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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뉴스를 듣기 위해 TV를 켰다. 비몽사몽간에 언뜻 '오늘은 세계헌혈의 날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홋! 내 중국어 듣기 실력이 이렇게 늘었나? 혼자 넋나간 사람마냥 웃었다. 물론, 의식적으로 '세계헌혈의 날' 다음에 나온 문장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무시하고 넘어갔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물론 아침을 안 먹은 공복이라! 허기와 함께 궁금증도 생겼다.

'중국에서도 헌혈 하면 초코파이 주나?'

물론, 꼭 '초코파이'가 아니더라도 뭔가 주지 않을까. 싱숭생숭한 마음에 늘 하던 공부도 대충 하고, '키'를 들고 아파트를 내려왔다. 잠금장치를 풀고 애마, '노란돌이'를 차고에서 꺼냈다. 흠…. 왜 이리 빡빡한가? 언제 시간 내서 제동장치 손 좀 봐야겠군.

중고로 구입한 이 '애마'는 늘 속을 썩인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수리를 해야 할 정도다. 돈 좀 들여 새 것을 사는 건데. 몇 푼 아낀다고 중고를 샀더니 정말 말썽이다. '황희'정승이라도 되는양, 애마가 들을까 겁나서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45위안' 주고 5일장에서 산 이 자전거는 벌써 그 이상의 수리비를 잡아먹었다. '노란돌이, 미워!'

돌이켜 보면, 나의 첫 헌혈 경험은 고2때다. 뭐, 첫 헌혈 치고는 적당한 나이였다. '의무'니 '봉사'니 하는 거창한 이유보다는 '헌혈'은 뭔가 하는 궁금증 때문에, 한창 궁금증이 많을 나이이기도 하고, 또 실천에 더욱 무서움이 없는 나이라…. 그 후에도 몇 차례 했다. 이때도 역시 '의무'니 '봉사'니 하는 이유보다는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기 만족 때문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는 '피박', 국민 오락인 고스톱 용어가 아니라, '피 뽑아서 1박 추가한다'고 해서 '피박'이었다. 인사 담당자 나름의 아이디어인지, 헌혈자가 너무 적은 탓에 대대장님의 압력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1박 때문에 헌혈한 사람도 꽤 많았다. 쓸데없는 '헌혈의 추억'을 떠올리며 오가면서 봐뒀던 중국 헌혈차에 도착했다.

간호사 2명, 남자간호사라고 해야할지 간호보조라고 해야할지 하여간 흰색은 확실한 가운을 걸친 남자 하나 운전사겸 도우미로 생각되는 평범한 복장의 사내가 얘기하다가 내가 들어서니 놀란다.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사투리 탓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내 중국어 듣기 탓 같다.

"&*)(&(*(%^&%*%&*&)&()&*(@@((@(#*#@***("
"나 헌혈!"

"어디서 왔어?"
"한국!"
"…."

당황인지 황당인지 또는 중간쯤 되는 표정들을 짓더니 각자 자기 위치로 간다.

▲ 헌혈중에 오른손으로 촬영. ^^:
ⓒ 최광식
'휴우~' 이왕이면 젊은 여간호사가 했으면 하는 바람과 달리, 수염도 안 깎고 더부룩한 머리의 총각이 바늘을 잡는다. '아뜨~~' 혈관을 못 찾아 바늘을 이리저리 피부 속에서 돌린다. 에휴~ 이래서 경험 많은 사람이 좋다니까!

젊은 여간호사가 1회용 종이컵에 물을 담아서 마시라고 준다. 잉? '맹물'? 혹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까봐 자세히 들어다 보고 있으니, 간호사가 '1회용 컵이니 위생적이에요!'라고 한다. '그게 아니라, 우리 나라는 오렌지 캔주스 주는데 왜 맹물 주는거야'라고 할 수 없어서 '알았다. 위생적이다'라고 했다.

▲ 오늘 35도 까지 올라간다는데.. 미적지근한 맹물은... ^^;
ⓒ 최광식
역시 제대로 안 꽂힌 주사 바늘 탓인지 피가 찔금찔금 나온다.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소시적에는 바늘을 꽂기만 하면 시추공에서 석유 나오듯 콸콸 솟아져 나왔는데, 가뭄 때 손 펌프로 물 끌어올리 듯 찔금찔금 나온다. 괜히 서글퍼지는군.

▲ 찔금찔금 나오는 바람에 괜한 서글픔마저.. 흑..
ⓒ 최광식
기다리던 '초코파이 시간'이다. 과연 뭘 주나 했더니, '초코파이'가 아니라 TV에 자주 나오던 영양 간식 비스켓이다. 지난헤 내가 가르치던 제자들에게도 한두 차례 사준 적 있어서 잘 안다. 무지 퍽퍽하고, 맛은 맹맹하다. 광고 대로 부족한 철분보충을 위한 영양소가 섞여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쇠를 씹으면 이와 비슷한 맛이 나올 것 같다.

▲ 왼쪽상단 : 동(銅)기념메달, 왼쪽하단 : 헌혈증서, 오른쪽상단 : 가죽허리띠, 오른쪽하단 : 철분함유 비스켓
ⓒ 최광식

▲ '가죽(?)허리띠'가 들어간 제품박스에 뜬금없이 한글이.. 점품이 뭔고? ^^
ⓒ 최광식
내가 본 중국 TV연속극 중 <민공(民工)의 생존>이라는 하층노동자의 생활을 다룬 드라마에서 매혈하는 장면이 나온다. 매혈 후 손에 쥐는 돈은 '300위안' 정도의 현찰. 우리 나라 돈으로 환산한다면 한 30만원~60만원 정도다.

▲ '헌혈'은 '영광' 헌혈차 앞모습
ⓒ 최광식

▲ '무상헌혈은 자애심의 시작'으로 의역할수 있을까?
ⓒ 최광식

▲ 이웃사랑은 값으로 따질수없다! 정도로..
ⓒ 최광식


산동 평도에서
배나온 기마민족
자티 올림.

덧붙이는 글 | ㅇ 오늘은 '세계 헌혈의 날'입니다.

ㅇ 우리 나라에서 헌혈을 제일 많이 하신 분이 어느 목사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천하는 종교인'을 탓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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