 130㎏ 이상을 못 땁니다. 여럿이 어울려야 재미도 있고 많이 땁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웬 걸요? 죽을 맛입니다.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매실을 땁니다. 6시부터는 매실을 큰 것, 작은 것으로 가립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10일째입니다. 그래도 논농사보다는 낫습니다."

▲ 아줌마가 매실을 따고 있습니다
ⓒ 박희우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생각처럼 매실 따기가 쉽지를 않다. 매실이 엄청나게 열렸다. 장모님께서 사위인 이○○씨한테 작은 것은 따지 말라고 한다. 상품가치도 없거니와 며칠만 지나면 크게 자란다는 것이다. 벌써 10시가 넘었다. 새참이 나왔다. 나는 아줌마들에게 소주를 권했다. 한잔을 받더니 거침없이 들이킨다. 몹시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저씨는 어디에서 오셨소?"
"창원에서 왔습니다."

"혹시 무좀 있소?"
"무좀, 아주 흔하잖아요. 저도 무좀 있습니다."

"매실식초가 무좀에는 특효랍니다."
"매실식초가요?"

"제가 지금부터 매실식초 담는 법을 가르쳐드릴게요. 매실을 깨끗이 씻고 물기를 싹 닦아내요. 그런 다음 병에다 매실을 가득 집어넣어요. 이때 조심할 게 한 가지 있어요. 뚜껑을 잘 밀봉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벌레가 들어가서 식초를 못쓰게 돼요. 두세 달 지나면 붉은 물이 나와요. 그게 바로 매실식초예요."

"어떻게 사용하지요?"
"세숫대야에다가 발등이 잠기지 않을 정도로만 식초를 담아요. 그렇게 서너 번만 하면 무좀이 깨끗이 낳아요. 전에 사용했던 식초를 몇 번 계속해서 사용하면 됩니다."

"그렇군요."
"매실초장을 만들어 먹어도 좋아요. 매실이 식중독을 막아주잖아요. 어디 그뿐입니까? 부인들 가려운데 발라주면 특효예요."

▲ 모임 후배가 매실을 따고 있습니다
ⓒ 박희우

부인들 가려운 데라.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걸까. 나는 궁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모습이 우스웠던지 아줌마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때였다. 혹시 '거시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말하기 곤란할 때 '거시기'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혹시 거시기 아니에요?' 하려다가 그만둔다. 아줌마가 잘못 알아들으면 정말 큰일이다. 다행히 아줌마가 친절하게(?) 설명하여 주신다.

"제가 분명 부인이라고 말했지요. 이제 가려운 부분이 어디인지 알겠지요?"

모두들 크게 웃었다. 재치 있는 아줌마였다. 해가 바로 위에까지 와있다. 우리는 부지런히 매실을 땄다. 아줌마의 구수한 입담이 피곤함을 덜어주었다. 그때 갑자기 배가 아프다. 어제 이불을 덥지 않아서 배탈이 난 모양이다. 내가 배를 틀어쥐자 아줌마가 매실을 한 개 따준다. 배 아픈데 매실이 좋다는 것이었다.

▲ 저 다리만 건너면 하동입니다
ⓒ 박희우

나는 매실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무척 시었다. 억지로 1개를 다 먹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것이었다. 속이 편해지고 힘이 솟는 것이었다. 신기했다. 그 후로도 매실 따기는 계속되었다. 체험, 삶의 현장이 따로 없었다. 이곳이 내게는 바로 삶의 체험현장이었다. 비록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더없이 편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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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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