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와 철근을 격자로 쌓아 놓고 강한 밑불을 넣어 '태우면' 어떻게 될까. 철근은 남고 목재는 재가 될 것이라는 게 보통사람들의 예측이다. 공식적인 실험결과는 다르다. 철근은 엿가락처럼 휘고, 목재는 어느 정도의 손실은 있지만, 제 상태를 유지한다.
다른 건축 자재에 비해 목재가 불에 약할 것이라는 생각은 일종의 '오해'인 것이다. 이 상식의 허는, 그러나 목재 전공자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상식이다.
오해는 더 있다. 목재의 강도(强度 Strength)가 철강이나 콘크리트에 비해 약할 것이라는 견해가 그렇다. 동일한 부피라면 목재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같은 무게일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관련 학계의 공식적인 실험 발표 자료에 따르면 단위 밀도(㎥) 당 강도에서 가장 높은 수치는 목재의 몫이었다. 무게에 비해 가장 튼튼한 재료가 목재라는 이야기다.
철근, 콘크리트보다 더 강한 재료
경담문화재보존연구소 김익주 소장(임학 박사)은 "복잡한 다발구조를 가진 까닭에 열전달체계가 다층적이어서 타들어가면서도 제 형질을 유지하고, 같은 이유로 충격흡수 또한 뛰어나다"고 목재의 성질을 설명했다.
일반인들도 충분히 경험하는 목재의 성질 중 하나가 '세월이 지나면 썩는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오해라 할 수 있다. 우선 세월 지나면 썩는 게 목재뿐만이 아니라는 데서 목재가 '썩음'의 대표주자 격으로 인식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논리다.
썩음의 진짜 문제는 목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썩어 가고 있는 목재건축물들을 주변에서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가깝게는 광주 서구문화센터와 나란히 자리한, 목재로 설계된 빛고을국악전수관의 하부가 썩어가고 있고, 휴가철이면 이용하기 마련인 자연휴양림의 통나무집들도 썩어가고 있다. 목재에 관한 오해를 증폭시키는 좋지 못한 사례들이다. 썩어가는 모든 목재들은 "제대로 건조되지 않아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남대 바이오하우징연구사업단 강욱 교수는 썩어가는 목재와 관련 "건조에 따른 비용손실이 커 업자들이 생나무를 사용한 데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 "일본인들의 경우 (목재를)100% 건조해서 쓰고 있으며, 우리들 또한 그렇게 사용해 왔다"고 덧붙였다.
건축재료로서의 '용도폐기'를 썩음의 기준으로 볼 때 목재는 콘크리트보다 더 늦게 썩는다. 미국건축업계의 엄격한 기준에 따르면 콘크리트 구조물의 물리적 수명은 80년, '제대로 건조해' 활용했다는 전제를 달 경우 목재의 물리적 수명은 1000년을 넘길 수도 있다.
건조하지 않아 썩는 문제 발생
다만 부피, 길이 등 소재의 자연적 한계 때문에 웅장한 스케일을 요구하는 현대건축물에서 목재는 기피되어 왔다. 20세기를 빛낸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철강이나 콘크리트, 혹은 그것의 혼합에 기반을 둔 작품들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목재구조물 높이의 법적인 허용치는 지붕까지를 포함해 18m 이내로 제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법적인 한계일 뿐, 기술적으로는 목재구조물의 높이에 제한을 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불연성, 내구성, 충격흡수성 등을 보강하는 목재처리기술이 충분히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 성질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목재를 액화시켜 자유자재로 형태변화를 꾀할 수 있는 단계까지 목재처리기술 수준이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2000년, 독일 하노버에 지어진 '엑스포 네덜란드 전시관'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 건물은 건축재료의 '빅3'라 할 수 있는 나무, 철근, 콘크리트의 조합으로 지어졌는데, 이 때 나무는 단순히 데코레이션의 요소로 쓰인 게 아니었다. 높이 39.5m 건물의 2층과 3층 사이에 설치된 나무기둥의 몸통이 위층을 실제로 떠받치는 구조였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수직 중앙을 나무기둥이 점령해, 이 건물은 '풍경샌드위캄 '바이오조각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연한계 뛰어 넘은 목재기술
강도, 내구성, 또는 불연성 등의 문제에서 목재의 '불리함'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목재가 갖고 있는 장점은 그 같은 '불리함'을 충분히 상쇄한다. 전남대 산림자원조경학부 정우양 교수는, 목재가 좋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① 목재는 에너지가 가장 적게 들어가는 재료이다. 그래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시멘트나 철근에 비해 친환경적이다. 화석재료는 한번 사용하면 고갈되지만 목재자원은 인위적인 조성 및 재생이 가능하다.
② 굳이 아토피성 피부염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시멘트에서 다량으로 나오는 유해성분인 휘발성유기화합물이 목재에는 거의 없다. 습도조절 및 단열효과도 탁월해 인체에 가장 이로운 건축 재료다.
③ 구조적으로 가벼워 기초공사 비용이 덜 든다. 철근, 콘크리트를 생산하는 사회적 비용을 입체적으로 계산하면, 재료 그 자체도 목재가 더 싸다. 다만 관련 인프라의 미성숙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목재가 좀더 비쌀 뿐이다.
선진국 개인주택의 90% 가 목구조물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노동 및 경제공간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채택하더라도 주거공간만큼은 목재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문제와 관련하여 아시아문화전당은 노동·경제공간이면서 동시에 복합문화센터로서 인간을 건축철학의 중심에 둔 주거공간의 요소까지 갖춰야 하지 않을까.
목재는 전통, 첨단, 자연소재
일반적으로 목재는 사찰이나 궁전과 같은 전통적인 건축물에만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이용되어 왔다. 이는 목재가 과거의 역사건축물을 재현하는 정도의 건축 재료라는 인식으로 굳어지게끔 했다.
하지만 건축전문가들은 "전통재료이면서 동시에 첨단소재"라고 목재를 정의한다. 석기시대, 철기시대는 있었어도 목재시대는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매 시기마다 목재는 자기변신을 거듭하여 다양하게 활용된 까닭에 굳이 목재시대가 따로 있을 수 없고, 전(全)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재료'가 목재라는 설명이다.
보편재료로서 목재는 20세기의 급격한 기술발달로 밀려났고, 동시에 그 기술의 견인을 받아 다시 첨단재료로 거듭나고 있다. 생태, 친환경, 인체친화적 담론이 밀려오는 21세기는 보편재로서로 목재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신문 시민의소리>와 <경담문화재보존연구소>의 공동기획물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의 재료이념을 '목재'로 가져가보자는 제안이다. 꼭 그래야 한다는 주장이라기보다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목재'를 언급하여 전당의 재료에 관한 관심을 환기시켜보자는 의도다. 한번에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아래와 같은 순서를 밟을 예정이다.
① 재료를 고민하자
② 목재에 관한 이해와 오해
③ 우리시대의 목재건축물들
④ 목재로 아(亞)문화전당 만들기
⑤ 전문가좌담
※이 기사는 광주지역 주간신문 <시민의소리>에도 함께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